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진의 청춘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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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아빠는 요리를 곧잘 했다. 국물의 간을 맞추는 솜씨가 일품이었고, 간단한 밑반찬도 뚝딱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빠의 요리솜씨는 가세가 기울면서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라면 먹는 시간이 늘어났던 우리집 밥상은 아빠표 라면이 자주 등장했다. 국물 간을 맞추는 솜씨로 라면의 물을 맞췄고 밑반찬을 만드는 장기로 라면의 맛에 특유의 깊이가 더해졌다. 나는 눈치도 없이 앞으로도 계속 라면만 먹었으면 좋겠다고 떠들어댔고 엄마는 아무 말도 없었다.

하루는 아빠가 비빔면이라며 끓여준 라면이 꿈에 나올 정도로 맛있었고 그 길로 라면 끓이는 법을 배웠다(아마 초등학교 2학년쯤일 것이다). 요 놈은 물을 조절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었고, 다 끓인 후 시원한 물로 헹궈 내야하는 단점이 있었다. 그 어린 나이에 라면을 2개씩 집어 혼자 비빔면을 끓여먹는 날이면 내가 요리사가 된 것 같아 기분 좋았고 내 요리가 반할 정도로 맛있었기에 새로운 재능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어른이 되었다. 세상은 참 많이 변했지만 심지어 내 얼굴은 어린 시절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변해버렸지만, 여전히 내 옆자리에는 라면이 자리 잡고 있다. 이제는 스스로 라면 대가라 자부하며 혼자서 지지고 볶고 별 짓을 다할 수 있다. 10년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각양각색의 라면들이 나를 유혹할 때마다 그들의 존재이유를 직접 확인해주었다.

나를 가르쳤던 아빠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볼 수 없는 것인지 찾을 수 없는 것인지 아직도 판단할 수 없지만, 어쨌든 내 옆자리에서는 볼 수 없다. 때때로 시원한 물로 비빔면의 온기를 빼는 날이면 아빠의 모습이 떠오른다. 열심히 살았지만 실패한, 가진 건 없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고기를 먹이고 싶지만 눈앞에 라면이 전부였던, 그래서 아빠의 얼굴은 매번 억지웃음을 짓고 있었나보다. 현실 앞에 무릎 꿇은 힘없는 가장의 선명한 몽타주.

나는 내 아들에게 라면과 함께 고기를 주고 싶다. 그리고 라면 끓이는 법은 애초부터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라면이 먹고 싶을 땐 늘 나를 찾도록 만들 것이며 우리집이 살만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쇠고기도 조금 구워낼 것이다. 아들은 라면을 주식이 아닌 별미로 먹게 될 것이며 그걸 지켜보는 아내는 건강에 좋지 않다며 그만 먹으라며 말리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이것이 바로 내 꿈이며 이 소중한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새벽에 일어난다. 그리고 소중한 내 꿈이 계속 숨 쉴 수 있도록 글을 쓴다. 쓰고 또 쓰다보면 내 머릿속에 잠자고 있는 꿈에 산소가 공급되고, 내 마음은 이 순간을 기억하게 된다.

꿈이 있는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심규진

 한양대학교 교육공학 박사과정

 청년창업가 / 전 포스코경영연구소 컨설턴트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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