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 핫이슈]

©보배드림

[오피니언타임스=권혁찬] 얼마전 자동차카페 ‘보배드림’에 ‘급발진 유족’이 올린 글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왔습니다. 조회수만 12만이 넘은 글은 ‘안전한 차 사세요!’로 시작합니다.

“안녕하세요. 부산 싼타페 급발진 유족입니다. 저는 장모님과 아내 그리고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그것도 한날 한시. 나의 소중한 세번의 만남은 그날 한번의 이별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저는 아버님을 단 한번도 원망하거나 미워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지금의 인생을 포기하거나 자살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앞으로 있을 급가속에 노출된 차량들이 리콜되길 원합니다. 저는 국산차가 더 발전했으면 합니다. 저는 자동차제조사를 미워하는 대신에 더욱 사용자를 위한 기업이 되기를 원합니다.”

글은 매우 차분하게 시작됩니다. 그러면서 “의료사고로 사망한 가족을 그 집도인에게 부검을 맡기는 가족이 과연 있을까요?”라고 묻습니다. 이는 차량사고의 원인규명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작금을 현실을 완곡하게 비판한 것입니다.

그는 “교통경찰과 국과수는 저보고 그 방법 뿐이라고 했습니다. ‘제조물 결함 의심사고는 그 제조사에서 조사해야 한다’고 국과수에서 제조사와 합동조사를 지속적으로 원했습니다. 앞서 일어난 다른 자동차 사고들 대부분도 제조사에서 합동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국내에 차량감식을 공식적으로 의뢰할 기관은 딱 두곳이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①조사능력이 부족한 국과수 ②제작자인 제조사”

그는 차량결함에 대한 조사의 한계, 차량사고 조사의 관행이 “이젠 바뀌었으면 한다”고 말합니다.

“저희 가족이 일으키는 한번의 외침으로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거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언제 지쳐 멈출지는 알 수 없으나 녹슨 톱니바퀴를 발견했다면, 누군가 그것에 큰 피해를 봤다면 우리가 하는 이 일련의 과정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도리라고 생각됩니다.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하고 싶습니다. 한사람 두사람의 소리가 모여야 조금씩 변화하는 게 사회 아닐까요. 저는 요즘 가족사진을 보면 눈물과 두통이 심합니다. 이 슬픔을 정면으로 받아내기엔 너무 힘이 듭니다. 이 사회가 좀 더 살기좋게 이 나라가 좀 더 평등하게 변화되었으면 합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은 “겨울철 타이어 공기압 점검하세요!”로 마무리합니다.

길지 않지만 산타페 일가족 참사사고의 유족으로, 장모님과 부인, 두 아들을 한번에 잃은 이 답지 않게 차분하게 맺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고통은 행간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습니다.

부산 산타페 급발진 의심 일가족 사망사고가 담긴 블랙박스 영상. 사진을 누르면 동영상으로 연결됩니다. ©유튜브

<부산 산타페 사고는?>

부산 싼타페 사고는 지난해 8월 운전자 한모씨(65)의 아내(60)와 딸(33), 생후 3개월과 세 살배기 외손자 등 일가족 4명이 차량 급발진으로 숨진 사고입니다. 유일하게 생존한 한씨는 택시 17년에 운전경력 30여년의 베테랑 운전자였습니다.

한씨는 “사고 당시 급가속이 이뤄지며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다”고 진술했지만 ‘운전자 과실’로 검찰에 송치됐습니다. 그러나 검찰이 ‘혐의를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며 급발진 사고로는 이례적으로 무혐의 처리한 사안입니다.

이에 따라 한씨측은 고압연료펌프의 결함을 사고원인으로 보고 제조사인 현대자동차와 부품 제조사를 상대로 100억원대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입니다.

현행법상 ‘차량결함에 따른 급발진 사고’라는 사실은 유족측이 증명해야 합니다. 경실련 등 소비자보호단체들이 “2만 여개의 부품과 수많은 전자장치들로 이루어진 자동차의 결함을 소비자가 입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입증책임을 제조사로 전환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입니다.

<차량결함 가능성 높아져>

부산 싼타페 사고의 원인은 차량결함일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습니다.

한국폴리텍대학이 유가족 한씨와 변호인의 의뢰를 받아 시뮬레이션 실험을 한 결과 ‘엔진 급가속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한국폴리텍팀은 “사고 차량에 남아 있던 인젝터와 고압연료펌프, 사고 당시 엔진오일과 싼타페 동일모델의 엔진을 결합해 실험한 결과 시동이 걸린 지 2분여 뒤에 분당 엔진 회전수(RPM)가 2000에서 5000까지 치솟았다”며 “열쇠를 뽑아도 엔진은 멈추지 않고 연기를 내뿜으며 급가속이 지속됐고 4ℓ가량인 엔진오일은 7ℓ를 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고 차량은 2002년식 디젤 모델로 고압연료펌프의 결함으로 무상수리 대상 차량이었습니다. 한씨 측은 “고압연료펌프에 문제가 발생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연료가 엔진오일 라인에 섞여 엔진 연소실에 역류 현상이 발생하며,그 결과 정상 수준보다 많은 연료가 유입돼 엔진 회전수(RPM)가 높아지는 급발진 현상이 나타난다”며 “사고 당시와 같은 조건에서 진행된 모의실험에서 차량결함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뉴스타파 탐사보도에서도 전문가들은 디젤 고압펌프의 기름누출로 엔진 오버런이 일어나 급발진이 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다음과 같이 추정했습니다.

