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자칼럼]
[오피니언타임스=이지완] 일본 여행을 자주 다니는 내게 친구들은 가끔 물었다. ‘방사능 무섭지 않아?’라고. 나는 ‘당연히 무섭지’라고 대답한다. 방사능이 안 무서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방사능에 피폭되어 나타나는 기형적 생물들이나, 어느 날 갑자기 이가 빠졌다고 하는 일본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무섭고 두려웠다. 하지만 그걸 이겨낼 정도로 (정확히는 안전불감증이지만) 여행으로 얻는 것이 더욱 재밌어서 계속 방문했다.
가끔 어떤 친구들은 ‘너 일본 좀 그만 다니는 게 어때’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한 두 번은 괜찮지만 계속 그렇게 다니면 몸에 해롭지 않겠냐는 얘기였다. 그럼 나는 우스갯소리로 ‘이미 방사능 맞은 몸인걸. 그냥 망가진 몸이니까, 더 막 살래’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최근엔 이 얘기가 그냥 확정적인 얘기가 되어버렸다.
우리 가족은 딸이 둘인 만큼 생리대를 박스채로 사서 썼다. 생리대 파동이 났을 때에도 우리 집에는 이미 사두었던 생리대가 한 박스 있었다. 문제가 되었던 회사의 제품은 아니었지만 (그 이후 대다수 회사의 생리대에서 발암 물질이 검출됐다는 발표가 있었다) 한국 회사의 생리대였다. 그 당시 이걸 버려야 하나, 그냥 써야하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냥 사용했다. 방사능도 맞았는데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몸에 안 좋은 것을 피하려고 하면 모든 것을 조심해야 하는 느낌이었다. 일본 제품은 사용하지 말아야 하고, 미세먼지를 조심하고자 방독면을 써야하고, 닭들이 호르몬제를 맞아가면서 낳은 달걀은 먹으면 안 되고, 유기농 채소를 주로 먹어야 했다. 그 모든 것을 조심하고자 하니까 가뜩이나 나의 인생 하나도 책임지지 못해 갑갑한데 세상살이가 너무 팍팍해져서 신경 쓰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냥 안전불감증인 사람으로 살자, 라고 마음먹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얼마 전 집에 생리대가 없어서 마트를 갔다. 생리대 파동 이후 해외 직구로 생리대를 사는 사람들이나 면생리대, 생리컵 등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 파동 이후 첫 구매였지만 나는 그렇게 부지런하고 똑똑한 소비자는 아니어서 ‘그냥 있는 데로 쓰자’라는 심산이었다. 그래서 마트에서 지금까지 사왔던 것처럼 할인된 제품으로, 이왕이면 날개형으로, 그리고 중형으로. 그렇게 생리대를 고르는데 갑자기 헛헛해졌다.
예민하고도 민감한 내 신경은 진열된 생리대가 발암물질이라는 경고를 띄웠다. 내 돈 주고 발암 물질을 사는 게 이런 느낌인가 싶었다. 식약처에서 생리대가 안전하다고 했지만, 신뢰가지 않는 발표였다. 진열대 앞에서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원래 쓰던 제품을 들고 계산대로 걸음을 옮겼다. 내가 가끔씩 얘기 했던 말이 씨가 된 것 같았다. 포기하지 말고 싸워야하는 건가. 그런데 이렇게 필수적인 요소까지 싸우고 쟁취해야한다는 삶이라면 너무 슬픈 거 아닌가 싶었다. 그냥 딱 지금 세상에서의 여성이란 위치가 이정도가 아닐까 싶어서, 검은 봉지를 얻어 생리대가 보이지 않게 숨겨서 마트를 걸어 나왔다. 고작 10분도 걸리지 않은 쇼핑이 너무나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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