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화의 참말 전송]

돌아오는 길은 적막했다. 추웠다. 자꾸 사방이 돌아봐졌다.

떠난 사람의 사진과 해후하고 돌아오는 길, 사진... 이라는 단어 앞에서 눈보다 먼저 입안에 눈물이 고였다.

©픽사베이

사진 속의 사람은 웃고 있었다. 보지 못하고 지나온 세월이 고스란히 앉아 있는 늙고 초췌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사진 속의 얼굴은 분명 ‘산 사람’의 얼굴이었다. 핏기 없이 굳어 오히려 ‘죽은 사람’ 같은 건 그 앞에 서 있는 살아 있는 우리들이었다.

그는 사진으로 우리들을 맞았다. 그의 마중은 조용했다. 당신이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던 제자들이 일렬로 서 있는데도 그 흔한 마중 인사 한 마디도 없었다. 잦은 기침으로 늘 하얗게 메말라 있던 입술 가로 번지고 있는 미소만 정지된 그의 시간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한 사람이 살다 가며 세상 속 인연들의 마지막 마중은 ‘사진’으로 하는구나... 그래서 어떤 한 사람을 마지막으로 배웅하는 일 역시 그의 ‘사진’을 보며 하게 되는구나... 갑자기 ‘사진’이라는 단어가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외로운 단어로 들어와 박혔다.

우리는 그의 사진 앞에서 하얀 국화를 놓고 향을 피웠으며 절을 했다. 누군가는 흐느꼈고 누군가는 한숨을 쉬었으며 누군가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가만 자신의 가슴을 싸안았다. 좋은 데 가시라는 누군가의 배웅 인사도 들렸던 것 같다. 사진을 보고, 그가 세상에 없음을 증명하고 선포하는 증빙서류 같은, 사진을 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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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었지만 신촌역 앞 거리는 여전히 시끄러웠고 환했으며 활기로 짱짱했다. 싱싱하게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체온이 배경으로 깔린 거리에서 일행 중 누군가가 욕인 듯 푸념인 듯 소리쳤다.

“이제 곧 우리 차례겠지? 칼라사진에서 흑백사진으로 갔다가 하나씩 뻥뻥 그 자리가 비어가는 것처럼 말이야. 그렇게 우리도 사진으로 사람들을 맞는 날이 멀지 않았겠지?”

장례식장을 나와 2차 갈 장소를 찾느라 분주했던 모두의 발걸음이 순간 숙달된 제식훈련을 하는 것처럼 일시에 멈췄다. 이미 나이 쉰은 훌쩍 넘었고 예순이 넘은 이들도 여럿인 일행들이 거리에 선 채로 서로의 얼굴을 훑었다. 누군가가 뽀얀 입김을 뿜으며 주머니에서 손을 빼 허공으로 치켜들었다.

“시인들이라서 그런가? 팔십을 못 넘기네. 몇 달 전에 가신 J시인은 칠십 여덟에, 오늘 가신 L시인은 칠십 일곱에... 또 바로 얼마 전에 가신 J시인은 칠십도 못 돼 예순여덟에... 보자, 그럼 난 몇 년 남은 거야? 다들 계산해 봐. 우린 L선생님 제자들이니까 칠십 일곱을 기준으로 치고.”

각자의 주머니에서 조의금 내는 봉투처럼 하얀 손이 하나 둘 밖으로 나왔다.

“난 십 년.”
“난 십사 년.”
“난 십육 년.”
“난 이십삼 년.”

스무 명이 넘는 인원이 들어갈 장소를 찾느라 거리와 골목을 헤매면서도 사람들의 손가락 세기는 계속되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꼼지락거리며 손가락을 접어 봤다. 그리고 속으로 말했다. ‘난 십구 년...’! 머리와 가슴이 하얗게 탈색되는 것처럼 눈앞이 뿌연 물방울로 젖고 있었다. 그리고 어깨며 등이 시렸다. 몸이 자꾸 공처럼 말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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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찾아 들어간 호프집. 이번엔 누군가가 영정사진 이야기를 했다.

“오늘 생각한 건데 그거 미리 찍어둬야겠어. 더 늙어 고운 때 가시기 전에.”
“영정사진이 고와서 뭣에 쓰려고?”
“마지막으로 나를 찾아온 사람들 맞이할 사진인데 곱고 잘 나온 사진이면 좋지. 안 그래?”

먹은 거라곤 육개장 몇 스푼과 맥주 한 잔뿐인데도 위장은 부푼 풍선처럼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무슨 말인가 한두 마디쯤은 하고 싶고 또 해야 할 것 같은데 그 한두 마디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내 어머니의 영정사진이 떠올랐다. 사진은 사랑하는 사람이 찍어야 잘 나오는 법이라며 굳이 딸인 나에게 찍어달라고 하신 어머니의 영정사진. 뇌출혈로 쓰러지신 후 병중이라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는 눈물이 터지는데, 환하고 아름답게 웃고 계셨던 어머니. 방금 한 누군가의 말처럼 고운 때가 가시지 않을 때 찍어서일까? 문상 온 사람들마다 오히려 위안을 받고 간다는 말을 할 만큼 어머니의 미소와 눈빛은 따뜻하고 평화로웠다.

어머니 돌아가신지 햇수로 벌써 삼 년, 어머니의 사진은 여전히 내 집 거실 장식장 위에 놓여 있다. 나는 지금도 하루에 몇 번 씩이나 어머니를 만난다. 인사를 하고 사랑을 고백하며 하소연을 하며 울기도 한다. 그리고 위안을 얻고 허물어져가는 마음도 추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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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말을 이었다.
“마지막 모습이잖아? 마지막으로 기억될 얼굴이잖아? 그렇게 사진으로 남는 거잖아? 마지막 독사진! 함께 찍을 수 없고 꼭 혼자만 찍어야 하는 사진, 그게 영정사진이잖아?”

사진...
마지막 독사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마중하는 내 모습,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떠나보낼 때 그들이 보는 마지막 내 모습.

그날, 우리는 그 흔한 단체 셀카 한 장 찍지 않았다. 대신 한 사람 한 사람 정을 담아 악수를 했고 오랜만에 보는 서로의 얼굴을 정성을 다해 바라보았다.

좌장 격인 K시인의 제안이 나온 건 그 다음이었다.
“우리 일 년 뒤 선생님의 초제 때 우리 모두의 이름으로 시집을 펴 내 선생님 영전에 바칩시다. 그때는 사진이 아니고 풀 송송 난 산소에서 우리를 마중하시겠지요?”
그날 처음으로 ‘건배’의 합창이 터져 나왔다.

돌아오는 길은 그래도 적막했다. 추웠다. 외로웠다.

피가 도는 체온으로 손을 잡을 수 있을 때, 어서 오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반갑다고 보고 싶었다고 힘껏 안을 수 있을 때, 다음을 기약하며 두 팔 힘차게 그가 향하는 길로 휘저을 수 있을 때, 한번이라도 더 마중하고 배웅할 일이다.

©픽사베이

그래야 될 나이가 됐다. [오피니언타임스=서석화]

서석화

시인, 소설가

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한국 가톨릭 문인협회 회원

저서- 시집 <사랑을 위한 아침><종이 슬리퍼> / 산문집 <죄가 아닌 사랑><아름다운 나의 어머니>< 당신이 있던 시간> /  장편소설 <하늘 우체국>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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