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경의 현대인 고전 읽기] 조지 오웰 <동물농장> (Animal Farm)

[오피니언타임스=김호경]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살인마’ 순위는 명확하지 않다. 너무 많은 사람을 죽여 그 숫자를 정확히 헤아리기 어렵고, 어떤 사람(사건)은 너무 오래되어 기록이 부정확하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 대학살로 명성을 날리고 있음에도 그 자신이 직접 죽인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희한한 공통점도 있다.

관점에 따라 순위는 다르지만 대략 도조 히데키(일), 징기스칸(몽골), 폴 포트(캄보디아), 이디 아민(우간다), 레오폴드 2세(벨기에 국왕), 도르곤(명말청초의 섭정왕), 서태후(청), 히틀러(독), 쿠빌라이 칸(원), 스탈린(소), 모택동(중) 등이다. 서양인보다 동양인이 4:7로 많은 사실이 의외이며, 권력과 부·천수를 누린 사람 역시 4:7로 많다는 사실이 살아있는 ‘착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현대의 3대 학살자인 히틀러는 1700만, 스탈린은 2300만, 모택동은 7800만명을 학살(혹은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전해진다. 권력을 잡기 위해 죽인 사람의 숫자보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죽인 사람이 절대적으로 더 많다. 그런 만큼 세 명의 독재자는 역사에 길이 남을 연설 문구(혹은 명언)를 쏠쏠히 남겼다.

“진실한 국가적 지도자의 능력은 주로 국민의 주의력을 분산하지 않게끔 막는 데 있으며, 그것을 하나의 적에 집중시키는 데 있다.” - 히틀러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 모택동
가장 많은 격언을 남긴 사람은 스탈린이다.
“표를 던지는 사람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표를 세는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격언은 바로 이것이다.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요,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이다.”

스탈린, 히틀러, 이디 아민, 마오쩌뚱 등은 동물농장의 우두머리 돼지 나폴레옹의 실사판이다. 한국에는 누가 있을까? ©김호경

‘이상향’과 ‘집단농장’의 거리는 멀고도 가깝다

영국의 토마스 모어는 1516년 <유토피아>라는 공상소설을 발표했다. Utopia는 원래 ‘아무 곳에도 없는 나라’라는 뜻인데 이 소설을 계기로 ‘이상향(理想鄕)’의 뜻으로 굳어졌다. 이는 문학적인 용어일 뿐 정치적으로 번역하면 ‘집단농장’이 된다. 모어는 공평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자는 긍정적 의미에서 <유토피아>를 집필했으나 사회주의 사상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 후 캄파넬라(Tommasso Campanella)-바뵈프(Franois Emile Babeuf)-부오나로티(Filippo Michele Buonarrotti)-블랑키(Louis-Auguste Blanqui)-로버트 오언(Robert Owen)-생시몽(Saint Simon)으로 이어졌다. 오언은 실제로 1880년대에 미국 인디애나 주 서남부에 뉴 하모니(New Harmony)라는 공동체 마을(유토피아)을 건설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이상향을 만들겠다는 정치 지도자들의 욕구는 매우 강한 것이어서 오언의 실패 이후에도 유토피아는 계속 나타났다.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을 계승한 레닌과 그의 후계자가 된 스탈린에 의해 1920년대에 집단농장의 형태로 구체화되었다. 바로 콜호츠(kolkhoz)와 소프호스(sovkhoz)이다. 중국에서는 ‘인민공사(人民公社)’가, 북한에서는 ‘협동농장’이 만들어졌다. 집단농장이나 공동체가 꼭 공산주의 국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에도 ‘키부츠(Kibbutz)’가 세워졌다.

표방하는 구호가 무엇이든 집단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며, 그곳에서 인간에 의해 사육되는 소, 돼지, 말 역시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늘 배가 고프고, 행복과는 거리가 멀며,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하면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반란을 일으킬 것이다. 이는 동물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동물농장 책 표지와 저자 조지 오웰. 동물농장이 묘사하는 세계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김호경

모든 동물은 평등할까?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나폴레옹은 돼지이다. 그리고 두목이다. 반란을 성공시킨 뒤 동료 돼지들과 협의하여 <동물주의 원칙 7계명>을 완성하여 발표한다.

