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의 소중한사람]

“아야! 이리와. 이리오라고! 그 뭐한다고 처 쌓인데로만 올라가니?”
“넘어지지말고 찬찬~히 올라가라고!!”
“찬~찬~히. 찬~찬히, 그래도 조심해라!”
“야 임마야 뛰지 마! 뛰어오지 마라. 오늘 지각 안 잡는다!”

선생님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소리를 질렀다. 손에 쥔 커다란 빗자루를 장군님의 칼자루마냥 휘두르면서. 안타깝게도 장군님 휘하에는 여고 1,2,3학년 철부지 부하들뿐이었지만.

부하들은 선생님의 독특한 억양을 흉내 내면서 히히 웃었다. 막연하게 선생님은 사투리를 썼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생생한 그 목소리를 떠올려보니 사투리와 표준어가 적절하게 섞인 그분만의 독특한 언어세계를 나는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아직도 생생한 그 목소리를 생각한다.
선생님의 겨울을 생각한다.

©픽사베이

내가 다녔던 여고는 교문을 통과하자마자 엄청난 경사의 오르막길을 올라가야만 했다. 숨이 턱까지 찰 무렵에야 교실이 나오던 곳이었다. 이제 막 등교라는 위대한 등정에 성공했건만 교실까지 가려면 다시 2, 3층이든 4층이든 층계를 올라가야만 했다. 아침이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들이 교실 문을 씩씩거리며 열고 들어섰다.

겨울에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면 그 오르막길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눈이 쌓인 길과 눈이 쌓여있지 않은 길. 아무리 눈이 내려도 열정적인 빗자루질은 그 눈이 쌓일 틈을 주지 않았다. 빗자루질 하랴 등교하는 우리에게 소리를 지르랴 선생님의 몸은 360도 자유자재로 회전을 했다.

무심코 걷던 누군가의 운동화가 눈 쌓인 길을 5cm정도 침범하려는 찰나의 순간조차 잡아내는 매의 눈!
“야야. 그리 가지마! 넘어진다고! 몬생긴 얼굴 더 몬생겨진다고!”
우리의 꽃돼지 같은 외모까지 함께 걱정해 주던 동지애!
심지어 본인이 직접 달려가서 교복 소매 자락을 잡고 양지로 끌어내는 일도 다반사였다.

눈이 내리던 날에는 항상 눈이 내리지 않던 길이 있었다.
눈이 쌓이지 않은 길.
아침 7시 40분까지 등교.

그 길을 위해 선생님들은 그리고 학교관리아저씨들은 이른 새벽부터 출근길에 나섰을 것이다. 그렇게 깨끗하게 눈을 치워놓고도 학생들이 미끄러질까 안심이 되질 않았는지 꼭 잡고 올라가라고 언덕 길 따라 나무들에 밧줄까지 동여매놓던 그 손은 아무리 장갑을 꼈어도 시렸을 것이다.

펄펄 눈이 내린다.
아마 쌓이고 쌓일 것이다.
쌓여가는 눈 사이로 새로 ‘눈이 내리지 않는 길’이 생겨나는 감동의 순간을 베란다 너머 놀이터의 붉게 달아오른 빛 사이로 그저 감탄을 할 뿐이다.

경비실에 근무하시는 분들의 곤색 유니폼위로 벌겋게 달아오른 땀이 하얗게 식어 내린다. 빗자루가 샥~샥~ 하고 숨을 몰아쉬는 소리에 에그머니나! 깜짝이야!하고 내리던 눈이 그만 놀라 달아난다.

선생님은 항상 ‘열심히’라는 말을 했다. 무슨 만병통치약처럼 열심히만 하면 세상에 못할 일이 없다고 했다. 우리가 열심히 살아갈지, 허송세월 할지도 모를 그 하루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그는 그의 하루 중 삼분의 일을 눈을 치우는데 썼을 것이다. 그는 눈을 치우느라 땀이 흘러내리는 이마로, 조심하라고 우리에게 지르는 고함으로도 우리를 가르쳤다.
투박한 배려를, 그리고 사랑을 가르쳤다.

펄펄 눈이 내리는 세상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 길이 있다. 등교하던 오르막 길, 아파트 길, 동네 길, 아스팔트 도로. 저 멀리 철책을 따라 난 길.

거기에는 새벽을 깨고 나온 배려가, 너의 아침을 위해 나의 새벽 전부를 주었던 사랑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의 슈퍼맨 같았던 선생님을 생각한다. 밤새 환하게 밝히는 아파트 경비실의 남색 점퍼가 주는 안도감과 갑자기 폭설이 내리던 어느 지방 국도에서 노란 제설차를 생명줄처럼 졸졸 따라갔던 나의 실낱 같았던 마음을 생각한다. 전방에서 우리의 평범한 ‘오늘’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도 모자라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쓰레기’를 치워야하는 강인한 어깨, 다만 하얗게 터버린 얼어버린 손등을 생각한다.

당신의 고생으로 열어준 깨끗한 길을 밟고 아침을 맞은 내가 열심히 생활하기를, 그 누군가에게는 당신 같은 사람이 되어줄 수 있기를 당신은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 바람에 걸 맞는 사람이 되었는지 차마 부끄러운 마음으로 나는 나의 선생님을 불러본다.
선생님. 눈이 옵니다. [오피니언타임스=이수진] 

 이수진

 영어강사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감사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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