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미의 집에서 거리에서]

[오피니언타임스=신세미] TV 리모컨을 누르다 보면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자주 만나게 된다. 종편채널 MBN에서 수요일 밤 방영하는 본방 외에, 낮이고 밤이고 어느 한 채널에서 그 프로그램을 재방송 중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찾아보는 시청자들이 많다는 이야기일 게다.

나 역시 먹방이든 오지 탐험이든 연예인에 초점이 맞춰진 다른 TV오락프로그램과 다르게, 이 프로그램은 비연예인의 식탁·일상과 더불어 한 사람의 삶을 간접 체험할 수 있게 해줘 흥미롭게 보고 있다.(언제부터인가 그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내게 가족들은 “또 그 프로그램이냐”며 한 소리하고, “왜?”라고 나의 채널 취향을 의아해하는 친구도 있지만).

나는 자연인이다 스틸컷 ©MBN

2012년 8월 첫 방송이후 5년 반 여 방송 중인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제목대로 ‘자연인’. 깊은 산골이나 진입이 어려운 섬에서 전기, 수도 시설도 없이 자연 속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다. 민가와 동떨어진 외딴 집에서 나홀로 5~20년여 살고 있는 주인공은 대부분 50~70대 남성들이다. 드물게 40, 80대도 있고, 아주 드물게 여성 혹은 모자-부부 자연인도 있다.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살며 의식주를 자급자족하는 그들의 일상은 현지를 찾아간 개그맨(윤택 이승윤)과의 2박 3일 일정을 통해 공개된다. 방송 팀이 사전 섭외한 자연인은 개그맨과의 첫 만남에선 다소 어색하고 까칠하지만 촬영하며 함께 밥 먹고 산에 오르고 목욕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느새 서로 형 아우, 아버지 아들이라 부르며 카메라 앞에 자신의 삶과 생활을 드러낸다.

자연인의 일상도 어제 오늘 내일이 그닥 다르지 않게, 나름의 패턴이 엇비슷하게 반복된다. 새벽에 일어나 가축을 돌보고 텃밭을 가꾸며 운동을 하고, 환할 때는 산에 올라 더덕, 칡, 엄나무부터 산양삼, 부처손, 겨우살이 등을 채취한다.

누구는 크고 작은 돌로 뽀족탑을 쌓고, 훗날 집에서 같이 가족과 살고 싶은 바램을 담아 집안팎을 다듬고 꽃밭을 가꾸며 화장실을 손본다. 땔감 장만에 장작 패기, 허물어진 지붕과 벽, 부뚜막 리모델링, 나만의 연못이나 정자 만들기 등 새벽부터 한밤까지 땀 흘리는 일의 연속이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자연 속 삶에선 일을 누가 대신해줄 수 없고, 내 의지대로 내가 하는 만큼 결실이 있어 행복하다”며 고된 육체 노동도 즐거운 놀이처럼 척척 해낸다. 그들에게 한 순간 도인과도 같은 여유와 자존감이 전해진다. 

사계절 자연 풍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자연인의 삶 스토리는 도시생활 인간관계에 찌든 사람들에게 대리 체험이나 심리적 공감대를 형성하며 폭넓은 호응을 얻는 것 같다.

자연인들이 텃밭, 뒷산, 혹은 서늘한 저장고에서 챙겨온 식재료로 뚝딱 차려내는 세 끼 메뉴도 이 프로그램의 묘미 중 하나다. 한 케이블 채널에선 자연인 메뉴의 레시피를 소개한다.

밭에서 기른 감자, 호박, 고추와 직접 담근 된장, 고추장, 산약초 효소부터 토종꿀을 거두는 과정도 볼거리다. 특히 계곡, 저수지에서 낚은 메기 같은 민물고기며 가끔 방문하는 가족들이 챙겨준 돼지고기, 바다 생선을 활용한 음식은 어린 시절 시골집 식탁처럼 추억의 토속적인 미각을 자극한다. 그중에는 화면상으로 식욕이 동하지 않은 음식도 있지만, 더덕 핫도그, 도라지 깍두기, 홍시 비빔국수처럼 산중 식재료를 버무린 소박한 음식은 개인적으론 연예인 집의 냉장고 속 재료를 활용한 유명 쉐프의 요리보다 더 먹음직스럽다.

매회 산속 일상이 엇비슷하게 반복되지만 시청자로선 지루할 겨를이 없다. 등장인물에 따라 평범하지 않은 지난 삶의 스토리가 전망 좋은 나무 아래서 또 한밤중 한 잔의 약초차와 더불어 펼쳐지기 때문이다.

토담집, 비닐하우스, 컨테이너부터 나무-황토로 제대로 지은 집까지 자연인의 주거 형태와 산중 생활의 스타일이 제각각이듯, 자연 속 삶을 택한 사연도 그야말로 ‘백인백색’이다.

건강 상의 이유, 또는 사업 실패로 돈과 사람을 잃고 인간 관계나 사회 생활에 절망한 나머지 속세를 등지고 피폐해진 심신을 자연 속에서 치유한 사연들이 매회 한 편의 단편영화처럼 펼쳐진다. 물론 고향에서 어린 시절처럼 친환경적 야생의 생활, 안빈낙도의 삶을 택해 은퇴후 산골 마을을 찾아간 사례도 등장한다.

‘자연인’이라면 세상과 담쌓고 사는 기인 혹은 괴짜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TV 프로그램속 자연인은 “내일이 오늘보다 좋으리라는 기대가 있다”거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 지를 새삼 깨달고 있다”며 건강한 삶의 자세를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자연인의 삶에서 특히 눈길이 갔던 것은 검박하게 의식주 생활을 영위하면서 노래와 음악을 즐기고 목공예며 집꾸미기 등으로 창의적인 재능과 미감을 발휘하는 점이다. 한 자연인은 동요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며~’, 양희은 노래를 불렀고, 누군가는 어릴 때 가출한 누나가 즐겨불렀던 ‘그리움은 가슴마다’를 독학한 색소폰으로 연주했다. 어떤 이는 한 방에 기타와 드럼을 들였으며, 누군가는 발전기를 마련해 외로울 때면 가라오케를 작동해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프로그램 말미에 진행을 맡은 개그맨과 헤어질 때면 자연인들은 한결같이 아쉬운 이별의 감정을 드러낸다. 사람 때문에 상처 입고 사람과 더불어 행복한, 어쩔 수 없는 삶의 빛과 그림자를 새삼 느끼게 된다.

신세미

전 문화일보 문화부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서 기자로 35년여 미술 공연 여성 생활 등 문화 분야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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