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어원설설]

청원자 20만명을 넘긴 ‘낙태죄 폐지청원’에 대해 청와대가 얼마전 답했습니다.
“태아 대 여성, 전면금지 대 전면허용 식의 대립구도를 넘어서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단계다. 2010년 이후부터 중단된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내년부터 재개하겠다”(조국 수석)

소년법 개정청원에 이은 것으로 청와대 청원제가 공론의 장으로서 기능한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한편으론 청와대 권한 밖의 요구나 일부 도넘은 청원 글로 ‘떼법창구’가 됐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시끌시끌한 세상 탓에 ‘헌법 위에 떼법있다’는 말이 언제부턴가 유행어가 됐습니다.
떼로 몰려다니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법치를 무시하고 생떼를 쓰거나 억지 주장을 하며 시위 등의 단체 행동을 벌이는 행위. 떼법의 사전적 풀이입니다.

떼는 여럿이 함께 모여 있는 무리(Group). ‘무리지어’ ‘떼로’ 다니는 소떼 등 동물떼나 물고기떼, 뗏목(통나무들을 가지런히 엮어서 물에 띄워 사람이나 물건 따위를 운반하도록 만든 것) 의 떼 역시 돌림어죠.

무리지어 자라는 식물로 잔디가 있습니다. 번식력이 아주 강해 조금만 심어도 무성하게 번지죠. 무리지어 번지는 특성 때문에 예부터 ‘떼’ ‘뙤’라고도 불렸습니다.

잔디 입히는 일을 ‘떼 입힌다’고 했고 잔디를 떠서 옮길 때 ‘뗏장을 뜬다’고 했습니다. ‘뗏밥을 준다’(봄철 골프장에 잔디가 잘자라도록 모래와 흙을 섞어 뿌리는 일)고도 했죠.
잔디=떼 등식이 성립했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인부들이 예초기로 벌초하는 모습. 예부터 무덤에 잔디 입히는 일을 ‘떼 입힌다’고 했다. ©함양군청

잔디는 지방에 따라 잔대미, 잔떼, 잔대기, 뙤로도 불렸습니다. 고어가 ‘잔뙤’였다고 하니 잔디(잔+디)가 ‘작다’ ‘잘다’는 뜻의 ‘잔’과 ‘떼’가 결합해 잔뙤, 잔때, 잔떼>잔듸>잔디로 진화한 게 아닌가 합니다.

‘떼’는 떼강도, 떼거지에서 보듯 사람에게도 썼습니다. 들어주기 어려운 요구를 지속적으로 하는 ‘떼 쓴다’‘생떼를 쓴다’는 표현 역시 같은 의미입니다.

여름날에 강하게 내리쬐는 몹시 뜨거운 볕을 뙤약볕이라고 했습니다.
‘뙤약’은 ‘두드러기’를 뜻하는 중세국어 ‘되야기’에서 왔다고 보는 게 통설입니다. ‘되야기’가 ‘도약이’, ‘또약이’ 등으로 변하는데, 이것이 ‘뙤약’과 같다는 것이죠. 즉 ‘두드러기를 일으킬 만큼 따가운 볕’이란 뜻입니다.

‘뙤약’이 ‘따끔하다’는 의미의 방언 ‘뙤얏하다’에서 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뙤얏하다’의 ‘뙤얏’과 ‘뙤약’은 어형이 유사할 뿐아니라 뙤약볕의 속성과 ‘뙤얏하다’의 의미가 밀접해보이기 때문이죠.

뙤약볕과 비슷한 말로 ‘땡볕’이 있습니다. 뙤약볕의 변형일 수도 있지만 대볕>댁볕>땍뼡>땡볕이 됐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일부 지방에선 지금도 댁별, 땎볕, 땡볕이라고 부르죠.

볕은 햇빛. 댁은? 대(大)에서 온 말로 추정되며,  큰 볕이라는 뜻. 유사한 흔적으로 한낮을 뜻하는 대낮이 있습니다. 한낮에서 한이 큰 대의 뜻으로 쓰이면서 대낮으로도 쓰인 걸로 보입니다.

많은 빛이 내려쬔다는 의미에서 ‘떼볕’, 큰 볕이 내리쬔다는 뜻에서 ‘대볕’이 다 가능해보입니다.

떼로 다니는 벌. 땅(地)에 산다해서 땅벌이라고도 하지만 떼벌, 땡삐라고도 하죠. 땅벌에 ‘떼’의 의미도 녹아있습니다.
'떼'든,'대'든,'땅'이든,'땡'이든 말이란 게 오랜 시간 서로 영향을 줘가며 뜻과 음이 분화돼온 게 아닌가 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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