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따듯한 생각]

[오피니언타임스=김연수] 우리는 때때로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놓인다. 나는 그럴 때마다 지나치게 가슴이 떨리고 선택의 결과가 어떨지 겁이 나고 두렵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선택의 책임은 내게 있기 때문이다.

몇 해 전 방영했던 드라마 ‘피노키오’에서도 이런 사례가 등장했다. 드라마 여주인공이 빙판길 사고사건 취재를 나서게 된다. 그녀는 기자라는 직업 특성상 사람들이 넘어지는 장면을 지켜보며 카메라에 담아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을 두고 볼 수 만은 없었고 빙판 위 연탄을 깨서 길을 미끄럽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로 인해 그녀는 빙판 사고를 제대로 취재하지 못했고 상사에게 크게 혼이 났다. 그녀의 상사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 구하고 싶으면 기자 때려 치고 자원 봉사해. 기자는 지켜보는 게 공익이다. 그걸로 뉴스를 만드는 게 공익이고 그 뉴스를 구청 직원, 대통령, 온 세상이 보게 만드는 게 기자의 공익이다. 니들이 연탄 두세 개 깨는 동안 뉴스를 만들었으면 그걸 보고 구청 직원들이 거기에 제설함을 설치했을 거다. 사람들은 집 앞에 눈을 치웠을 거고 춥다고 주머니에 손 넣고 다니는 사람들은 넘어지면 다치겠다 싶어 손을 빼고 걸었을 거다. 니들이 뻘짓하는 동안 수백 수 천 명 구할 기회를 날린 거야.”

드라마는 인간성, 윤리성보다 각자의 역할이 더 중요한 순간도 있다는 걸 깨닫게 했다. 하지만 현실 속에는 자신의 직업정신에 투철했던 나머지 논란에 휩싸인 사례들이 많다.

1994년 퓰리처상 수상작, 케빈 카터의 ‘소녀와 독수리’

사람들은 지하철 참변을 기사화한 기자와 ‘소녀와 독수리’의 사진작가를 비인간적이라며 비난한다. 두 사람은 사진작가로서 자신의 역할에만 충실했기 때문에 윤리의식이 없는 비열한 인간으로 비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두 사람이 의사였다면 어땠을까. 이런 상황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하철 플랫폼 또는 뒤에서 독수리가 호시탐탐 먹잇감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 아비규환 속 전쟁터라고 가정해보자. 적군과 아군을 구분할 수 없는 가운데 당신은 의사다. 그렇다면 죽어가는 적군은 내버려 둔 채 아군만 찾아서 치료해야 하는 것이 옳을까. 의사가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치료한다고 해서 그를 적군을 살린 비열한 인간이라고 일컫지는 않을 것이다. 사진을 찍은 두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굶주린 소녀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전 세계인에게 심각한 빈곤과 기아 문제를 상기시킬 수 있었다.

2012년 뉴욕포스트 표지에 실린 사진. ‘Doomed’(운명)이라는 제목 아래 죽음을 앞둔 시민의 모습을 담아 논란이 일었다.

플랫폼에서 한인 남성의 마지막을 찍은 기자도 마찬가지이다. 애초에 혼자 힘으로 남성을 끌어올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기자는 자신 나름대로 사고를 막기 위해 플래시를 터뜨려 기관사에게 알렸으나 속도를 늦추고 지하철을 멈추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반면 기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멀리서 방관하기만 했다. 물론 기사 속 사진과 문구가 다소 충격적이고 선정적이었다. 하지만 기사로 하여금 남의 일에 지나치게 냉정한 현대인들을 비난할 수 있었고 같은 사고가 또 발생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모두가 각자 맡은 역할이 다르다. 영화 속 히어로처럼 언제 어디서든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대한 재난재해가 발생했을 때 구조대원은 사람들을 구하러 가장 먼저 길을 나선다. 그리고 뉴스 기자는 방송을 통해 사람들이 대피할 수 있게 도우며 2차 피해를 막는다. 그러므로 사진을 찍은 두 사람을 비난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김연수

제 그림자의 키가 작았던 날들을 기억하려 글을 씁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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