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호의 멍멍멍] 한국의 높은 외상사망률과 극한 의료환경

[오피니언타임스=이광호] 교통사고, 산업재해, 범죄 등으로 부상을 입은 중증외상환자들이 죽어가고 있다. 이들을 전담하는 중증외상센터가 운영되고는 있지만 지원금이나 의료진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환자들은 상대적으로 위험 환경에 노출되기 쉬운 노동자, 학생, 무직 등이 대부분이다. 결국 ‘힘 없는 사람들’이 의료 사각지대에 놓이는 것이다. 이들을 살리는 의사들마저 제대로 된 지원 없이 사명감만으로 극한의 의료 노동 환경에서 버티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세바시>797회 ‘세상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캡처 ⓒCBS TV
권역외상센터 설치사업 추진현황 ⓒ보건복지부

첫 번째 고통 : 높은 예방가능 외상사망률

우리나라 상위 20개 병원의 평균 중증응급환자 응급실 대기시간은 14시간이다. 사고 직후 1분 1초를 다투는 위급한 환자들이 제때 병원에서 치료받기 어렵다는 의미다. 응급실 부족현상도 심각하다. 응급실 과밀화 지수는 상위 2개 병원 평균 100.7%다. 과밀화 지수가 100%이 넘었다는 건 간이침대나 의자, 혹은 바닥에서 대기해야 하는 환자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물론 의사가 증상에 따라 위중한 환자를 우선적으로 진찰하고 치료하겠지만 심각한 부상을 입은 중증외상환자들에게 평균 14시간의 대기시간은 장애나 후유증 혹은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시간이다. 수술할 수 있는 병원을 찾지 못해 응급실을 전전하다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건들이 지금도 심심찮게 들려오는 이유다.

우리나라의 예방가능 외상사망률(사망자 중 적정 진료를 받았을 경우 생존할 것으로 판단되는 사망자의 비율)은 35.2%에 달한다. 미국 6.7%, 독일 9.8%에 비해 심각하게 높은 수치이다. 치료를 받고 가정으로, 사회로 돌아갈 수 있었던 사람 중 35%가 사망했다는 것이다. 유족들에게는 살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후회와 고통을 남기고, 사회적으로는 노동력 감소라는 손해를 끼친다.

실제 충북 충주시에서는 고객이 휘두른 흉기에 50대 인터넷 수리기사가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지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고, 10월엔 의정부 낙양동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철거작업을 진행 중이던 타워크레인이 쓰러져 인부 3명이 숨지고 2명이 중태에 빠지기도 했다. 모두 노동 중 일어난 사건이었다.

다행히 이를 개선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2012년부터 중증외상환자들의 치료를 담당하는 권역외상센터 설치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16년까지 16개관이 선정돼 9곳이 현재 운영 중이다. 24시간 운영되며 환자를 거부하거나 다른 병원으로 보낼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환자 본인부담률도 5%로 상당히 낮춰 진료비 부담을 줄이려 노력하고 있다. 국가가 의료비를 지원해 중증외상 환자가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사회안전망인 것이다.

수천만원에 달하는 치료비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부담으로 다가온다. ⓒMBC 스페셜

두 번째 고통 : 병원비

사고 후 권역외상센터에 신속히 도착한 사람들은 적절한 치료를 받아 사회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 <MBC 스페셜> 571회 방영분의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당한 환자 또한 권역외상센터에서 수술을 받아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감당하기 힘든 큰 액수의 병원비가 문제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중증외상 환자들의 대부분은 사회적, 경제적 여건이 풍족하지 못한 편이다. 국가가 상당분을 지원하지만 이틀치 병원비만 약 3700만원, 지금까지 1억원이라고 인터뷰하는 보호자의 표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사람 생명보다 귀한 건 없겠지만 환자에게도, 가족에게도 치료비는 큰 부담으로 남는다.

각종 장비와 의료진이 총동원되는 권역외상센터의 진료비는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다. 환자뿐 아니라 병원도 마찬가지다. 이국종 교수와 <한겨레>의 인터뷰에 따르면 중증외상환자는 보험 수가가 터무니없이 낮아, 많이 살려낼수록 적자는 늘어나는 구조이며, 2009년 8억원이 넘던 외상외과의 적자는 2012년도 20억원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를 ‘골칫덩이’라고 부를 정도였다고 하니, 웃기고도 슬픈 일이다.

세 번째 고통 : 의사들의 희생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은 아직 미흡하다. 특히 외과 기피 현상이 심해 현장에 있는 외과의사들은 수면, 식사, 가정 등 일상을 포기한 채 수술실에 들어간다. 의사 인력이 부족한데다 즉시 치료를 요하는 응급환자가 대부분이어서 이들은 매일 3~4시간밖에 못자는 강행군을 이어간다고 한다. 결국 의사들의 희생으로 환자들을 살려내고 있는 것이다. 실제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 이국종 교수는 응급환자용 헬기에서 뛰어내리다 왼쪽 무릎을 다쳤고, 세월호 현장에 출동하다가 오른쪽 어깨가 골절됐다. 심지어 그의 왼쪽 눈은 실명에 가까운 상태라고 한다.

그럼에도 사회는 그들의 희생과 노력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직업 선택에 따르는 당연한 일로 여기거나 외과 의사라면 그 정도는 감내해야 한다고 책임을 전가했다. 하지만 이런 노동 환경을 의사라는 사명감만으로 버틸 수 없는 지경이 돼버린다면 우리의 아픔을 들여다봐 줄 사람은 이미 사라진 뒤일지도 모른다.

중증외상환자들에게 의료는 서비스가 아니다.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자 사회 안전망이다. 의사들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병원 눈치를 봐야 한다면 외과의는 점점 더 줄어들고, 예방가능 외상 사망률은 더 늘어날 것이다. 아직은 미흡하지만 권역외상센터 설치 지원사업을 비롯한 의료시스템의 개선과 지원을 통해 전문의들의 건강과 환자들의 건강 모두를 지켜나갈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광호

 스틱은 5B, 맥주는 OB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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