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완의 애, 쎄이!]

[오피니언타임스=우디] 종로3가에 있는 영어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침 10시부터 12시 20분까지 하는 수업이고 읽기(Reading)와 문법(Grammar)으로 구성된 코스이다. 주5일, 매일 아침 파란버스에 몸을 싣고 취준생이 되어 종로로 향한지 보름이 조금 넘었다.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처음 어학원에 가본 나는 조금 늦은 출발이다. 학원에 가면 단어장을 쥐고, 추운 날임에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든 사람들이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다. 예전에 재수종합반을 다녔던 기분이 들기도 했다. 수업은 즐겁다. 4년 정도 암기나 시험형 공부와는 멀리 떨어져 살았었다. 오랜만에 형광펜과 삼색펜을 들고 필기를 하면서 수업을 듣고 암기를 하니 재밌었고, 예전엔 이해되지 않았던 수많은 영문법이 이해가 돼서 수업이 끝나면 카페로 자리를 옮겨서 단어를 외우고 복습을 했다. 꽤 보람찬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었다. 하지만 나의 친구들에게는 꽤 충격이었나 보다.

‘종로에 영어학원을 다니고 있어, 주5일 동안 매일매일 가.’라고 말을 건네면 친구들의 반응은 거의 80퍼센트 정도가 ‘네가 왜?’였다. 네가? 거짓말이지? 설마 토익을 준비해? 네가? 영어학원을 간다고? 그런 반응을 듣고 있자니 ‘도대체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던 것일까, 반성을 해야 하는 거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내 친구들은 그 말들을 나쁜 뜻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정말 의아스러웠고, 또 뭔가 ‘이 아이에게도 현실이 왔구나’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한 친구는 전화로 까르륵 웃으면서 무엇인가 섭섭하면서도 체념한 듯 “마지막 희망의 불꽃이 꺼진 느낌이네.”라고 말했다.

©픽사베이

친구들은 왠지 나에게는 영원히 현실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고 했다. 내일도 모레도 내년도 어디선가 엄청나게 일을 해서는 ‘안녕!’이라고 말하며 다른 나라에 가있을 것만 같았다고 말했다. 그런 아이가 갑자기 ‘종로에 있는 어학원’이라는, 마치 취준생의 필수코스 같은 곳을 다니고 있다니 정말 이상한 느낌이었다고 했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반항하고 싶어서, 똑같은 길을 가고 싶지 않아서, 그런 특별한 이유를 가지고 떠돌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하고 싶어서 했었다. 돈이 있고 시간이 있기에 하고 싶은 것을 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은 하고 싶지 않아도 언젠가는 꼭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2년 정도를 이곳저곳 여행하고, 동네에 있을 때는 어떻게 하면 더 잘 놀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잘 쉴 수 있을까 하면서 베짱이 같은 생각을 자주 했다. 그러다가 한 달여를 일본에서 보내고 오니, 통장이 정말 텅텅 비어있었다.

도쿄에서 한 달을 보내기 전부터 나의 백수시절 마지막 여행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막상 이제 이 생활도 청산을 해야 하는구나, 하니 조금 슬픈 것도 사실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빈털터리의 신분으로 방안에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니, 특별한 이유로 여행을 한 것도 아니지만 그 삶을 선택했던 것도 아니라는 사실 알았다. 해야 할 일들을 미뤄두는 시간이었구나, 고작 그런 시간이었구나, 하는 생각까지 이르자 그 순간엔 가슴 한구석이 너무나 헛헛했다. 어차피 나는 아주 긴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돌아와야 하는 사람이었구나 하는 마음에서. 하지만 신기하게도 돌아온 현실이 그렇게 심각하게 꿉꿉하지 않았다.

취업을 위한 영어 공부가 숨이 막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살면서 거쳐야 할 스펙 쌓기구나.’라고 생각하면 조금 숨이 트였다. 그리고 여기저기 나가보면서 영어를 하는 것이 득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삶을 유지하는 데에 있어서 ‘직업’이라는 것과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할 ‘경제력’이 어떤 느낌인지도 대략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돌이 지난 아이는 걸음마를 떼게 되고, 젖을 뗀 아이는 이유식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어떤 시기에 해야 할 일 같은 느낌으로 현실이 다가왔다. 뒤통수를 퍽 때리고 쏟아지는 현실이 아니라, 처음으로 내 삶에 현실이 잔잔하게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 필진들의 회식자리에서 ‘오딧세이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유아기-아동기-청년기-성년기-중장년기-노년기’로 이루어지는 인간의 발달단계에서 청년기와 성년기 사이에 요즘에는 ‘오딧세이기’가 생겼다는 얘기였다.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바다에서 떠돌았던 것처럼 요즘 청년들 역시 성인이 되기 전 무언가에 도달하기위해 방황을 하는 때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이상한 위안을 얻었다.

매여 있는 것이 없이 자유롭게 여행을 하고 오면 무엇인가 다른 선택지가 내 앞에 놓여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끝난 시기의 내 손에는 특별한 무엇이 쥐어져있지 않았다. 난 이제 취업을 해야 할 텐데, 그럼 나의 방황은 이렇게 끝나는 건가 싶었다. 고등학생 때 친구와 나는 ‘그저 그런 어른’이 되지 말자고 얘기 했었는데, 이 여행 끝에서도 내가 변하지 않았다면 나는 결국 그저 그런 어른이 되겠구나, 라는 절망이나 공포 같은 것이 찾아왔다. 이런 때에 ‘오딧세이기’는 이 방황의 매듭이 지금이 아니라는 얘기로 들려왔다. 우리는 1년이 2학기의 형태로 이루어져있는 삶에 익숙했다. 1학기, 여름방학, 2학기, 겨울방학. 그러면 1년이 지나서 다음 학년에 도달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의 방황도 어떠한 분기로, 어떠한 사건의 끝으로 매듭지어야만 하는 것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꼭 그렇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나는 종로의 어학원을 다니지만 여전히 여행 중인 느낌이다. 친구들이 말했던, 보헤미안의 삶을 정리하고 취준생으로 돌입한 시간이 아닌 그냥 하고 싶은 것을 계속했던 나의 긴 방황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사실 이런 것들을 그냥 알아낼 수는 없었던 것 같다. 하루를 살고 한 달을 지나쳐 왔기 때문에 알 수 있었던 일인 것 같다. 여행이 끝난 나는 한동안 우울했고, 또 한동안 좌절했지만, 지금은 그냥 살아가고 있다. 낙오라든지 대비라든지 그런 경쟁이 있고 기한이 있는 삶이 아닌 그냥 나의 시간을. 어제를 오늘을 내일을, 내년을 말이다. 아마 우리 모두 그렇게 각자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각자가 모두 특별하게 모두 방황하면서.

 우디

 여행, 영화, 글을 좋아하는 쌀벌레 글쟁이.
 글을 공부하고, 일상을 공부합니다.
 뛰지 않아도 되는 삶을 지향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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