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어원설설]

[오피니언타임스=동이] 홍준표 대표의 ‘깜냥발언’으로 자유한국당이 한차례 내홍을 겪었습니다. 홍 대표가 ‘탈당 권유’에 반발하는 친박 서청원 의원에게 “깜냥도 안되면서 덤비고 있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면서 부터입니다.

홍 대표는 서 의원이 ‘성완종 녹취록’ 문제를 제기하자 “2015년 4월18일 (서 의원에게)전화한 것은 (금품을 전달했다고 주장하는)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이 서 의원 사람이니 거짓으로 증언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깔테면 까라~”고 격한 반응을 보였죠. 이 바람에 ‘깜냥’이란 단어도 한때 인기검색어가 됐습니다.

깜냥이란 ‘일을 가늠해 보아 해낼 만한 능력’이란 게 사전적 풀이입니다. 그럴 만한 능력이나 인물됨됨이를 얘기하죠.

‘깜냥(깜+냥)’의 ‘깜’은 ‘옷감’할 때의 ‘감’처럼 물건이 될만한 걸 뜻합니다. 신부감 사윗감 장군감 할 때의 ‘감’과 같죠.

‘냥’은 한냥 두냥할 때의 ‘돈냥’에서 왔다는 게 통설입니다. 옷감인 베가 물품화폐로 통용되던 시절 옷감(베필)에 화폐단위인 ‘냥’이 붙어 감냥>깜냥이 됐다는 것이죠. ‘돈값어치가 있는 옷의 감(후보)이 되느냐?’는 뜻이 넓게 쓰였다는 점, 나름 설득력 있습니다.

깜냥은 자격이나 능력 따위를 따질 때 쓰이지만 아예 기대할 게 없을 땐 ‘싹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싸가지가 없다’ ‘싹퉁머리 없다’ ‘싹이 노랗다’고도 했죠. 반면 반듯하게 자라는 아이에겐 ‘싹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싸가지든, 싹수든, 싹퉁머리든 ‘싹’(씨앗이나 줄기에서 처음 나오는 어린잎이나 줄기)의 돌림어라 하겠습니다.

©픽사베이

씨앗을 심고 싹이 올라올 때 거름기가 부족하면 싹이 노랗게 변합니다. 노란 싹은 십중팔구 죽게 돼있습니다. 때문에 어린 싹의 색깔만봐도 잘 자랄 지, 못자랄 지 금방 판단이 됐던 겁니다. ‘싹이 노랗다’ ‘싹수가 노랗다’란 표현이 농경문화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사람에게도 빗대어 ‘세상에 나오긴 했는데 사람구실 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뜻으로 썼습니다. ‘싹’이 씨(종자)의 관련어로 추정되는 까닭이기도 하죠.

“싹은 하나의 잎이며 풀이어서 어원도 잎과 풀의 뜻을 지닌다. 잎새, 남새의 새도 바로 풀의 뜻이다. ‘새’는 ‘삭’ ‘싹’과 같다”(국어어원연구/서정범 교수)
‘싹’이나 ‘(잎)새’나 같다는 주장이죠.

싹의 어미(母)라 할 씨앗(씨+앗)의 ‘씨’는 종자를, ‘앗’은 ‘작은 것’을 뜻합니다. 싸가지(싹+아지)의 ‘아지’도 ‘앗’과 같죠. 아지는 동물에도 붙여 송아지(소+아지) 망아지(마+아지) 강아지(개+아지)라 불렸습니다.

‘씨’의 유사어로 ‘알’이 있습니다. 무 배추 고추같은 작물은 대체로 씨로 종자번식하지만 고구마나 감자, 토란처럼 알로 번식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알차다’ ‘알배다’ ‘알토란’ ‘씨알’ 등의 ‘알’도 물론 같은 뜻이죠.

‘씨알의 소리’란 잡지가 있었습니다. 1970년 고 함석헌(咸錫憲) 선생이 창간한 월간 교양평론잡지죠.

“신문이 씨알에게 씨알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가리고 보여주지 않을 뿐 아니라, 씨알이 하고 싶어 못 견디는 말을 입을 막고 못하게 한다~”(‘씨알의 소리’ 창간사)

바른 말 좀 하자는 게 창간목적이었던 잡지였습니다. 격렬한 정부비판 논조를 펴 등록이 취소됐다가 복간되기도 했죠. 구어체에 한글전용으로 일반민중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 점이 당시로선 파격이었습니다.

함석헌 선생은 당시 대중매체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박정희 정권을 향해 쓴소리를 서슴없이 뱉어냈던 인물입니다. '씨'와 '알'을 민중, 민초라 했습니다.그러면서 씨알을 제대로 받들어야 한다고 설파했습니다.

정치권이 ‘깜냥’ 운운하며 서로 드잡이하듯 싸울 게 아니라 씨알들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할 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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