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환의 코리아 프리미엄 프로젝트]

[오피니언타임스=이영환] 요즈음 가상화폐(virtual money)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이 뜨겁다 못해 화상을 입을 정도이다. 증권시장에서 주식과 채권이 거래되듯이 비트코인(Bitcoin)을 필두로 리플(Ripple), 이더리움(Ehtereum), 라이트코인(Litecoin) 등 생소한 이름의 수십 가지 가상화폐가 가상화폐거래소에서 거래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생소한 이름의 가상화폐들이 거래되는 진기한 상황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더욱이 가상화폐, 암호화폐(cryptocurrency), 디지털화폐(digital currency), 전자화폐(electronic currency) 등 여러 가지 이름이 혼용되고 있으니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또한 통화를 의미하는 ‘currency’와 화폐, 즉 돈을 의미하는 ‘money’가 뒤죽박죽으로 혼합되어 사용되고 있으니 사람들은 더욱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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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money와 currency 개념부터 정리해보자. 일반적으로 전자는 화폐, 후자는 통화로 번역된다. 화폐는 금과 같은 가치 있는 금속이 뒷받침되고 있는 반면 통화는 오로지 정부의 보증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화폐와 통화를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구분은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글로벌 경제에서 통용되는 화폐는 어떤 것도 실질적으로 금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화폐는 정부(중앙은행)가 지급을 보증하는 법정통화(legal tender)일 뿐이다. 나아가 은행이 제공하는 신용(credit) 또한 실질적으로 통화로 기능을 한다. 따라서 화폐와 통화 그리고 신용을 모두 묶어 화폐라고 불러도 무방하고, 아니면 통화라고 해도 관계없다.

다음으로 지폐와 같은 실질화폐(real money)와 가상화폐의 차이에 대해 살펴보자. 실질화폐의 경우 그것이 달러든 원화든 소지자는 이 돈을 자신의 은행계좌에 보유할 수도 있고 아니면 현금의 형태로 지갑에 소지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인터넷뱅킹이 보편화되고 신용카드나 모바일앱을 이용한 결제가 일상화됨에 따라 실제로 현금과 은행계좌에 숫자로 존재하는 전자화폐 간의 구별이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그래서 하버드대학교 경제학 교수 케네스 로고프(Kenneth Rogoff)는 동전과 소액권만을 남겨두고 사실상 지폐를 폐지하자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근거로 그는 각종 부정부패와 범죄를 예방할 수 있기에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점을 들었다.

현재 중앙은행과 은행, 은행과 여타 금융기관 및 일반인 간에 이루어지는 자금 결제가 대부분 지폐를 이용하지 않고 컴퓨터상에서 계좌이체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현재 통용되는 화폐와 가상화폐는 기능적으로는 차이가 없다. 본질적인 차이는 화폐를 누가 발행하고 통제하는가에 있다. 여기서 잠깐 돈에 대한 간단한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을 해보자. 이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즐겨 사용했던 방법으로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예컨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발표에 의하면 일주일 후 지구 크기의 절반만한 운석이 지구와 충돌해 사실상 모든 생물이 멸종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엄청난 일들이 벌어질 것이지만 여기서는 오직 돈에 국한시켜 생각해보자.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돈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구입하려면 상대방이 돈을 받아주어야 한다. 그런데 일주일 후면 모든 것이 끝장인데 돈을 받을 사람이 있을 리 없다. 따라서 돈은 무대에서 사라지고 물물교환만 이루어질 것이다.