1. 두 다리로 걷는 자는 누구든지 적이다.
2. 네 다리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자는 모두 우리의 친구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농장의 모든 동물들은 이 계명에 찬성한다. 이를 인간에게 변형, 적용시킨다 하여도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물며 동물들이 반대할 이유가 있겠는가? 동물들은 신이 나서 건초밭으로 달려가 일을 하려 한다(동물농장의 본업은 ‘노동’이다). 바로 그때 암소 3마리가 퉁퉁 불은 젖을 짜달라고 요청한다. 사람이 모두 쫓겨나 젖을 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돼지들은 즉시 젖을 다섯 양동이나 짰다. 누군가 물었다.
“그 우유를 어떻게 하려 합니까?”
나폴레옹이 대답한다.
“그것은 잘 처리될 것이오... 동무들! 앞으로 가시오. 건초가 기다리고 있소.”
과연 우유 다섯 양동이는 어떻게 처리되었을까?

아무도 묻지 않는다. 잔인한 존스에 의해 운영되던 <매너 농장>이 위대한 지도자 나폴레옹의 투쟁 덕분에 <동물농장>으로 이름이 바뀌고 자신들이 주인으로 탈바꿈했기 때문이었다. 개 블루벨·제시·핀처, 숫말 복서, 암말 클러보·몰리, 흰 염소 뮤리엘, 당나귀 벤자민, 까마귀 모제스... 그리고 고양이, 오리들, 쥐들 모두 공평하고 행복한 삶을 이어간다. 기껏해야 다섯 양동이에 불과한 우유의 행방을 따지지 않는다. 모두 예전보다 조금씩 덜 먹고, 더 일하지만 인간에 의해 착취를 받지 않기 때문에 모두가 만족한다. 그리하여 즐거운 노래가 농장에 가득 울려 퍼진다.

풍요한 영국의 들판에는
오직 동물들만 활보하리라.
코에서는 굴레가 사라지고
등에서는 멍에가 벗겨지리라
재갈과 박차는 영원히 녹슬고
무자비한 채찍은 이제 더 이상 소리내지 못하리라.
과연 언제까지 그 노래가 울려 퍼질까?

아직도 계속되는 ‘위대한 통치자’에 대한 환상

<동물농장>은 1945년에 발표되었다. 이 소설은 정치소설이면서 풍자소설이고, 한편으로는 코미디이다. 상황 전개와 대사가 무척 유머스러워 갑작스레 폭소가 나온다. 웃음이 터지는 가장 큰 이유는 결말로 갈수록 내가 사는 세상과 똑같기 때문이다. 72년이 지났음에도 소설 속의 내용은 지금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그래서 폭소(너털웃음)는 실소(서글픈 웃음)로 변한다.

<동물농장>은 우리 삶의 축소판이자 지구촌 거의 대부분 나라의 실사판이다. 스탈린을 풍자했다 하여 옛 소련만을 비판한 작품이라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위대하신 통치자에 의한 동물 농장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한국은 그렇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독재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언제까지 유효할 수 있을까?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민주와 자유가 일부분 제한되어야 한다”는 말을 우리는 순순히 받아들여야 할까?

‘그렇다’는 답이 많을수록 우리는 동물 농장의 개·돼지로 추락한다. 나폴레옹은 죽지 않았다. 단지 어둠 속을 배회할 뿐이다. 지도자에 대한 환상을 깨지 않는 이상 나폴레옹은 다시 화려하게 부활할 것이다. <동물농장>은 그 메시지를 주는 경고소설이다.

더 알아두기

조지 오웰의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이다. 보기 드물게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으며 1950년 47세의 이른 나이에 결핵으로 사망했다. 또 다른 대표작 <1984>는 ‘빅브라더’의 존재를 들려주는 소설이다.

영국 소설로 반드시 읽어야 할 작품은 서머셋 모옴의 <달과 6펜스>(예술), 토마스 하디의 <테스>(사랑),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사랑과 몰락),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상의 미래)이다. J.R.R. 톨킨의 <반지전쟁>은 20세기 최고의 소설로 뽑혔으나 가독성(可讀性)은 매우 어렵다.

동물이 주인공인 소설로는 잭 런던(Jack London, 미국)의 <황야의 절규>가 유명하다. 유대인 학살을 다룬 아트 슈피겔만(Art Spiegelman, 스웨덴)의 만화 <쥐>도 걸작이다. 유대인은 쥐로, 독일군은 돼지로 묘사되었다.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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