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의 소중한사람]

[오피니언타임스=이수진] 소설 ‘태백산맥(조정래)’을 읽었을 때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중학생이 뭘 알고 읽었겠는가?

‘아, 불쌍해. 소년의 아빠가 돌아가셨어...’
‘아, 왜 괴롭히나요, 당신은 나쁜 사람’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쁜 사람이었군. 아니 그런데 또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아무튼 이 사람도 불쌍해, 저 사람도 불쌍하고, 아, 뭐야 다 불쌍하잖아..’

그 정도 수준으로만 이해하고 넘어갔다. 무슨 명칭이나 지명 심지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은 그냥 ‘으흥~’하고 건너뛰었다. 그러다가 도통 이해가 안가 진척이 없는 부분에서 무슨 명칭 같은 걸 어른들한테 물어봤다가 그만 온 식구가 식탁에 둘러앉는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심지어 친척어른도 불려 오셔서 팔짱을 낀 채 잠자코 한참동안 눈을 감고 계시더니 어느 순간 눈을 번쩍 뜨시고는 ‘왜 이런 책을 네가 대학생이 되어서 읽어야만 하는가’에 대해 점심 때부터 저녁 먹고 갈 때까지 말씀을 쉬지 않으셨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지리산(이병주)’이라는 소설 전권을 선물 받았다. ‘균등한 시각’을 가지려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고 했다.

그냥 긴 옛날 이야기책을 읽던 열다섯 살짜리는 이렇게 봉변을 당하게 되었다. 친척 결혼식에만 가도 할아버지들 사이에 낑겨 앉혀져서 당시에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듣고 또 들어야만 했고, 어려워서 이해할 수 없는 질문에 입을 열 수 없어 그저 멍하니 앉았으니, 역시 아이가 참 생각이 깊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한 마디도 못했는데 말이다. 그리고 자꾸 어려운 책만 사다줬다.

오해에서 비롯된 나의 역경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지리산 자락에서 시작된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는 그 산에 꼭 가보겠다는 다짐을 일기장에 썼다. ‘역사란 무엇인가(E.H 카)’라는 책을 선물 받은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에.

스물세 살. 시간은 많은데 할 일이 별로 없던 어느 날. 나는 청량리역에 가서 물었다. 지리산을 가려면 어디서 내려야하나요? 학교에 매고 다니던 백팩에 초코파이를 담아 매고, 등산화를 신고, 한참 동네 뒷산쯤이야 뛰어서 올라가던 체력에 자만한 나머지 나는 매우 가벼운 차림으로 길을 나선 것이다. 심지어 기상청은 요 며칠은 계속 맑은 날이 계속될 것이라고 나의 만용을 부채질해 주었다. 다 괜찮았다. 다만 나의 가장 큰 실수는 ‘혼자’ ‘지리산’까지 갔다는 데에 있었다. 새벽에 지리산을 올라가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큰 불행은 시작한 길을 멈추지 않겠다는 열의는 나에게 있었지만 ‘우비’는 나에게 없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저씨 두어 분이 말을 걸었다. 등산갈 때 의례하는 대로 인사를 건네고 지나치려는 데 이것저것 자꾸 물어봤다.

‘학생이냐, 어느 학교냐, 몇 학년이냐, 공부하는 건 힘드냐, 내가 학생 만할 때는 말이지...’

그러다가 아저씨들을 내가 추월하든 그분들이 추월하든 벗어나면 또 어느 사이에 다른 아저씨들이 또 말을 붙였다. 그게 계속 반복되다보니 나중에는 정말 귀찮았다. 나는 나름 지리산에 대한 책속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비교도 해보고 이것저것 생각도 해보고 싶었을 뿐인데, 도무지 생각할 틈을 안줬다. 한 두어 분이 계속 말을 시키고, 또 다른 아저씨들이 오고, 먼저 나에게 계속 말을 시키던 아저씨들을 다시 만나고, 또 추월했더니 다른 아저씨들이 열심히 쫓아와 말을 걸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산장에 도착해 보니 세상에.

