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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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타임스=김선구] 지금처럼 학급당 학생수가 이삼십명 내외로 줄어들 줄은 몰랐다. 그나마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녀서 학급당 학생수도 오륙십명에 부제수업도 없는 사치를 누렸다.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친구들은 소위 콩나물교실이라 불리는 데다 오전반 오후반으로 부제수업을 하는 곳이 비일비재했다.

개구쟁이들이 빽빽히 들어찬 교실에서 선생님이 안 계신 시간이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담임선생님이나 담당과목 선생님이 무슨 사정으로 빠지게 되는 수업시간에는 흔히 반장한테 특별지시가 떨어지기 일쑤였다. 떠드는 애들 명단을 칠판에 적어놓으라는 지시다.

반장들은 선생님의 명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들어 열성을 다하기도 하고 더러는 적당히 하기도 했다. 어떤 반장들은 떠드는 아이 이름을 칠판에 적으면서도 싸움깨나 하는 무서운 애들은 명단에 적지 않고 만만한 애들만 골라 적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학교에서 중점 지도했던 것에는 낙서금지도 있었다. 책상위부터 특히 화장실벽에는 온갖 낙서로 가득했고 심지어는 낙서를 하지 말라는 낙서까지도 많이 보였다. 사춘기애들의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포르노 그림이나 낙서로 여과없이 발현되는 장소가 화장실벽이었다.

아내의 강의에 운전기사로 오랜만에 찾은 대학캠퍼스인 고대나 외대의 화장실벽에서도 옛날 중고교 학창시절 화장실벽에 난무했던 낙서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어 놀라기도 했다.

학창시절 반장이 적어놓던 객관성이 떨어지는 떠든 애들 명단이 새삼 생각나는 세상이다.

신도시 입주 초기 일산으로 이사간 뒤 얼마 지나지않아 수색방향으로 차를 몰고 출퇴근 하던 도중 교통경찰과 실랑이를 벌인 적이 있다. 노란불로 바뀌는 시점에 멈추기가 애매해 횡단보도를 지나갔는데 오십미터 이내에 다시 횡단보도 신호가 있어 거기서는 빨간불에 멈추었더니 교통경찰이 다가와 앞의 신호에서 신호위반 했다고 딱지를 끊으려 했다. 교통 흐름에 따라 급정거를 피하려 지나쳤고 내 뒤를 따라오던 차도 건너왔는데 위반이라니 억울하다고 따졌다. 문제가 있다면 뒷차가 더 위반일텐데 왜 뒷차는 그냥 보내고 앞차만 단속하느냐 말했다.

그의 대답은 그 많은 신호위반자 중 어느 차를 단속하느냐는 자기들 재량이라 하였다. 한참을 승강이하고 기분만 상해 범칙금을 냈던 기억이 난다. 반장이 적어놓는 떠든 애들 명단과 함께 새삼 생각난다.

내로남불이라는 말로 그러한 처신이 다 용납되는듯한 사회다. 내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를 흠잡는 인간의 모습이 성경에도 쓰여져 있다. 남의 흠이나 잘못에 열을 내며 인신공격까지 앞서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의 치부가 공개될 때 더 큰 흠이 드러나는 세상을 살아가며 나 자신은 어땠는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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