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따뜻한 생각]

[오피니언타임스=김연수]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반 아이들 모두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한 여자가 노출이 있는 의상을 입고 밤길을 걷다가 괴한에게 변을 당했다. 이때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가. 노출 있는 옷을 입고 밤에 돌아다닌 여성을 비난해야 하는가.”

그때 난 가장 먼저 손을 들고 답했다. “여자는 입고 싶은 옷을 입은 것뿐이고 그런 행동을 한 괴한이 옳지 못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좋은 대답이었다며 나를 칭찬했다.

그랬던 내가 요즘은 짧은 치마나 바지 입는 것을 삼가고 있다. 2년째 하고 있는 호프집 알바 영향이 컸다. 한 여름에 혼자 10개 남짓한 테이블을 서빙하다 보면 에어컨 바람을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로 더웠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짧은 바지를 입었고 노골적인 시선을 받는 일이 빈번했다.

덕분에 올해는 한 번도 짧은 하의를 입은 적이 없다. 뿐만 아니라 쇄골을 다 가리는 카라 티를 입는 일에 익숙해졌다.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건사고는 잊을만하면 터지곤 했다. 주문벨을 누르고 휴대폰 번호를 요구하는 손님, 술에 취해 한 잔 따라보라는 질 낮은 농담을 하는 손님, 위아래를 훑으며 내게 몸매가 좋다는 말을 수없이 하는 손님 등 무례함과 불쾌함을 느끼는 일이 계속됐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상황에 무뎌져갔다.

©픽사베이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을 오싹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 밤길이 무서워 친구와 통화하며 집에 가고 있을 때 벌어진 일이다. 전화에 집중하던 순간 누군가 뒤에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가게에 있던 손님이 내 코앞까지 뛰어와 있었다. 그는 다짜고짜 휴대폰을 내밀며 번호를 달라고 말했다. 죄송하다는 내 말에 돌아온 말은 당혹스러웠다.

“아, 담배 피다가 뛰어 왔는데 그냥 번호주면 안돼?”

왜 내가 번호를 주는 게 당연시되어야 하지라는 생각보다도 다소 신경질적인 사내의 말투가 두려웠다. 사내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며 겨우 그 상황을 잘 모면했지만 이 일화를 주위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반응은 굉장히 상반된다.

“네가 매력적이라 그래, 그 사람 눈에 예뻐 보였던 게 아닐까?”
첫 번째 반응은 이렇다. 어린 시절 남자아이들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장난을 치면 주위 어른이 비슷한 말을 했던 게 생각났다.
“그 애가 널 좋아해서 그래.”
모든 유년기의 호감표시는 때리고 꼬집고 머리를 잡아당기는 일이었을까. 내가 아닌 다른 아이들도 그랬을 지 문득 궁금해졌다. 반대로 나보다 더 화를 낸 친구들도 있었다. 그녀들은 이름 모를 사내를 대신 욕해주었다.

나만 이런 걸까 싶던 순간에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 나와 비슷한 경험들이 너무 많아 계속해서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서 헤맸다. 소설을 읽는 내내 수없이 공감했고 정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소설 속 김지영은 학원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같은 수업을 듣는 남학생이 자신을 뒤따라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남학생은 늦은 밤 겁을 먹은 그녀에게 실실 웃어줄 때는 언제고 왜 기분 나쁘게 도망가냐는 식으로 말한다. 호의가 호감이 될 수는 없다. 내 자본주의 미소도 호감으로 비춰져서 그랬던 걸까. 그렇게 교보문고 구석자리에 앉아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단숨에 책을 다 읽었다. 책을 덮은 후에는 분노와 씁쓸함, 공허함이 남았다.

몇 개월 후 기말고사 시험에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겪었던 일들을 담아 소설을 써서 제출했다. 평소처럼 소설을 합평하는 시간이 되었고 같은 조 남자 동기가 내게 말했다.
“여성인물 위주로 전개되고 있어서 그런지 하나도 이해가 안 가는 것 같아. 공감이 안 된다고 해야 하나.”

한 번도 비슷한 일을 겪어본 적이 없으니 어쩌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의 불안감을 이해받기 어려운 일이라는 뜻으로 들려서 서글펐다. 그리고 무서웠다. 내가 그들과 다르게 생각한다는 이유로 나를 미워하거나 비난할까봐 겁이 났다. 팩트를 바탕으로 쓴 소설일 뿐인데 내가 남자를 혐오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사람도 적지 않았다. 서로가 다른 만큼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요즘 여성혐오, 남성혐오, 페미니스트, 한남, 메갈 등 이성(異性)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용어들이 많이 등장한다. 익명게시판에서는 살벌하게 말싸움을 하는 일이 빈번하다. 그럴 때마다 답답한 마음에 눈을 감는다. 편 가르고 싸우는 게 아니라 침착하게 입장 바꿔 생각해봤으면 하고 바란다. 손가락질을 하고 비속어를 쓰기보다 잠시라도 좋으니 경청이 꼭 필요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완벽한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생각의 거리를 좁힐 수 있으니 말이다.

김연수

제 그림자의 키가 작았던 날들을 기억하려 글을 씁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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