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의 글로 보다]

[오피니언타임스=김동진] 최근 가구업체 한샘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은 한국사회에서 성범죄 피해자를 대하는 남성들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시작은 흔히 ‘몰카’라고 부르는 불법 촬영이었다. 신입사원이던 피해자는 동기들과 술을 마시다 간 화장실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휴대폰으로 촬영한다는 것을 알고 황급히 밖으로 나와 동료들에게 알렸다. 그러자 남자 동기 하나가 과장되게 소리지르며 범인을 잡으려는 시늉을 했는데 알고보니 범인이었다. 그는 피해자와 동료들이 CCTV를 확인하려 하자, 자신이 남자동기가 안에 있는 줄 알고 장난으로 한 일이라고 변명했다.

몰래카메라 사건이 벌어진 뒤, 신입 사원 교육담당자는 회식을 마친 피해자를 불러내 모텔에서 성폭행했다. 신입 사원이 자신의 교육 담당자에게 친밀감을 느끼며 의지하는 것은 개인적인 호감을 떠나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런 상대에게 성폭행을 당한 충격은 쉽게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클 것이다.

더 황당한 것은 그 후 사건 해결을 위해 그녀를 만난 인사팀장 역시 그녀를 추행하려 했다는 점이다. 인재를 채용, 평가, 관리하고 직원들의 복리후생을 위해 힘써야 할 인사팀장이 성폭행 피해자를 보호해주기는커녕 또 다른 성폭력을 가한 것이다. 몰래카메라 피해자를 대상으로 계속해서 성범죄가 반복됐고, 이러한 일들이 한 회사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SNS에서는 한샘 불매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픽사베이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자신은 진심으로 상대를 좋아했고 상대도 나에게 호감이 있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가해자도 피해자와의 카톡 내용까지 공개하며 그렇게 주장했다. 그 말은 진심으로 좋아하면 상대방의 의사와 상관없이 성관계를 시도해도 된다는 말처럼 들린다. 과정이나 결과에 약간(?)의 문제가 있어도 의도가 순수하니 별 문제가 없다는 식이다.

그리고 많은 남성들이 모텔까지 따라 들어왔으면 상대방도 의사가 있었던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실제로 많이들 그렇게 착각하지만 모텔에 같이 들어왔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성관계에 합의했다는 증거가 될 순 없다. 상대방이 원치 않는 성관계를 우리는 성폭행이라 부른다. 부부사이에도 강제적인 성관계는 강간으로 인정되는데 모텔에 같이 들어왔다는 이유로 성폭행이 합의된 관계가 될 순 없는 것이다.

사건의 파장으로 한샘 불매운동이 벌어지자 가해자를 옹호하는 남성들이 한샘 구매운동을 벌인다는 웃지 못 할 소식까지 들렸다. 이런 사건이 벌어질 때 마다 왜 많은 남성들이 가해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지 모르겠다.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는 여성들에게 당했다는, 일종의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 가해자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자신도 똑같은 행동을 할 것이라는 자기 암시라도 받은 것일까? 한샘의 가구들이 몇백만원씩 하는 고가의 제품이라는 것은 알고 구매운동을 한다는 것일까?

흔히 남자의 성욕은 본능이라 통제하기 힘들다고 한다. 아이들을 위한 성교육 만화를 본 적이 있는데 만화 속에서 엄마가 짧은 옷을 입은 여자아이의 옷을 지적하며 그런 옷은 남자들의 본능을 자극할 수 있으니 위험을 부르는 옷차림은 조심하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남자들의 성욕은 본능이라는데 왜 그 본능은 술에 취한 여자나 자신이 제압가능하다고 믿는 여자 앞에서만 나타나는 걸까? 남자의 본능이 그렇게 통제 불가능한 것이라면 경찰이 옆에 있는데도 자신의 본능을 주체 못하고 술 취한 여성을 강간한다면 그때는 기꺼이 그 본능이라는 것을 인정해주겠다.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진심을 몰라준다고 오늘도 울부짖는 남자들이여. 진심은 일방통행하지 않는다. 일방통행하는 진심을 성폭력 또는 스토킹 범죄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김동진

한때 배고픈 영화인이었고 지금은 아이들 독서수업하며 틈틈이 글을 쓴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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