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완의 애, 쎄이!]

[오피니언타임스=우디] 취준생의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무거운 백팩을 메고 터벅터벅 길을 걷다가 문득 ‘아, 그 때가 왔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인가 간질간질하고 귓가와 옆구리가 북적북적해지는 느낌이었다. 마음속에서 다양한 인종과 세상에 없는 어떤 존재들까지 모여서 즐겁게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면 연락을 해야겠네’라고 생각했다.

해가 바뀐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시작했던 무렵은 초등학생 즈음이었다. 연말에 친척들이 모두 모여서 해돋이를 몇 번 보러 갔고, 어떤 기억에는 해가 바뀔 때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샌다고 어른들이 겁을 줘서 말똥말똥 새벽을 지새웠던 시간도 남아있다. 북적북적하게 연말을 보내고 신년이 되면 교보문고에 가서 읽지도 않을 어려운 책을 여러 권 샀었다. 우리 집은 새해가 되면 연례행사처럼 책을 사러 종로로 나들이를 갔다. 유년시절의 나의 연말과 신년은 그런 것이었다.

©픽사베이

어렸을 적 나는 어른들이 하는 망년회, 신년회가 유난히 부러웠던 꼬맹이였다. 망년회를 알리는 뉴스에 나오는 어른들은 노란색 불빛 아래에서 술잔을 부딪치면서 굉장히 들떠있었다. 내 눈에 그들은 굉장한 용사같이 보였는데 거대한 전투에서 승리를 이루고 서로를 응원하는 것 같았다. 어른들은 저런 건가,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내년에 쓸 다이어리를 고르면서 올해의 다이어리를 정리하던 중이었다. 2017년 1월 1일 일요일의 나는 데일리 공간에 짤막한 글을 적어놓았다.

지난 밤 새해 인사를 했다. 올해도 잘 살아보자고, 올해도 잘 부탁한다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1년이 나만의 1년이 아니고. 너와의, 친구들과의, 가족과의 1년이며, 우린 이 1년 뒤에 어찌 바뀔지 모르겠구나. 우리 모두의 삶은 언제 갑자기 사라지고 달라질 수 있으니 이렇게 매년 서로의 안부를 묻고 부탁하는 삶이어야 한다고.

그 글을 읽으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오래 전 망년회를 꿈꾸던 어린아이로 돌아가 노란 불빛 아래의 어른들을 보았다. 그때는 들리지 않았던 그들의 작은 대화가 들려왔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얘기는 아니었다. “어머니는 잘 지내셔? 너는? 살 뺀다며! 그대로네!” “야, 내년에 좀 따뜻해지면 바다라도 보러 갈까? 너 드디어 차 샀다며! 좀 떠나보자!” “내년에 그 선배 결혼한다는 것 같던데, 그때 또 한 번 얼굴 다 보겠네?” “너희 팀장은 아직도 지각하고, 너 괴롭히고 그래? 아주 인간이 바뀌질 않는구나. 우리가 가서 한 번 때려줄까?”

1년이라는 시간의 작은 틈새들로 주고받았던 이야기를 모두 끌어 모아 서로의 지금을 확인하고 웃고 있었다. 새로운 해에는 우리 모두가 행복할 것이며 지금은 할 수 없는 어떤 일들을 모두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거대한 승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일상의 작은 빛남과 어둠에 대해서 물었고, 다만 그 이야기의 빛이 찬란할 뿐이었다.

간질간질한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달력을 펴고, PC 카카오톡을 켰다. 짠짠짠! 똑똑똑! 단톡방에 글자로 내는 소리를 집어넣으면서 요즈음의 안부를 물었다. 돈은 없지만 시간은 많고 마음이 충만한 나만 시간이 널널했다. 사회초년생인 친구들, 취업준비기간이 꽤나 오래 되어 곧 취직이 눈앞에 보이는 친구들, 아직 학생이라서 기말고사에 치이는 친구들은 쉽게 시간이 나지 않았다. 여러 사람들이 시간을 맞춰야 하고, 너도나도 약속이 많은 시기라서 약속 날이 쉽게 툭 튀어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왠지 다들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바빠도 봐야지, 연말인데!’

나이를 점점 먹어갈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 같다. 시간은 기억할 수 있는 순간이 많을수록, 새로운 경험을 느낀 순간이 많을수록 길게 느껴진다고 한다. 어른이 될수록 새로운 경험은 없어지고, 5일 동안 일을 하고 2일 동안 잠을 자면 일주일이 지나가니 기억할 일도 드물다. 시간의 층이 점점 얇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상의 순간마다 어떤 방점을 찍고 싶어서 아등바등하지만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기록을 하고 싶은 밤에 노트에 코를 박고 자기도 하고, 주말에 여행을 하러나갔다 더 큰 피로만 얻고 오기도 했다. 예전에는 찍고 싶지 않아도 입학과 방학과 개학과 졸업이 턱턱 찍혔는데, 어른은 그런 것이 없었다. 기억하고, 매듭을 지을 순간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래서 연말의 모임을 기다리는 것 같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이 된다고 해서 ‘이번 판은 망했으니 새로운 판을 드릴게요’하고 모든 어려움이 0으로 돌아가진 않는다. 어제 잠든 내 몸이 똑같이 일어나고, 12월 31일에 맹맹했던 코감기도 그대로 달고 1월1일을 시작한다. 특별히 인지하고 있지 않으면 해가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없다. 그냥 어제와 같은 오늘일 뿐이다. 어떤 때에는 올해도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구나, 하고 우울했다.

하지만 우리 일상의 결과라는 것은 어떤 단 한 순간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것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루하루 지내며 털목도리를 짜듯이 서로의 인연이 얽히고설키면서 잘리고 이어지는 것이 1년이구나, 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12월이 되면 열렬하게 당신들의 안부를 묻는다. 기나긴 일상에 점을 꼭 박아 넣듯이. 우리가 또 이만큼 버티고 지내왔구나, 내년에도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가겠구나. 그런 심심한 안부와 응답을 보면 그제야 나는 이 시간을 보낼 안정을 얻는다. 12월을 보내는 방법이다. 

 우디

 여행, 영화, 글을 좋아하는 쌀벌레 글쟁이.
 글을 공부하고, 일상을 공부합니다.
 뛰지 않아도 되는 삶을 지향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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