이제 조금 다른 상황을 생각해보자. 태양이 핵융합이 이루어지는 용광로라는 것은 상식이다. 수소 원자 두 개가 헬륨 원자 하나로 융합되는 과정에서 질량이 에너지로 바뀌면서 태양은 햇빛의 형태로 지구에 엄청난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그런데 물리학자들의 계산에 의하면 대략 10억 년 이후에는 태양의 수소가 고갈될 것이기에 더 이상 핵융합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태양은 적색거성으로 팽창해 지구를 삼킨 후 내부로부터 붕괴해 블랙홀이 될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현재 과학 지식으로는 지구가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현재 살아있는 누구도 이것을 염려해 돈을 버리거나 사용을 중단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어쨌든 돈은 가치를 유지할 것이라는 믿음이 깨지지 않는 한 돈은 여전히 우리가 소유하고자 하는 첫 번째 대상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돈은 지금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우리의 믿음, 즉 신뢰에 근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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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돈이라 불릴 수 있는 물건을 사용했다는 기록은 5000여 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오늘날 의미의 돈에 해당하는 최초의 주화, 즉 최초의 코인은 기원전 6세기경 지금의 터키에 있던 리디아(Lydia)라는 나라에서 금과 은의 합금으로 만들었던 일렉트럼(Electrum)이라는 주화이다. 영어의 코인(coin)에는 ‘발명한다(invent)’라는 의미도 있으니 주화를 코인이라 부르고 최초의 가상화폐를 비트코인(Bitcoin)이라 한 것은 단순히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와 같이 최초의 코인을 시작으로 금에 기반을 둔 화폐가 사용되기도 했고 정부가 지급을 보증하는 법정통화가 사용되면서 지금에 이르렀으니 화폐도 나름대로 진화 과정을 밟아온 셈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진화의 주체는 인간이므로 화폐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이 진화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진화 과정에서 변치 않는 중요한 속성은 돈에 대한 신뢰임이 입증되었다. 그리고 이 신뢰의 기반은 사회적 합의(social consensus)이다. 돈은 가치가 있다는 명시적·묵시적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기에 돈이 유통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돈은 사회적 기술의 일종인 셈이다. 사회적 합의가 무너져 사람들이 더 이상 돈을 신뢰하지 않게 되면 돈은 그야말로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1930년대 초반 독일에서 발생한 초인플레이션은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돈이 어떻게 휴지로 변하는지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와 같은 돈의 진화 과정에서 가장 최근 등장한 것이 바로 가상화폐이다. 가상화폐가 과연 화폐인가에 대해서는 현재 의견이 분분하며 당분간 계속 그럴 것이다. 따라서 명칭은 화폐지만 아직 화폐로 단정하기에는 시기상조다. 특히 최근 최초의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의 가격이 한국 거래소에서 2000만원을 상회하는 등 여러 가상화폐들의 가격이 폭등하는 현상은 가상화폐가 과연 화폐의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강한 의문을 들게 한다. 현재와 같은 가격등락이 반복된다면 가상화폐는 단순히 투기 대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화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안정된 가치”이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의 목표가 화폐가치의 안정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여기서 잠깐 가상화폐가 우리의 주목을 받게 된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경험한 직후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라는 익명의 개인(또는 집단)이 9쪽에 불과한 짧은 논문에서 비트코인이라 명명한 디지털 화폐를 이용해 인터넷 상에서 안전하게 거래하는 기술을 소개했다. 이 기술이 바로 요즘 주목을 받고 있는 블록체인 기술(Blockchain technology)이다. 인터넷 상에서 은행과 같은 중개기관, 즉 미들맨(middleman)없이 금융거래를 하려면 무엇보다도 이중지불(double spending)을 막을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 나쁜 마음을 먹고 같은 돈으로 두 번 지불하려는데 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없다면 금융거래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대형 금융기관들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인터넷 보안 시스템을 설치·운영해 안전한 거래를 보장함과 동시에 대가로 높은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토시는 이들을 다소 비하하는 의미에서 미들맨, 즉 중개인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는 이런 관행이 부조리하다고 판단했기에 이들을 배제한 금융거래를 제안하고자 했다.

