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어원설설]

[오피니언타임스=동이] 정유년 닭의 해가 다 가고 있습니다. 닭해라 그런가, 연초 이후 조류독감이다, 살충제 계란이다 해서 이만저만 어수선하질 않았습니다. 닭 수난의 해였습니다.

닭은 본래 이름(달기)에서 보듯 ‘달려야 하는 동물’이죠. 달려야 할 녀석들이 A4용 한장 크기의 밀폐공간에서 사육됐으니 본성대로 자랄 수 없었던 겁니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여기저기 내달리며 벌레 잡아먹고 모래바닥에 뒹굴면서 기생충을 털어내야 하는데 옴짝달싹 못하는 닭장에서 ‘먹고 낳고’만 반복했으니... 면역력은 급격히 떨어지고 진드기 탓에 몸인들 오죽했겠습니까? 동물보호론자 입장에서 보면 동물학대라 부를만 하죠.

조상들은 넒은 닭장에서 닭을 키웠습니다. 돼지도 좀 넉넉한 ‘우리’에서 키웠습니다. 돼지울이라도고 불렀죠. 울(鬱), 우리는 울울창창할 때의 울, 울타리의 울과 같습니다. ‘경계’ ‘피아구분’의 의미를 담고 있죠.

“한국인은 나보다는 가족, 공동체 의식이 매우 강하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언어표현이 우리다. 우리는 담을 뜻하는 울타리, 짐승들을 가두어 두는 공간인 우리와도 어원을 같이하는 말로 추정되는데, 그 어원에서 추정한다면 우리는 집단적이고 안전하기는 하지만 개방적이지 않다. 어떤 외국인에게 한 남자가 자기 아내를 ‘우리 아내 (Our wife)’라고 해서 그 외국인이 기겁했다고 할 정도로 한국인은 우리라는 말이 입과 사고에 배어 있다. 집도 마이 홈이 아니라 아워 홈(실제로 이 이름의 외식 체인점도 있다)이라고 말해야 편하고 한국에서 가장 큰 은행도 이름이 우리은행이고 과거의 야당 이름도 열린 우리당이었다.” (꿈꾸는 독종/황인선 저)

우리란 말의 특성을 분석한 글입니다. 물론 요즘엔 돼지도 우리보다는 대단위 사육장(양돈장)에서 비육시킵니다. 예전의 돼지우리와는 다른 시멘트로 된 공간이죠. 관리하기 편하게...

돼지가 사는 공간은 우리라 불렀지만 소 기르는 곳은 외양간이라 했습니다. 소의 경우 가산 1호였던만큼 집에 딸린 공간에서 키웠습니다. 우양간(牛養間)에서 변음된 외양간의 ‘간’에 집의 일부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외양간에 놓였던 소 여물통 ©동이

간(間)은 단칸, 집한칸, 두칸할 때의 ‘칸’, 정주간이나 헛간 할 때의 ‘간’과 같습니다. 집 지을 때 부엌과 안방, 건너방, 사랑방 등을 주로 배치하지만 부속건물은 외양간이나 헛간을 붙여서 지었습니다. 외양간을 주거공간과 비교적 가깝게 둔 것은 소가 농경사회에서 매우 귀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소를 잃어버리는 일은 재산상 큰 손실이었으니까요.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듯 소는 성질이 비교적 온순해 도둑이 줄을 풀어 쉽게 끌고 갔습니다. 때문에 도난방지를 위해 워낭을 달기도 했습니다. 소가 뒤척일때 나는 워낭소리로 존재유무를 알 수 있었으니까요.

반면 돼지는 집과는 떨어진 별개의 공간(우리)에서 키웠습니다. 돼지는 우리 밖으로 나오는 순간 꽥! 꽥! 소리를 질러대 도둑맞을 염려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탓도 있습니다.

조상들은 소집엔 외양간, 돼지집엔 우리, 닭집엔 닭장이란 이름을 붙여줬습니다. 형태도, 구조도 물론 다 다르죠.

새집은 ‘둥지’라 했습니다. 새들은 풀가지를 모아 둥그렇게 집을 짓는데, 이를 ‘둥지튼다’고 했습니다. ‘튼다’나 ‘틀다’는 풀가지를 꼬거나 비틀어 만드는 행위를 이릅니다. 따라서 둥그렇게 비틀어 지은 집, 즉 둥근집이 둥집>둥지로 바뀐 걸로 추정됩니다.

짚이나 싸리 따위로 바구니 비슷하게 엮어 만든 물건을 둥우리라 합니다. 닭이 알을 낳거나 품을 수 있게 짚으로 둥그렇게 만든 것도 둥우리라 했습니다. 둥우리나 둥지나 형제어임을 알 수 있죠.

같은 집이지만 특성과 모양에 맞게 이름지어 불렀던 조상들의 말솜씨가 놀라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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