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만나는 세상]

‘문화는 정치다’

프랑스 학자인 장 미셀 지앙이 쓴 책이다. ‘문화정치는 프랑스의 발명품이다’로 시작하는 이 책은 프랑스 문화정치와 정책 전반을 이해하는 틀을 제공한다. <문화적 혁신과 국가>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지앙은 미테랑 대통령 시절 갖가지 문화실험들을 소개하면서, 문화정치의 힘을 역설한다.

굳이 지앙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문화가 정치의 중요한 수단이 된지 오래다. 문화강국을 자처하는 프랑스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정치적 도구나 수단으로서의 문화는 그 역사가 길다. 문화는 언제나 이데올로기 전파, 권력자의 지배를 위한 ‘정치’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문화야말로 국가권력의 끊임없는 관심과 의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지앙이 말하는 문화정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문화정치는 예술과 창작분야에서 정치적, 법률적, 행정적인 국가권력의 책임에 관한 개념이다. 책임이란 규제나 통제, 제재가 아니다. 보호와 지원과 향유이다. 여기에서 문화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인 피에르 에마뉘엘의 말처럼 한 개인이 실현해낸 창작물이며, 정신적 소산의 결과물이며, 사회 구성원모두의 다양성과 그들의 모든 활동역역에서 사회가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표현과 표시이다. 또한 사회구성원 모두를 이롭게 하는 공공재이기도 하다.

피할 수 없는 현실, ‘문화정치’

문화정치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문화가 단순히 작품이나 유산이 아닌 삶의 변화와 행복,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드골 정권 이후의 프랑스, 그리고 지금의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문화대통령’을 자임하고, 문화가 숨 쉬는 나라, 문화로 행복한 국민을 외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문화의 자유와 평등, 여기에 프랑스 국기를 상징하는 듯한 박애(지원)까지 더해지면 더 할 나위가 없다. 물론 이 세 가지 모두를 만족시키는 문화정치가 쉽지 않다. 자유로운 창작을 위한 물질적인 충족(지원)은 국가 주도주위와 순응주의의 위험을 가져오고,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이 부르짖었던 ‘모두를 위한 문화’도 문화의 본질적 속성인 차별성과 때론 상충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자유, 문화평등, 문화지원은 문화정치의 필수적 요소이다. 여기에는 보수도 진보도, 좌도 우도 없다. 그것만이 문화국가를 만드는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일찍이 드골만큼이나 문화의 힘과 문화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한 지도자가 있었다. 백범 김구였다. <나의 소원>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백범 김구의 ‘문화의 힘’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하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중략)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인류가 현재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사족을 달 필요가 전혀 없는, 문화국가론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리석게도 문화만이 대한민국을 풍요롭고 만들고, 국민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간파한 백범 김구의 혜안을 무시했다. 오로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과 그것을 위해서라면 문화까지도 ‘동원’하는 권력의 천박한 문화정치에 의해.

우리의 문화정치는 군사독재시절에는 억압과 대중 동원이었고, 민주화 이후에는 자본과 경제논리의 합리화였다. 그리고 그 위에 이념의 편 가르기가 횡행했다. 문화가 국민의 삶속에 들어가지 못하는 쇼가 됐고, 자유와 민주와 평등을 외면했고, 경제논리에 빠진 정책은 문화를 천박한 공산품으로 전락시켰다. 그것도 모자라 급기야는 이념 덧씌우기로 창작자들의 기본적인 인권과 활동권조차 박탈하는 비열한 수단까지 나타났다.

진정한 문화정치, 우리도 해야 한다

문화융성을 국정기조로 내세운 정부가 만든 문화계 블랙리스트. 이를 두고 ‘문화정치’라고 말하는 뻔뻔스러운 인간도 있다. 문화정치가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닌 자신들만의 권력과 탐욕을 위한다면 그것은 문화학살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의 문화정치는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참혹하게 망가진 정권만큼이나 3류, 아니 4류다.

“문화가 정치”라고? 맞다. 문화가 정치인 시대다. 그렇다고 정치적 목적을 위해 문화를 교묘히 이용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문화에 대한 가치, 문화에 대한 사랑도 없으면서 누구처럼 문화대통령인양 행세하려 해서도 안 된다. 백범처럼, 미테랑처럼 문화의 진정한 힘을 믿어야 한다. 문화정치는 바로 그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프랑스는 그렇게 했고, 하고 있다.

문화정치는 프랑스의 발명품이 아니다. 단지 그 발명품을 먼저 사용했을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뿌리이자 정통성인 중국 중칭의 임시정부청사를 찾았다. 그 뿌리에 바로 백범 김구가 일찌감치 소중히 묻어둔 문화국가론도 있다. 그 소중한 발명품으로 지금까지의 문화적폐를 청산하고 우리도 이제부터는 정말 ‘문화가 정치’임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오피니언타임스=이대현]

 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 콘텐츠랩 씨큐브 대표

 전 한국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저서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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