‘디젤 고압펌프의 프렌지 볼트가 풀어져 연료가 누출됨. 누출된 연료가 엔진룸으로 들어가 엔진오일과 섞임. 정상 엔진오일은 유막이 형성돼 연소실 안으로 못들어 가지만 엔진오일이 경유와 섞이면서 유막이 형성되지 않아 혼유성분이 연소실 안으로 들어감. 연소실내 가연성 연료가 많아지며 굉음과 함께 출력이 높아짐’

급발진 소지가 있는 차량은 싼타페 뿐아니라 투싼 트라제 등 41만대(2001년 생산)에 이릅니다. 이 중 무상수리를 받은 차량은 절반정도여서 아직도 20만대가 잠재적 위험 속에 도로를 주행 중입니다. 현대차는 그동안 디젤고압펌프 문제가 제기됐음에도 공개리콜을 하지 않고 무상수리만 해왔습니다.

뉴스타파 보도에서도 국과수가 급발진 문제를 조사할 인력과 장비가 부실해(예산부족 탓) 급발진 의심사고의 경우 거꾸로 차량 제조사의 협력과 지원을 받아야 조사가 가능한 걸로 밝혀진 바 있습니다. 급발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차량 제조사에 급발진 사고조사를 의존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인 것입니다. 이제까지 이뤄진 급발진 관련소송(대법판결이 난 손해배상소송 13건)에서 차량 제작사가 모두 승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아닌가 합니다.

그동안 일어난 급발진 의심사고의 차량은 차종구분이 없습니다.

물론 현대차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사고 차량 감정결과 엔진 및 고압펌프의 특이점이 관찰되지 않았고 급발진 여부는 감정이 불가능하다고 나온 판정 등을 제시하며 반박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경실련은 차동차 관련피해 등 소비자 피해를 줄이기 위해 ‘올바른 레몬법’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경실련 성명>
소비자를 위한 올바른 레몬법 도입이 필요하다
-까다로운 자동차 교환·환불 요건으로 레몬법 도입 실효성 의문
–실효성있는 피해구제 위해선 입증책임 완화가 아닌 전환 필요

국회 본회의에서 결함이 있는 자동차의 교환 및 환불이 가능하도록 하는 「자동차관리법 개정안」 일명 ‘레몬법’이 통과됐다. 자동차 소비자의 권익보호를 위한 레몬법 도입은 의미있다.

그러나 ▲까다로운 자동차 교환·환불요건 ▲입증책임 전환 관련 내용 부재 ▲소비자법제가 아닌 「자동차관리법」 개정을 통한 도입으로 '올바른 레몬법' 도입은 여전히 숙제로 남았다.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의 까다로운 요건은 실제 교환·환불로 이뤄질 가능성이 적다.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은 ‘1년/2만km 이내 중대한 하자 2회 이상 수리’를 요건으로 하고 있다. 자동차의 결함은 차량사용기간이 점차 경과하는 가운데 추후 결함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경우 이러한 이유로 기간을 2년 이상으로 하는 주가 과반수 이상이다. 또한 주행 중 엔진 꺼짐 등과 같은 중대한 하자는 단 1회만 발생해도 생명과 직결된 만큼 레몬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교환·환불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미국 하와이주의 레몬법은 결함에 대해 1회 이상의 수리가 요건이다.

입증책임 전환 관련 내용이 빠져있다.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에는 인도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발견된 하자는 처음부터 존재한 것으로 추정하는 하자의 추정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소비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해주는 것으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6개월 이후부터는 소비자의 과실을 검토하겠다는 의미이며, 실제 결함의 원인을 규명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면 교환·환불 요청 기간을 초과할 가능성이 높아 결국 레몬법 도입 취지가 무색하게 된다.

소비자 피해구제의 가장 핵심은 입증책임의 전환이다. 2만 여개의 부품과 수많은 전자장치들로 이루어진 자동차의 결함을 소비자가 입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는 자동차회사가 결함을 입증하는 것이 당연하다.

「자동차관리법」은 소비자보호법제가 아니다. 동법 제1조의 목적을 보면 자동차 행정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한 법률임을 알 수 있다. 레몬법은 품질보증 관련법으로 소비자보호법제이다. 그러나 「자동차관리법」 개정을 통해 레몬법을 도입하는 것은 법률 본래의 입법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는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결과에서도 수차례 지적된 바 있다.

불량자동차의 위협으로부터 고통받고 있는 소비자들을 위해 레몬법은 당연히 도입되어야 한다. 형식적인 「자동차관리법」 개정이 아닌, 자동차 소비자들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실효성있는 제도 도입이 중요하다.

경실련은 지난 3월과 9월 레몬법은 독립입법 형태가 바람직하다는 의견과 함께 「자동차관리법 개정안」 반대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는 국회를 통과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계획이다. 또한 자동차 소비자들의 권익보호와 실효성있는 피해구제를 위해 소비자들과 함께 독립입법 형태의 「자동차 교환·환불법」을 마련하여 입법운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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