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의 그 시절 그 노래]

<관상학으로 풀어본 고월 이장희의 생애上>에 이어

[오피니언타임스=이동순] 고월 이장희의 경우 지금까지 남아있는 사진 한 장이라곤 없다. 워낙 폐쇄와 차단 속에서 칩거생활로 일관했던 터라 벗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을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봄은 고양이로다’의 표지에는 고월 이장희의 초상화가 표지화로 실려 있다. 과거 문학사상사에서 이장희 특집을 꾸미면서 한만영(韓萬榮) 화백에게 의뢰하여 제작한 초상화이다. 벗들의 회고록과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듣고 정리하여 복원한 상상도인데, 이장희의 문학 분위기와 제법 많이 닮아 있다. 그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고월의 관상이 그의 비극적 생애처럼 박덕한 분위기로 실감이 된다.

나는 관상학(觀相學)에 대하여 아는 바 없지만 주워들은 이야기를 통하여 판단하자면 우선 이장희의 입모양이 너무 얇고 선이 불분명하다. 이런 입술은 혀의 길이도 넉넉하지 않아서 항상 조바심 속에 불편하게 살았을 것이다. 보나마나 그 때문에 생애 전체가 간난(艱難)과 신고(辛苦)에 시달린 것은 아닐까 한다.

눈은 사람의 심장을 나타내는 것이라 한다. 눈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알아 볼 수 있고 또한 성격까지도 들여다 볼 수 있다고 하니 무서운 단서라 아니할 수 없다. 반드시 관상학이 아니라 하더라도 눈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그 사람의 성격과 장래까지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래서 눈을 흔히 마음의 창문이라고 한다. 고월의 눈빛은 선량하다. 하지만 너무 착해서 마치 바보처럼 종작을 잡지 못할 뿐 아니라 시선이 줄곧 허공을 멍하게 보고 있다. 마음이 여린 것은 고월의 장점이 될 수 있으니 줄곧 허공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무언가 마음의 불안정을 반영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관상학에서는 눈썹의 모양도 중요한 단서라고 한다. 가만히 지켜보면 고월의 눈썹은 그 끝이 위로 약간 치켜 올라가 있다. 눈썹은 형제를 나타낸다고 한다. 마치 누에의 모습과 같은 아미(蛾眉)의 형상이었다면 형제간의 불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월 이장희의 경우 형제간에 전혀 통교(通交)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죽는 순간까지 고립과 단절 속에서 다만 혼자였다. 우리는 고월의 눈썹에서 형제간의 우애가 좋지 않았던 점을 읽어낼 수 있다.

다음으로는 코의 모양이다. 초상화를 통해서 읽어보는 고월 이장희의 코 모양은 끝이 너무 날카롭고 살이 단단해 보인다. 관상학에서 코끝의 살이 딱딱한 사람은 화목한 집안을 이루기가 어렵다고 한다. 콧대의 중심도 반듯하게 곧지 못한 듯 느껴지는데 이는 극심한 고독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암시해 준다.

이장희의 귀가 지닌 생김새도 궁금한데, 안타깝게도 고월의 초상화는 길게 자란 장발이 머리 전체와 귀까지 덮고 있다. 1920년대 특유의 헤어스타일이다. 하지만 고월의 경우 일부러 멋을 부린 장발이 아니라, 그냥 자신의 용모에 대하여 무관심과 방치 속에서 마구 자랄 대로 자란 형상에 가깝다 하겠다.

이 장발 속에 감추어져 보이진 않지만 틀림없이 고월 이장희의 귀는 겉귀와 속귀에서 그 빛깔이 검은 빛으로 감돌았을 것이다. 이런 모습은 재물과는 거리가 멀고 오로지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과정을 나타낸다. 하지만 빛깔이야 검다 할지라도 귓밥은 제법 둥글고 커서 오래 오래 그 이름을 후세에 기억되도록 할 것이라 하는데 고월은 과연 문학사에서 그 이름을 줄곧 남기고 있다.

