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련의 그림자]

[오피니언타임스=최혜련] 청와대에 올라온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청원을 계기로 다시 낙태죄에 대한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예전부터 이전부터 이어진 이 논쟁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란 두 개의 가치가 팽팽하게 대립하면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대한민국에서 낙태는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범죄를 통한 임신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낙태를 하는 여성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낙태를 시술한 의료진도 2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는다. 하지만 매년 17만명이 낙태를 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기소율이 낮아 현실과 동떨어진 법조항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또한 처벌 대상이 여성과 의료진에게만 한정된 모순을 지녀 낙태죄 폐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현재 낙태가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경우는 모자보건법에 해당하는 사유여야 하며 임신 24주 이내 법률상·사실상 배우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허용 사유는 크게 강간으로 임신하거나 혼인 불가능한 친족 간의 임신일 경우, 본인 또는 배우자가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임신이 임산부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 기준들이 상당히 모호하거나 무책임한 부분이 많다.

먼저 성폭력의 증거로 유죄확정 판결을 제시해야 하는데 재판에는 상당히 시간이 걸린다. 24주 이내에 증거를 입증하지 못하면 불법이 되는 것이다. 생부가 혼인 불가능한 친족인지는 어떻게 확인하며 임산부의 건강을 해친다는 판단에 대한 기준도 없다. 그리고 배우자에 대한 경우도 임신을 혼인 후 상황으로 단정짓고 있다. 그렇다면 미혼모는 스스로 결정을 내려도 되는 것인지, 이혼소송에 있는 배우자의 경우 출산을 동의하지 않는데도 강제로 낳아야 하는 것인지 여러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게다가 태아의 생명을 모든 가치들 중에 최우선으로 여긴다면서 낙태에 예외조항을 두는 것도 우습다. 강간에 의한, 임산부의 건강을 위협하는 태아의 생명 또한 평범한 임신의 경우와 똑같은 가치를 지니는데 말이다. 이렇게 한쪽 편의 가치만을 주장하기 시작하면 청와대 답변에서도 그렇듯 제로섬이 되고 만다.

그렇기에 이분법적인 사고로 낙태죄를 바라보기보다 임신중절을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고려해봐야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원치않은 임신’이다. 왜 임신은 축복이 아닌 현실이 되었을까? 출산은 쉽게 경력단절로 이어진다. 아직도 육아휴직 쓰는 것을 눈치 봐야하며 설령 사용한다해도 복직 후 유리천장이 생겨버린다.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드는 양육비 같은 ‘경제적 이유’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미혼모의 경우 사회적 편견을 홀로 감당해내기란 기적에 가깝다.

이렇듯 낙태를 선택하기까지의 상황은 고려되지 않은 채 여성을 범죄자, 문란한 여성이라는 식으로 낙인찍고 도덕적 책임을 부과한다. 게다가 낙태를 위해서는 터무니없이 비싼, 안전하지 않은 수술을 받아야하며 그 후 무슨 일이 있어도 의사에게 책임을 물 수 없다. 일각에서는 낙태죄를 폐지하면 낙태율이 크게 상승할 것이라 주장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 수술은 필연적으로 산모의 자궁손상을 야기하며 출혈이나 감염 등의 부작용도 생길 수 있어 쉬운 선택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그러게 원치않은 임신을 하지 않도록 피임을 잘하지”라고 질책한다. 그런데 비판 받기 전에 앞서 묻고 싶다. 대체 100% 피임법이 있으며 피임하는 법을 어디서 배웠냐고. 나는 성교육 시간에 피임약을 어떻게 복용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다. “10대가 무슨 성관계야”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싫어요, 안돼요”를 외치라는 수준의 성교육밖에. 사실 아직도 인터넷에서 배운 지식이 맞는 건지 확신할 수 없다. 여기에 잘못된 정보가 포함돼 있을 수도 있고 정확한 기준이 없기에 그 정보가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 힘들다. 버섯에 대한 지식없이 독버섯과 식용버섯을 구분해보라는 것처럼 황당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 상황에서 온전히 피임의 책임이 개인의 몫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법적 모순이 있으며 양육을 위한 환경과 사회적 인식, 제대로 된 성교육이 결여된 상황에서 낙태죄를 존치하는 것은 국가의 폭력이다. 그렇다고 무분별한 낙태를 허용하자는 것이 아니다. 낙태를 죄로 규정하지 말고 배아가 태아가 되기 직전의 기간을 논의해 일정 기간 이내에 낙태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수히 많은 의견들이 얽혀있는 만큼 한번에 변화시키기 어려운 문제지만 이제까지 미뤄왔던 답을 내려야하지 않을까.

 최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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