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안의 동행]

[오피니언타임스=최수안] 포기해야 할 것이 많은 이에게는 감정도 사치인걸까. 편리함을 찾는 요즘, 오히려 편안함을 잃는지도 모른다.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위태로운 것을 향하는 게 순리인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비정규직처럼 불확실성이 넘친다. 성장통일지도 모르는, 상처받고 아파하는 일도 감정 소모일 뿐이고 바쁘고 벅찬 일인지도 모른다. 불안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낯설음을 경계하는 것도 당연하다.

'잘 해줘봤자 아무 소용없어'라는 말을 하는 사람 중에 순수한 진심으로 상대를 대한 사람은 없다고 본다. 순수한 진심이라면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대가를 바랐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은 등가교환이 아니다. 1000원짜리 지폐를 넣는다고 1000원짜리 음료수가 나오지 않는다. 각자의 경험과 사정으로 애정을 담을 그릇이 작아지거나 깨진 상태로 있는 사람도 있고 일단 경계를 하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니 내가 상대를 경계하는 것도 당연할 밖에.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어서 별스런 일들이 일어나고 또 유별난 관계가 발생한다. 목적이 서로 맞으면 쿨한 관계가 된다. 그렇게 조건이 맞아 계약처럼 보이는 객관적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서로 이해가 맞지 않으면 둘 중 한명은 자신을 일회용품처럼 느끼며 상처받고 만다.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보면 어느새 이별은 버릇이 되고 만다.

©픽사베이

우리는 마음에 짐이 많아 진심을 받아들일 공간이 없는 것일까. 나에게 필요한 사람을 편의점에 진열된 인스턴트식품이나 편의를 제공하는 물품을 고르듯이 느껴지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재활용품을 분리수거하듯 골라 버리며 일회성 관계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겉만을 탐닉하며 책임지는 일은 싫은 것이다. 스러져버릴 거품의 세계에서 언젠가 자신이 느끼는 소멸시효에 다다른다면 그때는 어떡하면 좋을까. 무작정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도 타인의 삶을 다 알지 못 하기에 간섭하거나 비난할 권리는 없다. 다만 다각도로 살펴보며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것이다.

각각 사람의 마음이 서 있는 기후는 다르다. 그리하여 타인과의 비교 끝에 타인을 경쟁자로 인식하며 SNS속에서 누가 더 행복해 보이는지 재며 나는 이렇게 더 행복하다는 것을 꾸며 보이는 것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지운다. 사람과 만나 위로를 얻는 대신 익명성이란 가면을 쓰고 나쁘게 삭은 감정을 해소하는 사람들도 있고, 변해가는 사람이 싫어 종이에 그려진 2차원 속에서 감정을 꽃피워나가고…….

때때로 우리는 어느 책에 적힌 표현처럼 사랑받기 위해 안달이 난 후궁같다. 사회는 야생처럼 거칠다지만 동물원에서 키워져 생기가 없고 퇴화하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는 점과 점으로 있을 뿐, 선으로 연결될 수는 없는 것일까. 아니면 끝내 닿지못 할 평행관계인가. 모두가 대인관계에 대하여 어려움을 호소한다. 어려움을 쉽게 풀어가는 것이 할 일 중 하나다.

고민한다는 것은 원한다는 것이다. 세태가 이렇다고 해서 나를 규격화해서 굳이 끼워 넣어 맞출 필요는 없다. 또한 '완벽'이라는 것도 환상이다. 완벽한 사람이 없기에 우리는 함께 해야 한다. 백가지 중에 아흔 아홉 가지가 맞더라도 단 한 가지가 어긋난다면 조각조각 깨질 수도 있다. 내게 완벽한 사람을 찾아 노력없이 좋은 관계가 유지되기를 바란다면 그건 초능력을 갖길 바라는 것과 같다. 우리는 초능력이 없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관계맺기는 어렵다.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손가락을 움직여 반품하듯이 인간관계도 차단하거나 외우지 못한 번호도 삭제해버리면 끝인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손에는 프랜차이즈 커피를, 다른 손에는 휴대폰을 든 현대인의 두 손은 바쁘다. 누군가의 손을 잡을 수 없다. 손가락에는 굳은살이 생겨 다른 이의 손을 잡기에 거칠다. 사람이 제일 무섭다지만 무서운 사람일수록 가엾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중심축은 사랑에 있다고 본다. 사랑받지 못하고, 사랑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엇나간다. 따스하게 내민 손에 솜사탕하나를 손에 쥐어준다. 진심을 안고 기다려도 뜨거운 눈물과 차가운 비에 젖어 녹아버리는 것. 하지만 그것은 끝을 보지 못하였기에 그렇다. 끝을 보기 전에 지쳐 그만 포기해버리기에 모르는 것이다. 기다려 본 사람은 안다. 한 번 더 빈 손으로 따스하게 손 내밀고 기다리는 것이 용기이고 순수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라는 것을. 그렇게 경쟁자가 아닌 동행하는 자와 동반자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언제나 상대의 마음을 관통하는 진심이다.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 모습자체를 인정하는 것. 누구에게나 웅크리고 앉은 어린아이를 품고 있다. 누구나 마음속에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가 가득한 우체통이 있을 것이다.

가을을 누가 훔쳐갔다. 성큼 추위가 다가온다. 겨울이면 사람들이 사랑스러워 보인다. 추위에 떠는 사람들은 따듯하게 손잡아주고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누구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순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체온이 담긴 온기를 보고 느끼며 사랑이라는 감정에 겨워 감격해보았을 것이다. 바라면서도 도태되지 않으려는 이를 악무는 인내인가. 교감을 통해 성장해 나가는 것도 두려움에 피하며 사는 걸까.

그렇다. 그렇게 차라리 혼자인 게 편하다고 느낄 때도 많다. 어린이들도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은 요즘 혼자 사는 문화는 쉽게 정착했다. 그러나 나라는 세계를 지은 건 나의 힘이 다가 아니다. 어쩌면 벽돌하나일지도 모른다. 귀에는 이어폰을 꼽고,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하고 나는 가리고 상대는 바라보는 안전하게 나를 보호색으로 덮고 은밀하게 미묘한 우월한 위치를 선점한다지만 필자는 오늘도 타인의 눈을 보고 싶다. 서클렌즈와 선글라스도 벗은 민낯의 눈을 보고 싶다. 눈길이 서로의 마음이 오고 가는 통로가 되어주는 길이 되어준다는 것을 믿으며.

 최수안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건축회사 웹디자인 파트에서 근무 중인 습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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