[신세미의 집에서 거리에서]

[오피니언타임스=신세미]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간 4개층 높이의 지하 전시장은 어둠 속 별천지다. 크고 작은 9개의 구(球)들이 은은한 빛을 발하며 허공에 떠있다. 풍선 같은 천 소재의 구조물은 우주의 행성 같다.

뒤 편의 투명한 유리 상자에는 거미 한 마리가 거미집을 짓고 있다. 벽면의 대형 스크린에는 각종 선(線)이 시시각각 변화무쌍하게 스쳐 지난다. 거친 배경음악처럼 스피커의 불협화음과 그 울림이 청각과 촉각을 자극한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1관서 전시중인 토마스 사라세노의 ‘행성 그 사이의 우리’전. ©신세미

문화가의 ‘핫한 전시’를 지난 주 참관했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의 ‘토마스 사라세노, 행성 그 사이의 우리(Our Interplanetary Bodies)’전. 지난 7월 15일 개막 후 100일 여 지난 사라세노 전시는 꼭 챙겨봄직한 기획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그러나 전시장과 작가 이름이 낯설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ACC는 서울-수도권이 아니라 광주에서 2년 전 문을 연 신설 공간이다. 또 아르헨티나 출신인 작가는 국내서 인지도가 크게 높지는 않다.

실제로 전시장을 둘러보니 명불허전(名不虛傳). 올해 44세인 세계 현대미술계의 신진 거장은 이제껏 국내 전시 공간에서 경험하기 어려웠던 초대형 규모로 신선한 볼거리를 한껏 펼친다.

전시장인 ACC 문화창조원 복합1관은 규모부터 압도적이다. 가로 60m 세로 26m 높이 18m, 총 2317제곱미터의 널직한 운동장같다. 사라세노가 지름 15m 크기의 대형부터 사람 키만한 소형까지 9개의 구를 설치한 전시장은 우주처럼 신비로운 광경을 이뤄낸다. 가까이서 보면 구는 끈으로 연결돼 있고, 겉면도 거미줄 같은 망으로 뒤덮여 있다.

사라세노는 아르헨티나에서 건축을, 독일에서 현대미술을 전공한 예술가. 건축학적 상상력을 발휘하며 지난 10여년간 유럽 미술가에서 두각을 나타내왔다. 그는 줄곧 ‘실현 가능한 유토피아’를 지향하며, 예술 건축 자연과학을 넘나들고 과학자들과 협업하며 시각화가 어려운 미래적 생태적 과제를 전시장에서 형상화해왔다.

광주 전시에서도 작가는 천체물리학, 열역학, 거미집 연구 등 과학 실험을 거쳐 현장에 맞춤 설치한 신작을 발표했다. 작품에는 우주 행성, 거미의 집짓기부터 미국 항공우주국이 채집한 우주의 소리, 전시장에 부유하는 먼지의 움직임까지 담겨 있다.

독일 뒤셀도르프 K21 미술관서 전시중인 토마스 사라세노의 2013년작 ‘궤도 속으로’. ©신세미

그의 작품전에서 사람들은 그저 보고 스쳐 지나는 관객이 아니다. 관객 참여형 작업이라 사람이 작품의 요소로 한몫 하며, 사람의 존재가 있으므로써 작업이 완성된다. 전시장에서 관객이 움직이면서 생기는 먼지가 거미집에 영향을 미치고, 그에 따른 움직임이 스크린의 영상과 스피커의 소리에 반영되는 식이다.

그러나 거미가 움직일 때 발생하는 저주파를 증폭시키기 위한 장치라든지, 작업의 디테일까지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다. 그저 작품을 대면하는 순간, 땅에 발을 딛고 공중을 둥둥 유영하듯 색다른 체험과 상상력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다만 미래 환경, 신개념의 거주 방식에 대한 관심으로 작가가 집중해온 태양열 만으로 지표면에 떠오르는 ‘에어로센’, 허공에 집을 짓는 거미와 거미집에 대한 탐사 이력을 기억한다면 작품에 다가서기가 한결 수월하리라.

거미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거미줄의 아름다운 구조에서 출발해 점차 거미라는 종에 대한 연구로 이어져 왔다. 지난 10여 년간 거미집 연구는 공중에 떠있는 구조물, 구름같은 설치작품으로 형상화되면서 미래의 집, 이동 수단에 대한 작가의 비전을 드러낸다.

광주 전시에서 남녀노소 별로 자신의 눈높이에서 우주 체험, 혹은 일상의 요소를 확대해 다르게 보기 및 거미가 상징하는 다른 종(種)과 교감과 소통이라는 작가의 메시지를 느껴볼 수 있다.

토마스 사라세노의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 출품작.

세계 미술가에 사라세노의 이름이 드러난 것은 2009년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였다. 당시 그는 특별전을 통해 본관 입구의 흰 방을 온통 검은 끈으로 거미줄처럼 촘촘히 엮은 작품을 선보였다. 독일 뒤셀도르프의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K21미술관에서 전시중인 2013년작 ‘궤도 속으로’는 유리 천장아래 흰 망 내부로 투명 풍선 형태의 구 안에 관객들이 들어가 공중에 떠있는 공간을 체험할 수 있는 작품이다.

사라세노 작품뿐아니라 지하에 자리잡은 복합문화예술공간 ACC와의 만남또한 광주 나들이의 즐거움이다. 지금 ACC 문화창조원에선 지난 27일 개막한 김성원 기획의 ‘달의 이면’전까지 4개의 현대미술 전시가 진행 중이다.

신세미

전 문화일보 문화부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서 기자로 35년여 미술 공연 여성 생활 등 문화 분야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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