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관의 모다깃비감성]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엄마와 아빠는 공인중개사를 했다. 엄마는 중랑구에서 원룸이나 신혼집 같은 방들을, 아빠는 율성리에서 토지나 창고 같은 대형 매물을 매매했다. 둘 모두 찬란한 황금빛 인생은 아니었다. 학원을 운영할 때 만나서, 과일 장사를 하고, 슈퍼를 하고, 다시 학원을 하다가, 다시 슈퍼, 그리고 공인중개사로 이어졌다.

차라리 파란만장에 가깝다. 사람 인생 책으로 쓴다면 조정래 대하소설을 씹어먹는다더니, 어째 그들이 한 일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납득할 때가 있다.

성격도 안맞고 입맛도 안맞고 취향도 안맞는데 어떻게 눈이 맞아서 결혼을 했고, 어떻게 같이 일을 했는지 모른다. 누나와 나도 만나서 얘기를 할 때마다 최대의 미스테리라고 하니까. 그나마 가치관에서 완전히 통한 것이 있으리라 짐작할 따름이다. 지금도 엄마는 커다란 수족관까지 설치한 세련된 사무실에서 대추차를 끓이면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고, 아빠는 빵빵한 패딩을 입고 내 초등학교 때부터 끌던 차를 가지고 고객들을 만나러 간다. 요즘들어 그 둘이 참 열심히 살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졸업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픽사베이

가계부를 쓰기 시작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등록금까지 혼자 마련하는 후배의 악다구니를 보고 부끄러워서 시작했다. 어느 정도 쓰니까 나의 돈의 40% 이상은 내 뱃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용돈받아 쓸 수 있을 때 최대한 받으라는데, 일단 내가 계획도 없이 쓰는 걸 고치지 못하면 용돈이 끊길 때 패닉이 올테지.

하루에 어떻게든 한장 이상의 글을 쓰려고 애를 쓰고 있다. 글쓰는 체력을 위해 매일 밤마다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그런데 장르소설 작가들은 글쓰기에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하루에 A4용지 다섯매 이상, 게다가 퇴고 시간만 두 시간 이상 걸린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지금도 두어장 쓰면 머리에 쥐가 나서 아무것도 못한다.

나는 글로 먹고 살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뭐가 문제고 한계를 돌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내 위의 선배들 중에서 등단한 사람은 없었다. 이럴 때면 몇 가지 생각이 든다.

첫번째는 오만함. “그냥 내가 등단해서 잘난 사람이 된 다음에 선배고 나발이고 학과에서 최고가 되어주마”, 두번째는 서러움. “근데 어떻게든 지금 이 문제를 당장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네. 환장하네.” 마지막 세번째는 덜컥 찾아오는 두려움. “나는 지금 선배 핑계로 내 게으름을 합리화시키는 거 아닌가”

주위를 둘러보면 당장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가계부도 쓰고, 글도 쓰고, 운동도 해야 하고, 밥도 해먹어야 하고, 돈벌이도 해야겠고, 아픈 곳이 많아서 약도 챙겨먹어야 하고. 그렇게 내 몸이랑 돈을 챙기려다가 보면 전화벨이 울렸다. “뭐하고 사냐. 얼굴 좀 보자.” 얼굴을 보러 옷을 챙겨입고 나가다가, 문득 문득 드는 생각들. 나는 일과 생활의 경계를 어디까지로 잡고 있는 걸까.

불현듯 부모님의 삶을 다시 생각해봤다. 엄마는 62년생이다. 다만 자기 관리가 철저해서 50대 후반으로 보는 사람이 없다. 아빠는 58년생이다. 환갑을 찍었다. 학생때부터 30대 같던 얼굴로 쭉 살아왔기에, 솔직히 얼굴로 보면 환갑이라는 생각은 안 든다. 열정적으로 살아서 나이를 먹지 않는 걸까. 그네들의 밝은 얼굴이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그건 살아가면서 좌절하거나 고민이 없어서가 아니라 문제를 잘 해결해온데서 나오는 연륜같이 느껴졌다. 문제가 생겼을 때 질질 끌지 않는구나. 가계부와 부동산 계약서 장부정리와 고객관리와 연말정산까지 알아서 하는구나. 정해진 시간에 나가서, 되는 데까지 일하고 돌아오는구나.

그렇게 번 돈으로 세금을 내고, 재산세를 내고, 자동차 보험료와, 건강 보험료와, 내 용돈과 약값을 내고. 아빠의 심장약과, 엄마의 화장품과, 집안의 고기와 쌀을 사는구나. 수돗세와 난방비와 전깃세를 모두 납부하고, 반지하에 살 때 쌓여있었던 꽤나 컷던 빚도 거의 다 갚고, 여행도 가고 틈틈이 할머니에게 용돈을 챙겨드리고 부쩍 많아진 결혼식과 장례식에 축의금과 부조금을 모두 내고 돌아오는구나.

그래놓고서 나를 앉혀놓은 다음에 힘들다고 하소연 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거구나. 내게 돈 벌어오라고 닦달한 적 없는거구나. “하고 싶은거 하고 살아봐”라고 하는 거구나.

대체 당신들은 어떤 삶을 살아와서 그 모든 것들이 아무렇지가 않은 건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칠 때면, 어른이란 게 있긴 있다는 것을 믿고 싶어졌다. 

 신명관

 대진대 문예창작학과 4학년 / 대진문학상 대상 수상

 펜포인트 클럽 작가발굴 프로젝트 세미나 1기 수료예정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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