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선의 너영나영]

[오피니언타임스=황진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재개된 국정 농단 재판의 출석을 거부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법치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것은 뻔뻔한 짓이다.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10월 자신에 대한 추가 구속 영장을 발부한 데 대해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이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1차 사법 판단은 이미 내려졌다. 법치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최고 법률가들인 헌법재판관 8명이 지난 3월 만장일치로 파면을 결정했다. 대통령 파면은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중대한 법위반이 있는 때만 인용된다.

박근혜 법치 비아냥은 뻔뻔… 특활비 등 추가 범죄 계속 드러나

기왕의 뇌물수수와 블랙리스트 작성 외에 박 전 대통령의 범죄는 계속 드러나고 있다. 박 정부 시절 남재준·이병기·이병호 국정원장은 국정원 특수활동비(특활비) 40억원을 박 전 대통령에게 상납한 혐의를 받고 있다. 두 사람은 구속됐고 구속을 면한 이병호씨는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상납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특활비를 받아 전달한 안봉근, 이재만 전 청와대 비서관을 뇌물수수와 국고손실 혐의로 구속기소하면서 박 전 대통령을 공범으로 적시했다. 추가 기소는 시간 문제다. 40억원의 용처도 낱낱이 밝혀야 한다.

수구 세력과 보수 언론들은 적폐 청산을 정치 보복으로 몰아가려 한다. 과거는 묻어두고 미래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가 하려는 일에는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발목을 잡는다. 사실상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다. 그들에겐 그들만의 미래가 따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벌과 부유층을 대변하면서 소득 불평등과 격차를 해소하거나 젊은이들에게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되뇌게 하는 ‘헬조선’을 개선하려는 의지는 찾아 보기 어렵다. 불평등의 심화는 분열과 폭력을 부른다는 것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법치는 자유민주국가의 초석, 경제발전과 민주화에 이르는 지름길

물론 문 정부와 검찰이 법 만능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가치와 정책이 충돌하는 정치의 세계에 법의 잣대를 엄격하게 들이댈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법치주의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초석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적법 절차 준수와 법의 지배는 경제 발전과 민주화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먼저 그 길을 간 선진 외국들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그렇지 않고서는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한 21세기 지구촌 시대에 살아남기 어렵다. 민주적 정당성을 지닌 법규범을 존중하는 법치주의를 생활화해야 한다.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이 솔선수범해야 한다. 국민에게는 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면서 법 위에 군림하는 위정자들은 엄하게 처벌해야 마땅하다.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대통령의 통치행위는 남북과 대외 문제 등에 극히 제한해 인정해야 한다.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의 파업 사태는 이명박 정권 때부터 방송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지키려고 노력해온 기자와 피디를 포함한 전·현직 임직원들의 분노가 한꺼번에 분출한 것이다. 두 방송사 노조가 사장을 포함한 경영진을 바꾸려고 하는 데 대해, 보수 언론과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정부의 방송 권력 장악 기도’라고 주장하는 것은, 공정 방송을 외치다 불법·부당하게 해고·징계·‘유배’ 당한 임직원 수백명을 모욕하는 것이다. 이들을 탄압한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고위 임직원은 청산 대상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큰 고통을 겪은 수백명의 일할 권리와 명예를 회복하는 것은 방송 정상화의 기본이다.

9월 4일 MBC 기자와 PD 등이 총파업 출정식을 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

방송사 파업 사태와 댓글 사건 의혹 재수사, 적폐 청산 위해 당연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과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공작을 포함한 각종 정치 개입 의혹에 대한 재수사는 당연하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 두 기관의 댓글 공작을 수사했지만 축소·왜곡됐다는 비난이 높았다. 2013년 4월 권은희 서울 송파경찰서 수사과장(현 국민의당 의원)은 국정원의 12대 대선 개입 댓글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 김용판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지휘부가 ‘은폐·축소’ 지시를 내렸다고 폭로했다가 좌천과 승진 배제 등의 어려움을 겪다가 사표를 냈다. 2013년 10월 국정원의 12대 대선 개입을 수사하던 윤석열 수사팀장(현 서울중앙지검장) 역시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 등 상부의 ‘축소’ 지시를 따르지 않다가 ‘항명’으로 좌천돼 한직을 전전했다. 2014년 8월 국방부 조사본부는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전후로 국군사이버사령부 심리전단 요원들이 댓글을 작성해 광범위하게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했다고 발표했지만 수박 겉핥기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정원과 국방부의 선거·정치 개입의 악습은 이번 기회에 뿌리 뽑아야 한다.

우리는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해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했다고 얘기하면서 종종 프랑스와 비교한다. 프랑스는 3년간의 나치 치하를 벗어난 뒤 부역자 1만명을 처형했다. 프랑스의 똘레랑스(관용)와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무)는 나치 부역자에 대한 철저한 심판과 청산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일제나 나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적폐가 있다면 청산하는 것이 당연하다. 적폐 청산이 없으면 같은 잘못이 반복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사라지고 법치주의도 길을 잃는다.

촛불시위 구호 ‘이게 나라냐’… 나라 다시 세우는 대의 훼손 안 돼

지난해 10월 27일부터 올해 4월 29일까지 지속된 촛불 시위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구호는 ‘이게 나라냐’는 것이다. 시민들은 박근혜·최순실의 어처구니 없는 국정 농단과 한심한 ‘인치(人治)’에 분노했다. 우리가 헬조선의 수렁에 점점 더 빠지고 있는 이유를 다시 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10월 6일 하회마을을 방문해 방명록에 ‘재조산하(再造山河)’라는 글을 남겼다. ‘나라를 다시 만든다’는 뜻이다. 나라를 다시 세우는 적폐 청산에는 시효가 있을 수 없다. 여야의 협치는 필요하지만 나라를 바로 세운다는 대의(大義)는 훼손할 수 없다. 검찰은 정치권의 눈치를 보아선 안 된다. 새 정부와 여당의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 곧 살아있는 권력에도 성역 없이 법의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적폐를 철저히 청산하되 그 당사자들을 꼭 구속 기소할 필요는 없다. 구속 수사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검찰과 법원이, 판사마다 의견이 갈릴 수 있다. ‘태극기 집회’에 동조하는 법률가들도 있는 법이다. 영장 판사가 구속영장을 기각해 불구속 기소하더라도 다른 재판부가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할 것임을 믿고 기대해야 한다.

 황진선

 오피니언타임스 전 편집인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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