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 남자⑥

소녀가 사라진 후 소년도 섬을 떠났다. 생전 못 보던 도시들 속으로 들어갔다.
큰 도시는 섬보다 풍부했지만 알면 알수록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바위 끝처럼 날카로웠다. 바다는 길이 없어도 다 통했지만 큰 도시는 길이 복잡했다. 그 길을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 갑자기 고립되기 일쑤였다.

어느 날 소년은 그 길을 거부했다가 다리 불구가 되었다.  소년의 손에 나무 지팡이가 주어졌다. 소년은 울었다. 꿈에서도 또 울었다. 절망한 소년은 그림을 그렸다. 

다행히 그림은 소년을 지켜줬다. 소년은 도시의 남자가 되어갔다. 그림에 빠져 들었고 남자는 그림으로 이름을 얻었다.

세월이 더 흘렀다.
그림은 남자를 지켜줬지만, 세상은 남자를 지켜주지 않았다. 바위섬을 덮쳤던 검은 파도처럼 세상은 남자를 수시로 덮쳤다.
불안한 성공은 칼 끝에 서는 것과 같았다, 남자는 세상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 도시의  칼 끝 삶에 부는 폭풍은 늘 잔인했고 위태로웠다. 모두 폭풍의 언덕 같았다. 문득 문득 바닷가 바위섬과 지팡이 이전 소년이던 때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은 가슴의 그리움 뿐이었다. 그 길은 가기에는 너무 아득했다.
남자는 도시에서 관계(Link)라는 그물에 깊게 매여 있었다.
가족, 지위, 명성…… 고립, 질투, 추락 같은 그물들.
어릴 때 바위섬에 웅크리고 앉아서 보았던 두 개의 색이 떠올랐다. 검은 색과 노란 황색. 고향 바위섬에서 본 그 두 개의 세상이 남자 내면에서 싸웠다. 현실은 검은 색인데 가슴은 노란 황색이었다. 검은 색 파괴가 늘 황색 동경을 눌렀다. 남자는 망설이고 주저했다.

어느 날, 도시로 바람이 찾아왔다.
바위섬에 불던 그 바람이었다.
북쪽에서 오는 길이라고 했다.
바람은 남자보다 먼저 살았던 한 북방 시인의 시를 들려주었다. 

      …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탸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가슴이 격해졌다. 소주를 마시며 땅끝 마가리로 그냥 가고 싶었다. 하얀 눈이 오는 날, 나타샤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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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고향 꿈을 꾸기 시작했다.
온통 푸른 색이었다.

산은 하늘로, 물은 바다로, 사람은 전설로 향하는…
너영나영 둥그렇고 굴곡져 날카롭지 않은 그 곳.

천지연 내팡돌, 자구리, 바닷가 소낭머리…
그 소리가 귓가에 와랑와랑 들렸다. [오피니언타임스=변시지, 황인선] 

*마가리: 오두막처럼 비바람 정도만 막을 수 있도록 간단하게 꾸린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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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은 변시지 그림을 소유한 시지아트재단과 황인선 작가와 협의 후 게재하는 것입니다. 본문 안에 포함된 사진을 따로 퍼가거나 임의로 사용할 경우 저작권법에 저촉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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