나에게 말을 걸었던 그 아저씨들이 모두 모이는 것이 아닌가. 스무 명은 족히 넘어보이는 아저씨들은 한 단체에서 오신 분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단체의 모든 분들과 대화를 한 셈이었다. 목사님들로 구성된 친목회 회원 여러분들과.

비는 오는데, 여학생이 비를 다 맞고 꾸역꾸역 산을 올라가고 있었다. 우비도 없이 혼자. 그리고 배낭이 뭔가 얄팍해 보였다. 이것이 바로 그 긴 대화의 원인이었다. 그 분들은 조를 짜듯이 나를 스쳐지나가며 대화를 유도하신 것이었다. 계~속. 그리고 그냥 와보고 싶어서 지리산에 오게 되었다는 나의 대답은 잘 안 들리는 것 같았다. 라면도 끊여 나눠주고, 밥도 해서 말아 주셨다. 그리고 먹을 것을 계속 주면서 번갈아 말씀하셨다. 좌절이나 역경을 극복한 스토리와 희망이 담긴 이야기를, 그리고 자꾸만 집에서 나를 걱정하고 계실 부모님을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그 숙연한 눈빛에 산 입구에서 통화한 엄마가 지리산에는 무슨 특산품이 있냐고 물어봤다는 이야기는 차마 전해드릴 수가 없었다.

산장에서 밥을 먹으니 추웠다. 힘들었다. 그냥 그만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다시 와야지.’

목사님들은 그냥 남원으로 내려가겠다는 나의 말에 무척 좋아하시면서 내 얄팍한 배낭을 사탕, 초코바, 초코파이, 컵라면으로 가득 채워줬다. 한 삼일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만난 것도 기념이라고 손전등과 지리산 지도를 가방 맨 앞에 넣어줬다. 심지어 이미 비는 그쳤는데도 우비를 벗어 건네줬다. 차마 그건 받을 수가 없어서 괜찮다고, 괜찮다고 말씀드리는데도, 우비를 돌돌 말아 내 배낭에 넣어주면서 내 머리에 손을 얹어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언제나 널 사랑하신단다.’
참고삼아 나는 천주교 신자였다. 오랫동안 주말에 노느라 성당에 안간 일이 다 떠올랐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아멘’

그리고 나는 뛰어 내려가다 걸어 가다를 반복했다. 지리산에 대한 고찰 같은 건 머리속에서 멀어진지 오래였다. 내려가서 뭘 먹지 하고 고민하다가 힘이 들어 터덜터덜 내려가고 있을 때였다.

“보살님”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장삼을 걸치신 스님이 뒤에서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우리는 남원으로 빠지는 입구까지 오순도순 함께 하산해야만 했다. 스님은 자꾸만 함께 걸어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추월해가고 싶어도 갈수가 없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악업과 번뇌에 대해 나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다다른 마을에서 스님은 말씀하셨다. 덕을 쌓으면서 살다보면 좋은 날이 온다고. 힘내라고. 번뇌하지 말고 잘 살라고.
안녕.

그리고 오던 길을 되돌아 어디론가 올라가셨다. 나이가 들어 힘들다고 천천히 걸어 내려가자던 스님은 아주 빠른 속도로 멀어져 갔다.

지리산.
나의 편 너의 편 가릴 것 없이 오순도순 살아보고 싶었을 텐데, 그렇게 살아보지 못하고 죽은 조상들의 험난한 계곡을.

손녀는 오순도순 넘치는 정을 타고 가볍게 타고 내려왔다. 봉변당했다고 우스개 소리하는 철없는 것을 바라보면서 할아버지들이, 할머니들이 빙그레 웃는다. 철없는 것이 이야깃거리로 삼을 만큼 좋은 세상이 왔느냐고 묻고 또 묻는다. 

 이수진

 영어강사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감사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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