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오피니언타임스=임종건] 지난 11월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탈북한 북한군 병사 오모 씨(25)의 탈북 당시의 긴박한 궤적을 담은 CCTV를 본 사람이면 누구든 자유를 향한 그의 질주가 성공한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타고 온 지프차가 도랑에 빠져 시동이 걸리지 않자 문을 열고 나와 남쪽을 향해 질주했으나 뒤쫓는 북한군의 총탄 5발을 맞고 자유의 집 근처에 쓰러졌다. 그로부터 14분 뒤 우리 군에 의해 구출되었고, 다시 그로부터 30분 뒤 미군 응급구조 헬기에 실려 아주대 병원 중증 외상센터에 도착해 중증외상치료의 권위자 이국종 박사 팀에 인계됨으로써 목숨을 건졌다.

그의 탈주를 막기 위해 JSA의 북한군 병사들이 권총과 AK소총을 집어들고 탈주자의 차량이 멈춰선 곳으로 달려와 남쪽으로 질주하는 오씨를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그들은 권총과 자동소총을 쐈고, 한 명은 자동소총을 든 채 군사분계선을 넘어 오씨를 추격하다 돌아섰다.

그들이 쏜 40여발의 총탄 가운데 5발을 맞은 오씨는 쓰러져 죽은 듯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만약 그가 살아 꿈틀대는 모습이 북한 추격병의 살기가 번뜩이는 눈에 띄었더라면 추격병은 분계선 남쪽으로 더 쫓아와 그를 확인 사살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총알 5개가 몸에 박히거나 관통하고, 장기가 파열돼 40여분 출혈하고서도 목숨을 건진 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인가. JSA의 한국군 및 유엔사 경비병의 비교적 기민했던 대응과, 의료진과 장비의 우수성이 이 기적을 가능케 했을 것이다.

유엔군사령부가 지난달 22일 공개한 북한군 병사의 JSA 귀순 CCTV 장면.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은 병사를 향해 총격을 가하고 있다. ©유엔사 제공

만약 그가 판문점에서 사망했을 경우를 상상해 본다. 자유를 찾아 사선을 넘어온 북한병사를 우리 측의 태만으로 죽게 했다면 국민들에게는 세월호에 버금가는 가슴 아픈 소식이 됐을 것이다. 그를 살려낸 의사는 그런 사회적 트라우마의 원인을 제거해준 영웅이라 해서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이념논쟁은 그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 주치의 이 박사가 환자상태에 관해 기자회견을 하면서 ‘환자의 몸에서 다수의 회충과 음식물 가운데 옥수수가 나왔다’고 밝힌 것을 두고 그에게 이데올로기적 공격을 가한 것이다.

김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귀순한 북한 병사는 북한군 추격조로부터 사격을 당해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부정당했다. 남쪽에서 치료받는 동안 몸 안의 기생충과 내장의 분변, 위장의 옥수수까지 다 공개돼 또 인격의 테러를 당했다”면서 “환자를 살리는 목적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으로 관리됐다”고 썼다.

이 박사는 자신이 회충 얘기를 한 것은 회복에의 장해요소, 2차감염의 위험성 등 병리학적인 이유에서였다고 밝혔다. 음식물 속의 옥수수도 북한이 쌀농사를 많이 짓는 땅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빗거리가 될 수 없다.

남한에서도 보릿고개와 초근목피의 시대가 있었다. 보릿고개에는 보리마저 배불리 못 먹는 사람이 많았다. 그 당시 남한에서 오 씨와 같은 월북 병사가 있었다면 뱃속에서 회충과 함께 보리가 나왔을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나누어 준 산토닌이란 구충제를 먹고 대변에서 나온 회충을 수거해 학교에 낸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엽기적이기도 한 이 일은 학생들의 영양증진을 위해 정부가 각 급 학교에 기생충 약 산토닌을 보급한 뒤 실적 확인을 위한 것이었을 터다.

북한의 병사 가운데 판문점 근무자는 성분이나 생활수준에서 상류층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오 씨의 뱃속에 회충이 득실거린다면 이것은 한 개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북한 주민 전반의 영양이나 위생에 관한 것이라고 봄이 타당하다.

©픽사베이

우리는 지금 적어도 기생충 걱정은 하지 않고 산다. 약국에 가면 한 알로 모든 기생충을 잡을 수 있는 값싼 약이 얼마든지 있다. 기생충 약과 함께 농사에 인분대신 유기농 비료를 쓰는 등 영농기술도 발전됐다. 우리가 기생충에서 해방되었듯이 북한도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 있다. 남한의 제약능력으로 손쉽게 도울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국내의 좌파 세력이 주장하는 ‘회충과 옥수수’ 얘기는 북한의 실상에 비하면 매우 하찮다. 그들은 북한 주민들의 바닥의 삶을 보지 않고 자신의 살가죽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인 김정은의 과도비만을 북한 사회의 평균적인 영양상태로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한겨레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올 들어 사체가 실린 북한 선박들이 줄이어 일본 서쪽 근해로 표류해 오고 있으며 지난 11월 한 달에만 28건이나 되었다. 올해 전체로는 78건에 60구 이상의 북한인 시체가 발견됐다고 한다.

전마선 같은 작고 낡은 배를 타고 망망대해로 고기잡이 또는 탈북 길에 올랐다가 조난된 배들이라고 한다. 판문점에선 탈북자의 등에다 총을 쐈지만, 북녘 바닷가에선 주민들을 바다로 등을 떠밀어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있다. 이 지경에서 핵무기는 무엇이고, ICBM은 무엇이냐?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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