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진의 지구촌 뒤안길]

[오피니언타임스=유세진] 이른바 힘 있고 지위 높은 자들의 ‘갑질’ 성추행을 폭로해온 #미투(MeToo) 운동이 6일 미 시사주간지 타임의 ‘올해의 인물’(Person of the Year)로 선정됐다. 선정 사실은 NBC 방송의 아침 뉴스쇼 ‘투데이’에서 발표됐다. 20년 넘게 이 프로를 진행했던 인기 앵커 맷 라우어는 지난주 한 여성 부하 직원이 자신에 대한 과거 성추행을 고발한 지 하루 만에 전격 파면됐다. 지난 5년 간 라우어와 함께 이 프로를 공동 진행했던 사바나 구쓰리는 라우어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미투 운동을 선정한 것은 가슴을 깊이 울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타임지 최신호 표지. 타임은 ‘올해의 인물’에 미투운동을 촉발한 ‘침묵을 깬 사람들’을 선정했다.

#미투 운동은 지난 10월5일 미 뉴욕 타임스가 헐리우드의 거물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과거 성추행 및 성폭력 비리를 보도하고 사흘 만인 10월8일 그의 영화제작사가 와인스타인을 해임하면서 촉발됐다. 영화계뿐 아니라 정계와 언론계, 재계, 스포츠계 등 다른 분야의 유력 인사들에 대한 성비리 의혹 제기가 잇따랐다. 수많은 일반인 여성들이 “나도 당했다”며 과거 자신의 성추행 피해담을 SNS에 발설하고 공유하며 캠페인으로 발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큰 반향을 일으키지 않고 있지만 #미투 운동은 수많은 여성들이 참여하며 전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추행이라는, 오랜 세월 봉인됐던 불합리한 문화에 대해 쌓인 분노가 분출되면서 어두운 사회를 좀 더 바람직한 사회로 변혁시키는 촉매가 될 것이란 기대를 일으켰다.

타임은 이날 오랜 시간 물밑에 감춰졌던 비밀을 공개했다며 #미투 동참자들을 ‘침묵을 부숴버리는 사람들’(Silence Breakers)이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타임은 애슐리 주드와 테일러 스위프트, 수전 파울러 등 와인스타인의 과거 비리를 처음 폭로한 여배우들과 성추행 피해 사실을 밝힌 다른 여성들의 모습을 표지 사진으로 내세웠다. 타임이 불특정 다수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것은 지난 2006년 ‘당신’(You)이나 2011년 ‘시위자들’ 등이 있긴 하지만 흔치 않은 일이다. 2년 전인 2015년 타임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미투 운동이 선정될 수 있었던 것은 침묵을 깨고 수치스러운 과거의 비밀을 공개한 용기와 이들이 시작한 일에 대한 전 세계의 공감 덕분”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어두운 단면을 지켜보는 것은 분명 누구에게나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침묵을 강요받아 왔다. 권력을 쥐고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 아무 죄의식 없이 저지르는 잘못을 들춰냈을 때 입을지 모를 피해와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이러한 침묵을 강요했다. #미투 운동이 그런 두려움을 완전히 해소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피해를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무시 받던 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오랜 동안 제멋대로 불법을 자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아픔을 주어온 힘 있는 자들에게 작으나마 교훈을 주고 정의를 세워 변화와 진전을 향한 발걸음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미투 운동의 ‘올해의 인물’ 선정은 매우 의미 깊다.

©미국 타임 홈페이지

#미투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다. SNS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빨리 전파되면서 동참과 공감을 불러낼 수 있었다. 실제로 SNS는 2011년 ‘아랍의 봄’ 등 전 세계의 시위 확산을 이끈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다. 또 과거와 달리 권력과 경제력의 정점에 올라선 여성들의 숫자가 늘어난 것도 피해를 밝히는 여성들의 말에 신뢰를 불어넣었다. 비리를 저지른 직원들로 인해 기업 브랜드에 흠이 생기는 것에 대한 경계심으로 좀 더 신속하게 성추행을 저지른 자들을 처벌하는 등 기업들의 인식 변화도 성공을 가져온 요인 중 하나이다.

그러나 뺄 수 없는 것이 여성 혐오주의자 도널드 트럼프의 미 대통령 당선이다. 힘만 있으면 여성의 수치스러운 부분을 얼마든지 움켜잡는 것이 가능하다고 자랑스레 떠벌리는 자가 미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많은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으켰다. 트럼프의 미 대통령 취임 이틀 후인 지난 1월22일 열린 트럼프 반대 여성들의 행진에 미 로스앤젤레스에서만 7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참여했을 때 #미투 운동의 성공 기반이 이미 싹텄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미투 운동이 궁극적으로 잘못된 세상을 좀더 밝게 만드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26년 전인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면서 지금까지 일본의 위안부 만행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듯이 #미투 운동 역시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계속돼야만 한다. 직장 등에서 여성에 대한 성차별과 폭력을 없애기 위해서는 이를 초래하는 근원적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몇몇 유명인사들에 대한 한풀이나 또는 마녀사냥에 그치고 말 것이다. 근원적 원인은 무엇인가? 여성을 무시하고 공격하는 것은 수치가 아니며 그렇게 행동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 오랜 문화적 사고 방식이다. 성폭행 피해자에게 성폭행을 유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고 다그치는 것 같은 이러한 사고 방식이 고쳐지도록 하는 것이 #미투 운동에 참여했든 그렇지 않든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책임이다.

 유세진

 뉴시스 국제뉴스 담당 전문위원

 전 세계일보 해외논단 객원편집위원    

 전 서울신문 독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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