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문화로 만나는 세상]

[오피니언타임스=이대현] 환갑이다. 누구는 ‘벌써’라고 하고, 누구는 ‘이제’라고 한다. 여느 해나 다를 바 없으면서도 공연한 기대와 희망을 불어넣으려 걸핏하면 붙이는 수사가 올해에도 어김없이 붙었다. 누렇다고 ‘황금 개띠’란다. 개에게 무슨 황금을. 누렁이가 더 어울리고 친숙하고 자연스럽다.

참 많기도 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중심인 58년 개띠들은 ‘똥개’ 같았다. 동네 어디를 가도 득실거렸고, 우리가 갈 때면 학교와 군대와 직장도 미어터졌다. 그 세월을 지나 이제 누렁인 58년 개띠들도 세상에서 서서히 물러나고 있다. 정년 60세 연장 덕을 보면서 아직까지 버티고 있다면 억수로 운이 좋은 것 아닌가. 대부분은 아닌 은퇴를 하고 새로운 길 앞에 서있거나, 주저 않아 앞으로 살아갈 날을 헤아리고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버릇처럼 나오는 “왕년에 우리는…”은 그만두자. 많아서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인 지난 시간들은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자. 검정고무신의 가난으로 시작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온갖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끼인 세대’로 버겁게 살아온 우리들이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인간은 모두 자신이 겪은, 겪고 있는 세상이 가장 힘들다고 느끼는 법이니까.

오래 전 은희경이 소설 <마이너리그>로, 김태영 감독이 다큐멘터리 <58년 개띠>로 속속들이 이야기도 했으니, 환갑을 맞았다고 새삼스럽게 꺼낼 이유가 없다. 속절없다. 영화 <국제시장>의 덕수처럼 우리도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라고 위안을 삼을 것인가.

그보다는 인생2막의 출발점에서 ‘남아있는 나날’들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황금개띠’를 맞아 가슴 설레서도, 달콤하고 편안해서도 아니다. 어쩌면 그것이 살아온 날들보다 더 무겁고, 더 길게만 느껴질지도 모르니까.

©픽사베이

‘남아있는 나날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초고령화사회’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왠지 58년 개띠와는 거리가 있는 듯하다. 수명이라는 것이 타고 나고, 어린시절 생활이 영향을 미치는데 우리 대부분은 배를 곯았으니까. 젊은 시절에도 몸에는 무신경하게 살았다. 물론 나이 들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건강을 챙기고는 있지만, 글쎄 잘 해야 30년?

그 30년조차 아득하고, 때론 끔찍한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그 세월을 건강하게 보낸다 해도 그렇고, 그 중에 10년 가까이는 가만히 앉아있거나, 병원을 들락거리거나, 아예 병원에서 산다고 해도 그렇고. 요즘 주변의 어른들의 ‘건강 나이’를 보면 아무리 의학이 발달하고, 살기가 좋아져 조금 더 길어진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설령 죽는 날까지 건강하게 걱정 없이 놀 수 있을 만큼 가진 경제적,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한들 새털같이 많은 날들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등산, 독서, 여행도 1, 2년이고 한 두 번이지. 비슷한 형편의 친구라도 있다면 그 시간이 조금은 연장되겠지. 그러다 어느 날 문득 혼자가 된 자신을 발견하겠지.

그나마 그런 친구들은 행복하다. 인생2막이 시작됐지만 자식들은 결혼은 고사하고 학교도 못 마쳤거나, 졸업했지만 우리로 인해 역시 베이비붐 세대가 되어 취직을 못해 여전히 가장의 짐을 벗지 못하고 있다면. 김훈의 소설의 <개>처럼 ‘굳은살이 박인 발바닥’으로 무슨 밥이든 구하러 하루 종일 돌아다녀야 한다. 아니면 공무원, 교사인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쥐꼬리만 한 국민연금이나 땡겨 받고, 하나뿐인 자그마한 아파트 처분해서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기로 마음먹든지.

©픽사베이

황금개가 아니고 누렁이일지라도

이런 친구들에게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남아있는 나날>의 ‘때가 되면 쉬어야 한다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는 저녁’이라는 말은 조롱이다. 허풍이고, 지레 겁을 먹은 것이 아니다. “그래도 1인당 3만 달러의 대한민국이고, 누구나 경기 좋은 시절을 거쳐 왔는데”라면서 함부로 단정하지마라. 그 수가 많으면 그만큼 몫도 적은 만큼 당연히 가난한 ‘58년 개띠들’이 많다. 더구나 중년에 양극화의 폭탄을 맞았으니.

요즘 58년 개띠들을 만나면 그 모습이 다양하다. 아직도 젊음이 팔팔 살아있는 듯한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정말 환갑이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늙어버린 친구들도 있다. 나만의 느낌일까. 당연히 늙은 친구들의 숫자가 많다. 그들의 얼굴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고스란히 스며있다.

그들에게 58년이 황금개띠 해가 아니었듯이, 2108년 역시 ‘황금개띠’해가 아닐 것이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가난한 발바닥을 가진 ‘누렁이’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친구들이 보는 나의 얼굴은 어느 쪽이고, 나는 어떤 개일까.

58년 개띠, 친구들아. 누렁이라도 어쩔 수 없다. 이미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으니. 그래도 희망은 가져야겠지. 남아있는 길고 긴 날들을 생각하면. 

 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 콘텐츠랩 씨큐브 대표

 전 한국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저서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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