이러한 귓불에 비하여 귓구멍은 몹시 좁고 구불구불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관상학에서는 이도(耳道)에서도 인간의 성격을 짐작한다는데 귀의 구멍이 좁고 구불구불한 사람은 성격이 소심하고 원만하지 못한 형세를 나타낸다고 한다. 고월의 경우 주변 환경의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신의 역경을 버티고 극복해 나아가지 못한 경과를 보여준다. 그러한 소심함은 고월을 불행한 최후로 이끌고 갔다.

끝으로 고월의 얼굴색에 관한 추측을 해보고 싶다. 고월 이장희는 항상 바깥출입을 즐겨하지 않고 어둔 방안에 혼자 칩거하여 방바닥에 금붕어 그림만 그리고, 불행을 암시하는 시를 쓰다가 종생을 맞이하였다. 그러므로 고월의 안색은 자신이 처한 고립적 상황과 조건에 부합되는 흉색(凶色)을 나타내었을 것이다. 그 흉색이란 창백하면서도 푸르스름한 빛깔을 말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불확실성까지 이 안색에는 반영이 되어 있었다.

장구한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는 고월의 초상화를 관상학적 조건으로 분석하고 풀이해보면서 주변 가족들에 대한 원망과 불만을 털어놓지 않을 수 없다. 한 집안의 귀한 아들이었던 고월 이장희의 행동거지와 안색, 말투, 걸음걸이 등등 이 모든 것에 대하여 조금만 주의 깊게 애정을 갖고 지켜보았다면 고월 이장희를 죽음의 수렁으로 내몰지 않았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따뜻한 응시가 얼마나 부족했던 것인가.

하지만 당시 고월의 부친 이병학(李炳學, 1866~1942)은 대구의 손꼽히는 친일부호로서 자신의 부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날이면 날마다 일본 관리와 경찰, 헌병대 장교들과 어울려 술집을 다니느라 자신의 아들을 살뜰히 돌볼 틈이 없었다. 고월의 부친은 이른바 한일합방, 즉 경술국치에 이바지한 공로를 높이 인정을 받아서 조선총독부로부터 친일파들의 집합기관이었던 중추원(中樞院) 참의(參議)에 임명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병학은 고월의 모친이 세상을 떠난 뒤 두 사람의 새 부인을 잇달아 후처로 맞이하면서 그 사이에 도합 12남 9녀, 즉 스물 한 명의 자녀를 두었다. 이런 형편이니 전실부인 소생이었던 아들 이장희의 존재가 부친에게 귀하고 살뜰히 거두어야 할 대상으로 다가가지 못했을 것임은 그 누구도 짐작이 가능하다. 이 무서운 냉담과 소외!

고월 이장희 시비 ©이동순

애달파라, 한 시인의 애달픈 죽음이여!
안타까워라, 가치의 중심을 잃은 한 가정에서의 지리멸렬함이여!
사람으로 한 세상을 살아간다는 일이란 얼마나 엄숙하고 지중한 일인가? 우리는 오늘 고월 이장희의 생애를 함께 더듬으며 새삼 소스라쳐 놀라 우리 스스로를 다시금 돌이켜 보게 된다.

 이동순

 시인. 문학평론가. 1950년 경북 김천 출생. 경북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동아일보신춘문예 시 당선(1973), 동아일보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1989). 시집 <개밥풀> <물의 노래> 등 15권 발간. 분단 이후 최초로 백석 시인의 작품을 정리하여 <백석시전집>(창작과비평사, 1987)을 발간하고 민족문학사에 복원시킴. 평론집 <잃어버린 문학사의 복원과 현장> 등 각종 저서 53권 발간. 신동엽창작기금, 김삿갓문학상, 시와시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받음. 영남대학교 명예교수. 계명문화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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