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카이스트·포항공대 졸업생 목말랐다”

KAI가 서류전형에서 떨어진 일부 후보자를 추천과 명문대 졸업생이라는 이유로 합격시켰다. 사진은 KAI 재판 표지ⓒ오피니언타임스

[오피니언타임스=이상우]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추천과 명문대 졸업을 들어 일부 서류전형 불합격자를 합격자로 바꾼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제21부(조의연 부장판사)는 지난 26일 KAI 경영 비리 제2차 오후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피고인은 하성용 전 대표이사(사장) 외 4명이 출석했다. 증인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인사팀 과장으로서 대졸 공채를 맡은 채 모씨(현재 LG이노텍 근무)와 현재 KAI 인사팀장 심 모씨다.

이날 오전 공판에선 KAI가 서류전형 불합격자 중 추천을 등에 업은 지원자 몇 명을 골라 구제한 걸 두고 검찰과 변호인단의 공방이 이뤄졌다. 오후 공판은 KAI가 어떤 판단 때문에 채용 부정을 저질렀는지 입씨름이 벌어졌다.

증인신문이 계속되면서 KAI 채용 관행이 드러났다. KAI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카이스트, 포항공대를 나온 지원자를 따로 분류해 관리했다. 이들은 학점이나 어학 점수 등 기본 요건에서 탈락하더라도 면접 기회를 받았다. 형상이나 구조 설계 등 항공기 제작에 중요한 일부 분야에선 서울대, 카이스트, 해외 대학 출신들이 선호됐다.

채 모 전 과장은 “명문대 중시는 KAI 내부 관행이었다”며 “학점과 어학 점수 등이 모자라는 데도 서류전형을 통과시켜 준 건 잘못”이라고 말했다.

심 모 팀장은 “상위 5개 대학 졸업생들이 지방에 있는 KAI에 잘 오지 않으려 했다. 그들을 데려오는 데 목말라 있었다”며 “형상 설계 부문은 실무자 의견을 반영해 관련 학과가 있는 서울대, 카이스트, 해외 대학 졸업생들을 우대했다”고 짚었다.

검찰은 KAI가 스스로 정한 채용 기준을 어긴 총체적 부정을 저질렀다고 공격했다. 

검찰에 따르면 학점 2.8로 서류전형 기준 3.0(4.5만점 기준)보다 부족한 김 모 지원자는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출신이란 이유로 추천을 받아 최종 합격을 거머쥐었다. 스펙 경쟁이 치열한 경영지원부문에서 경쟁자보다 평가 점수가 모자랐던 황 모 지원자는 추천과 ‘장기근속이 가능하다’는 명분으로 서류와 면접전형을 뚫고 KAI에 입사했다.

심 모 팀장은 “서울대라고 무조건 붙인 건 아니다. 특수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후보임을 감안했다”며 “KAI에 들어온 직원 중 다시 떠나는 비율이 25%가량 된다. 장기근속 여부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채용설명회에 온 지원자의 적극성도 고려한다고 말하다가 “설명회와 서류전형 요건이 무슨 상관이냐”는 검찰의 반박에 부딪히기도 했다.

검찰은 심 모 팀장에게 추천을 받지 않은 지원자도 전문성이나 직무 연속성 같은 별도 기준을 적용했냐고 쏴붙였다. 결국 추천 없이는 그런 배려도 기대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심 모 팀장은 “추천이 없는 이를 별도 기준으로 평가하진 않았다”고 인정했다.

검찰의 공격은 채용 부정을 지휘한 몸통으로 번졌다. 검찰은 하 전 사장을 염두에 뒀지만 채 모 전 과장은 “팀장 지시를 받고 불합격자 일부를 합격자로 만들었다”고 전했다. 심 모 팀장도 “채용은 경영지원본부장 전결 사항”이라고 답변했다. KAI 채용에 하 전 사장이 영향력을 미치긴 힘들다는 변호인단 논리를 뒷받침하는 증언이다.

변호인단은 KAI 채용이 객관성을 잃은 면은 있지만 소규모에 불과하며 회사에 이익이 된 결정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모 본부장 변호인은 “검찰에서 거론한 사람들은 전공, 어학 점수, 장기 근속 등에서 장점을 갖고 있다”며 “이들은 입사 후 다른 동기보다 우수한 근무 평정을 기록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KAI 서류전형 합격자는 총 454명인데 특혜를 받은 이는 5명에 불과하다”며 “5명은 실무 면접과 인성 면접에서 모두 높은 점수를 얻어 면접전형을 자력으로 통과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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