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따듯한세상]

[오피니언타임스=김연수]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예능이 새롭게 탈바꿈하고 있다. 예전에는 남을 속이고 서로 구박하며 억지웃음을 짜내는 코너가 많았지만, 지금은 다양한 문화체험과 경험 및 추억 쌓기를 통한 힐링 예능이 대세가 됐다. 어느새 우리 삶으로 들어온 예능의 변화를 되짚어봤다.

드라마는 박수를 받으면서 아름답게 종영되지만 예능은 그렇지 않다. 높은 시청률로 황금기를 누리지만 그 시기는 영원하지 않은 법이다. 아무리 인기있는 예능이라도 비슷한 포맷이 반복되면 질리게 마련이다. 그래서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지만, 적절한 작별 타이밍을 재는 건 쉽지 않다. 서서히 어둠이 드리우고 시청자들이 외면하기 시작할 때 전성기는 빠르게 시들어버린다.

장수 예능프로그램 ‘1박2일’ 스틸컷 ©KBS

가장 대표적인 예로 KBS ‘1박 2일’을 이끌었던 나영석 PD가 있다. 그는 1박 2일을 통해 주말 안방을 뜨겁게 달궜다. 그러나 4년여 동안 프로그램을 이끌며 아이디어 고갈에 힘들어했고, 결국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런 시기를 겪어서 일까. 그는 분량이 정해진 짜임새 있는 힐링 예능으로 다시 한 번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현재 꽃보다 할배, 신서유기, 삼시세끼, 신혼일기, 알쓸신잡, 윤식당 등등 시즌제 예능으로 흥행을 일궈냈다.

나영석의 성공 이후 수많은 힐링 예능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시청률에 목을 매고 배신과 디스가 난무한 예능은 시들해진 지 오래이다. 낮은 시청률로 종영된 경청 위주의 예능들은 뒤늦게 SNS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국민MC로 유명한 방송인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 면면을 살펴봐도 달라진 기류를 엿볼 수 있다. 이경규, 신동엽, 강호동, 유재석 등이 초창기 진행했던 예능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면 서로를 속고 속이는 컨셉이 대부분이다. 이경규는 몰래카메라로 연예인들의 속마음을 떠보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고, 강호동은 매력적인 남녀 연예인이 개성을 뽐내고 커플을 이루던 ‘연애편지’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유재석의 ‘X맨’은 이른바 ‘당연하지’라는 게임으로 서로를 디스하고 사람들을 속이며 말초적인 재미를 선사했다.

시청자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단순한 플롯의 예능들이 지나간 뒤로는 서바이벌 예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서바이벌 예능을 표방한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노래, 요리, 랩에 이르기까지 신선한 얼굴의 일반인들을 내세워 승승장구했다. 자신의 꿈에 한 발 더 다가서기 위한 일반인들을 꿈과 노력은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일부 프로그램은 그들의 진심을 담기보다 자극적인 편집에 열중해 출연자는 물론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2017년에는 예능 지형도가 확 바뀌었다. 억지로 만들어내는 웃음보다 사람들의 일상을 그대로 전달하고 자연스러운 감동과 공감을 주는 프로그램이 많아졌다.

그동안 우리는 누군가를 골탕 먹이는 예능을 많이 봐왔다. 그래야 사람들이 많이 웃는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프로그램 중간중간에 방청객들의 웃음소리가 효과음으로 나왔으니 말이다. 요즘 유행하는 힐링 예능을 보면 큰 소리로 깔깔대며 웃는 것도 좋지만 일상의 작은 미소 하나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아가기 때문일까. 속고 속이며 배신까지 해가며 게임에서 이겨 승리를 차지하는 예능에 우리는 지친 것만 같다.

한국 예능이 질 높은 웰메이드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도와 아낌없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새로운 즐거움을 만들려는 사람을 응원하는 문화적 풍토가 중요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숫자에 집착한다. 1등만이 빛나는 게 아니라 의미 있어야 빛난다는 걸 모두 잊지 말았으면 한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과정은 막막하고 실패는 딛고 일어나기 힘든 법이다. 실제로 요새 실패한 예능 프로그램도 몇몇 볼 수 있다. ‘별거가 별거냐’에서는 숨겨진 고부갈등과 연예인 부부생활의 민낯을 보여줌으로써 이혼 장려 프로그램, 비혼 장려 프로그램이란 비아냥을 듣고 있다. 또한 국민 MC 이경규와 강호동이 함께 등장하는 ‘한 끼 줍쇼’는 호불호가 갈린다. 일각에서는 갑작스럽게 방문해 함께 식사하는 컨셉이 무례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빛이 있는 한 어둠이 있을 수밖에 없다. 실패를 디딤돌 삼아 더 좋은 예능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기 위해 밤을 지새우고 고군분투하는 예능인, 제작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요즘은 손가락질이 아닌 위로가 가득한 예능 덕분에 하루의 끝이 즐겁다. 박장대소는 아니지만 옅은 미소가 쌓여 큰 에너지가 된다. 부디 우리의 안방에 더 많은 미소가 쌓였으면 한다. 

김연수

제 그림자의 키가 작았던 날들을 기억하려 글을 씁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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