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태의 우리 문화재 이해하기] 향교와 서원의 차이를 중심으로

[오피니언타임스=김희태]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역사는 “외우기가 어려워 재미가 없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학창시절 역사를 배울 때 그저 시험에 대비해 암기 과목으로 접근했기에 진정한 재미를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역사의 본질적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암기만 했기에 올바른 역사 인식이 자리 잡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최근 공공기관에서 활용 범위를 넓혀 관심을 받고 있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한국사에 대한 높은 관심을 이끌어 내긴 했지만 아직도 암기식 시험이라는 한계 때문에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함께 보여 주고 있다.

통진향교의 대성전(大成殿), 좌우에 동무와 서무가 자리하고 있다. ©김희태

“본질적인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예를 들어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향교(鄕校)와 서원(書院)의 차이를 설명할 때, 많은 사람들은 ‘공립’과 ‘사립’정도로 구분하거나 이마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향교와 서원의 목적은 제향과 강학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두 기능을 위한 건물이 세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지역의 규모에 따라 일부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개 제향 공간에는 대성전(大成殿)을 중심으로 동무와 서무가 설치되고, 강학 공간에는 명륜당(明倫堂)을 중심으로 동재와 서재 등이 배치된다. 이러한 건물의 배치는 서원 역시 동일한데, 각 건물의 이름만 달리할 뿐 배치의 유사성은 동일하다.

임고서원, 충신의 대명사인 포은 정몽주(1337~1392)를 배향한 서원이다. ©김희태

향교와 서원의 차이점을 찾는 것 역시 위의 범주를 통해 가능한데, 향교의 경우 제향 공간에 중국의 공자를 위시하여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셨다. 그리고 각 고을마다 수령이 주재하는 제사 시설의 하나로 향교를 의무적으로 설치했다. 반면 서원은 한국의 성현이나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는 점과 설치 역시 지역의 구분이 없이 ‘자유롭다’는 차이점을 보인다.

따라서 향교는 ‘석전대제(釋奠大祭)’처럼 유교의 제향을 기리는 반면, 서원의 경우 자신이 속한 계파 혹은 붕당의 유학자를 기리게 된다. 이는 일종의 줄 세우기로 작용해 훗날 서원의 폐해와 연결이 된다. 한편 강학 공간의 범주에서 살펴보면 각 고을마다 하나씩 설치된 향교가 공립학교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비해 서원은 사립학교의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향교 하나로는 교육의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기에 1542년 최초로 소수서원이 설립된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서원이 교육적인 측면에서 남긴 긍정적인 부분은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향교와 서원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외우는 것보다 본질적인 의미를 이해할 때 명확한 구분이 가능해진다.

병산서원의 만대루, 병산서원은 서애 류성룡(1542~1607)을 배향한 서원이다. ©김희태

이처럼 향교와 서원이라는 문화재를 바라보면서, 단순히 외형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은 암기를 통해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과정이다. 역사는 결코 암기하는 과목이 아니다. 이를 뛰어넘어 우리 사회의 정치, 사회, 경제 등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할 때 역사는 죽어있는 학문이 아닌, 살아서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김희태

 화성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이야기가 있는 역사여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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