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미의 집에서 거리에서]

[오피니언타임스=신세미] 한때 딸 둘은 금메달, 딸 아들의 순서면 은메달이라고 했다. 반대로 아들만 둘이면 ‘노메달’ 심지어 ‘목메달’이라는 심한 우스갯소리가 나돌았다. 딸을 둔 부모는 딸 덕에 비행기 여행하지만, 아들일 경우 자식 얼굴 보기도 힘들다며 아들 딸을 금은동 메달에 비유한 유행어였다.

그러나 이즈음 메달 색깔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얼마전 아들 둘인 친구가 환히 웃으며 ‘돌아온 금메달’을 아느냐고 했다.

아들 둘이 더 이상 노메달, 목메달이 아니란다. 어느새 ‘다남’(多男)을 기원하던 전통으로 회귀해 아들 둘이 금메달의 권좌를 되찾았단다. 그래서 ‘돌아온 금메달’이다.

©픽사베이

자식을 시댁보다 처가에 맡기려는 젊은 부부의 ‘신모계사회’ 현상에 따른 세태의 변화다. 젊은 부부의 일상에서 처가 의존도가 커졌다. 딸쪽 부모는 심신이 고달픈 반면, 아들 부모는 상대적으로 덜 매여 홀가분한 노후를 즐긴다는 이야기다.

부러움의 대상이던 ‘금메달리스트’, 딸들의 부모는 외손주의 육아를 맡아 노년의 여유를 누릴 겨를이 없단다.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엄친딸’의 시대, 일하는 딸들을 위해 친정부모들은 손주 양육을 자의든 타의든 떠맡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변에서 아들 부럽지 않게 잘 키운 능력있는 딸이 결혼 후 육아 때문에 자기 일을 포기하지 않도록 ‘젊은 엄마’처럼 지극정성으로 손주를 돌보는 친구가 적지 않다.

시댁서 친손주를 돌보거나 사돈이 교대로 아들 딸의 집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손주 돌보기에 관한 한 친정부모의 몫이 단연 높다.

한 친구는 자신도 직장인이면서 결혼한 두 딸이 출산하자 어린이집 입학 전까지 키워주겠다며 외손주를 집으로 불러들였다. 딸 모녀뿐아니라 사위도 자연스럽게 처가를 제집처럼 드나드니 하루하루가 남의 집살이하듯 편치 않다고 했다.

해외 연수 중인 딸을 위해 손녀를 수 년째 돌보는 친구는 한해 한해 기력이 날로 떨어진다고 넋두리했다. 쌍둥이를 키우며 쩔쩔매는 딸이 쉴 수 있도록 수시로 손자들의 놀이 파트너를 자청하는 친구는 관절염이 나을 겨를이 없다면서도 딸 집으로 보낼 음식 장만에 바쁘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7’ 보고서도 처가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아진 우리 사회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 조사에서 부부가 가까이 살거나 동거하는 비중은 시댁이 처가보다 곱절 높았지만, 육아 지원 등에서 처가 쪽과의 교류가 훨씬 활발했다. 특히 맞벌이부부의 경우 처가에 도움을 받은 비율이 19%로, 시가(7.9%)보다 곱절이상 높았다. 연락 빈도에서도 처가 쪽은 늘어난 반면, 시댁과의 연락은 줄어들었다.

‘겉보리 서 말이면 처가살이하랴’거나 ‘처가와 뒷간은 멀수록 좋다’던 시절이 있었다. 목구멍에 풀칠할 정도만 있으면 처가에 들어가지 않겠다며 처가와 거리를 두는 옛말에 젊은 세대들은 감정이입이 어려울 것 같다. 요즘은 오히려 처가살이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시대다.

학교와 직장에서 ‘여성 우위’의 시대, ‘일하는 여성’들이 시댁보다 친정에 손을 내미는 것을 수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친정부모의 입장에선 딸의 요청을 거절하기 어렵다. 딸을 둔 부모는 퇴직 후 여유있는 삶을 즐기지 못하고 외손주 보느라 골병 든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누군가 농담삼아 아이 돌보미를 면하려면 손주에게 입에 댔던 음식, 사탕이나 아이스크림을 건네면 당장 반응이 온다고 귀띔했다.

어린 손주 돌보느라 심신이 탈이 날 지경이라면서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오늘도 누군가에게 휴대폰 속 손주의 영상과 사진을 꺼내 보이며 또 하루를 넘긴다. 손자 손녀 보는 즐거움이 공짜가 아니라고도 위안한다. 

‘손주는 오면 좋고 가면 더 좋다’던가. 손주가 쑥쑥 자라 유치원이라도 다니게 되면 육아의 짐은 덜겠지만 쇠약해지는 심신이 아쉽기만 하다. 다둥이가정을 우대하는 출산 장려의 시대, 할머니의 신세한탄이 남의 일이 아니다.

신세미

전 문화일보 문화부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서 기자로 35년여 미술 공연 여성 생활 등 문화 분야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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