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오피니언타임스=임종건] 정부 여당과 야당 간에 협박 수준의 공방으로 치달았던 UAE사태가 ‘국익차원’에서 대결을 자제하기로 봉합됐다. 사건의 중심에 있던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12일 국회로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를 찾아가 1시간 반 동안 대화를 나눈 뒤, 두 사람은 기자들에게 ‘국익 우선과 국정운영 협조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외교와 경제, 군사 관계가 뒤얽힌 이 사건은 어차피 그런 식으로 처리될 운명이었다. 작년 12월 임 실장의 느닷없는 UAE방문으로 촉발된 이 사건이 정쟁의 대상이 된 것은 임 실장의 방문 목적에 대한 설명이 명확치 않았던 데서 비롯됐다. UAE 정부와 관계복원을 위한 방문이었다면 관계가 틀어진 이유의 대강이라도 먼저 밝히는 것이 순서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청와대에서 칼둔 UAE 특사를 만나고 있다. ©청와대

청와대가 의혹을 자초해 놓고도 외교문제이니 이유를 묻지 말라는 꼴이었다. 현 정부가 이명박 정부에서 수주한 UAE 원전공사의 리베이트 비리를 캐려다 UAE 왕실의 반발을 산 게 아니냐며 야당과 일부 언론이 제기한 의혹에는 개연성이 상당했다. 현 정부가 적폐청산을 구실로 이전 정부들의 여러 비리혐의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는 마당이라 더욱 그랬다.

이 전 대통령은 “내가 말을 하지 않는 게 국가에 도움이 된다”고 원인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고, 청와대 측은 ‘사실이 밝혀지면 자유한국당이 감당할 수 있겠냐’고 이전 정부에서 엄청난 비리라도 저지른 양 공방을 벌였다.

해외공사의 수주는 기업과 국가의 역량을 총동원해야 하는 전쟁과 같은 것이다. 2009년 이명박 정부에서 수주에 성공한 UAE의 바라카 원전 공사는 20조원이 넘는 규모였고, 박근혜 정부들어 54조원 규모의 용역사업 수주가 추가돼 총 74조원 규모에 이르는 대형 공사다. 웬만한 조건으로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우리가 따내기 쉽지 않은 공사다.

당시 수주전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의 최고위 세일즈맨이었다. 프랑스 기업으로 거의 넘어갔던 이 공사를 한국전력이 따낼 수 있었던 것은 이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 시절부터 중동국가들과 사업을 하면서 쌓은 인맥과 노하우가 주효했을 것이다. 이 수주를 확고히 하기 위해 그는 국무총리와 유관 장관들을 잇달아 UAE로 보내 신속하게 후속조치까지 마무리했다.

청와대가 마지못해 밝힌 한·UAE 관계악화의 원인은 수주당시 양국이 맺은 군사협정의 이행을 둘러싼 이견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원전시설을 보호할 한국군대의 파견은 UAE가 발주 당시 요구한 여러 조건 중의 하나였고, 수주 후 정부는 국회 동의를 얻어 아크부대를 파견했다.

문제는 유사시 UAE에 추가파병을 해야 할 경우 국회의 동의가 필요함에도 이명박 정부가 이를 무시하고 추가파병을 협정에 넣었는데, 문재인 정부가 이 부분을 문제 삼아 협정수정을 요구하자 UAE 정부가 반발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이달 초 한국을 방문한 UAE의 실력자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행정청장이 도착하자마자 찾아간 사람이 정세균 국회의장이었다는 점에서 군대파병에 관한 국회동의 문제가 두 나라 간의 주요 현안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문제와 관련해 가장 사실관계에 정통한 사람 중의 하나가 당시 김태영 국방부장관이다. 그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수주 성사를 위해 위헌의 소지를 알면서도 협정문에 파병조항을 넣었다고 말했다. UAE에 추가 파병사태가 발생할 여지가 적고, 발생하더라도 그때 가서 국회의 동의를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는 “협정체결에 책임이 있다면 지겠다”면서 자신의 판단은 지금도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군사협정 문제는 이명박 정부의 수주를 위한 총력전으로 이해해도 충분한 것을 현 정부가 괜한 긁어부스럼 거리로 삼았다고 볼 수도 있다.

한국은 월남전에 전투부대를 파견한 나라다. 인명의 희생도 컸으나 전투능력, 작전능력의 향상과 미국으로부터의 파병에 따른 재정적 보상 등 국익차원에서 얻은 것도 많았다. UAE 파병은 월남전 파병에 비할 수 없는 조건의 파병이다.

이번 사건이 외교적으로 봉합됨으로써 사건의 확대는 막았지만 군사협정 문제 외에 수주비리 의혹,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의 관련 여부에 대한 의혹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 지금 사우디아라비아에선 왕실의 부패척결을 위해 왕세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이 진행 중이다. 한국에서 UAE 원전수주와 관련해 비리의혹이 있다는 풍문만으로도 UAE 왕실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는 불문가지다.

UAE와의 관계가 국내에서의 여야 정쟁으로 파국으로 치달았을 경우 한국 외교의 대외신뢰에 치명상은 물론이고 한국기업의 중동진출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됐을 것이다. 한국과의 단교설도 충분히 나올 법한 상황이었다고 하겠다.

그 점에서 정부여당과 자유한국당이 사건 봉합에 합의한 것은 다행이다. 특히 청와대가 ‘국가 간 신뢰와 국익을 위해 정부 간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과 관련, 적폐청산을 구실삼은 이전 정부에 대한 비리의혹 제기에 신중을 기할 것인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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