우리는 대부분 거래 과정에는 반드시 중개기관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집을 사고팔 때 부동산 중개인이 개입하는 것처럼. 그래서 예금이나 대출, 외화 송금, 주식과 채권 거래, 그리고 보험 거래 등 실로 거의 모든 금융거래에는 거대한 중개기관이 개입하며 이들은 안전한 거래를 보장하는 대가로 적지 않은 중개수수료를 챙겨왔다. 사토시는 이런 중개기관들이 탐욕을 주체하지 못해 결국 금융위기를 초래한 데 대한 분노의 표시로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안전하고 효율적인 금융거래의 가능성을 입증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수단으로 자신이 고안한 비트코인이라는 가상화폐를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아직은 단언할 수 없으나 만일 훗날 가상화폐가 기존의 화폐를 상당 부분 대체하고 블록체인 기술이 이런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 기술로 계속 발전한다면 사토시 나카모토는 인류 역사에 엄청난 족적을 남긴 인물이 될 것이다. 어쩌면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로 추앙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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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일렉트럼에서 비트코인까지 돈의 진화의 역사를 일별(一瞥)하면서 강조하려는 점은 돈은 오직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경우에만 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신뢰는 가치의 안정에서 비롯된다. 이 점은 일렉트럼이든 가상화폐는 차이가 없다. 사토시는 분명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을 둔 비트코인의 거래가 안전하다는 점을 입증함으로써 중앙 권력이나 거대 은행이 개입하지 않고도 화폐를 공급하고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래서 필자로서는 최근 비트코인을 비롯해 수십 가지가 넘는 가상화폐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해 가격이 불안정하게 변동하는 상황으로 인해 가상화폐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변질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미국 시카고 옵션거래소(CBOE)와 선물거래소(CME)에 비트코인이 상장되었다는 사실은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거나 투기적 목적으로 거래하려는 사람들에게는 호재일지 모르겠으나 달러나 유로 등 기존 화폐에 대한 대안 화폐로서 가상화폐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싶은 진보적인 입장에서는 오히려 유감스럽다. 이것은 가상화폐를 파생상품의 일종으로 간주하고 헤지펀드와 같은 기관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를 형성하는 데 또 다른 수단을 제공하려는 조치일 뿐 가상화폐의 가치 안정에는 해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기우이겠지만 여기에는 가상화폐를 투기적 자산의 일종으로 강등시키려는 금융세력의 의도가 도사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가상화폐의 가격 변동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예컨대 대표적인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의 경우 2010년 처음 거래되기 시작했을 때 1비트코인의 가격은 1달러 미만이었다. 그러던 것이 7년 정도가 지난 지금 미국 시장에서 1비트코인이 1만4000달러 안팎에서 거래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가상화폐에 대한 투자 열기가 더욱 고조된 탓에 프리미엄이 형성되어 1비트코인이 2000만원 안팎에 거래되는 실정이다. 작년 초 100만원 수준에 비하면 1년 만에 대략 20배 폭등한 셈이다. 그 결과 사토시 나카모토의 설계에 의해 채굴 가능한 총 2100만 비트코인 가운데 1600만 남짓의 비트코인이 채굴되었음에도 시가총액이 2450억 달러를 상회하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대략 3000억 달러 정도이고 가장 큰 애플의 시가총액이 대략 9000억 달러 정도임을 감안할 때 아무런 실물 기반이 없는 비트코인이 이 정도 시가총액을 갖는다는 것은 비트코인이 화폐가 아니라 위험자산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라 할 수 있다.

가격이 극심하게 변동하는 것이 바로 위험 자산이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비트코인을 비롯한 모든 가상화폐는 위험 자산으로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우리가 경험한 가상화폐의 가격 변동은 역사상 가장 큰 버블이라 할 수 있는 1630년대의 튤립 매니아(Tulip Mania)나 최근의 가장 큰 버블이었던 1990년대 말 인터넷 버블을 능가한다. 이런 버블들은 모두 끔찍한 버블붕괴로 귀결되었고 이로 인한 후유증으로 많은 투자자들이 시장을 외면했던 아픈 경험이 있다. 만일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의 가격이 폭락한다면 사람들은 오랫동안 가상화폐를 외면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중앙집권적인 기관에 의존하지 않고 민간 부문의 분산된 힘에 바탕을 둔 자율적인 화폐와 이를 바탕으로 하는 민주적인 금융 시스템을 추구했던 이상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이것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 블록체인을 제안했을 때의 의도와는 정반대 시나리오이다. 현재 가상화폐에 대한 논의가 이런 깊은 의미를 외면한 채 오로지 거품 여부에 대한 논쟁으로 그치고 있는 점은 지극히 유감스럽다.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상화폐가 왜 등장했는지 그리고 이것이 화폐 진화의 자연스러운 결과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새로운 화폐와 이를 바탕으로 하는 새롭고 민주적인 금융 시스템을 시도하는 것은 아마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모험이 될 것이다. 

 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 이사

  미시경제학 등 다수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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