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용현의 상호의존 시리즈1

우리는 신문/뉴스를 열심히 봅니다. 그러나 여기에 보도되는 쫀쫀하고 근시안적인 ‘사건’들이 나라/개인의 운명을 바꾼다고 생각하십니까? 몇 달 후에 돌이켜 보면 아무 것도 아니지요? 나라/개인의 운명을 바꾸는 것은 역사의 저류(底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역사의 저류에 관해서는 관심도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역사를 바꾸는 최대의 저류는 무엇일까요? 필자는 “투쟁에서 상호의존으로” 가는 개벽(開闢)이 그러한 저류라고 생각합니다. 이 개벽에 선도적으로 적응한다면, 한국은 2000년대의 로마가 될 수 있습니다. 세계를 앞서 가는 “상호의존 선도국가” 한국의 청사진을 봅시다. 이는 꿈만은 아닙니다.

1. 역사의 ‘저류’를 읽자
2. 투쟁의 시대가 가고, 상호의존의 시대가 온다
3. 상호의존은 신의 해법(解法)이다
4. 전쟁은 남는 장사가 아니다
5. 투쟁이 역사의 필연이라고?
6. 상호의존은 이미 우리에게 와 있다
7. 신(神)의 선물(상호의존)에 배달사고가 났다
8. 삼국지(三國志)를 보지 말자
9. 이제 한국의 비교우위는 상호의존이다

이 시리즈의 기고자 서용현 교수는 댓글 및 논쟁을 환영합니다. 이 메일 주소는 sirjose@daum.net입니다.

[오피니언타임스=서용현, Jose] 파도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해변에 와서 부서지는 작은 파도다. 둘째는 물밑 깊은 곳으로 조용히 다가오는 저류(低流: undercurrent)다. 예컨대 쯔나미가 저류다. 그런데 우리는 애들처럼 저류를 보지 않고 작은 파도만 본다. 신문/TV에서 대개 작은 파도만 보도하기 때문이다. 금방 잊혀질 가십, 스캔들 및 센세이션들만 보도하기 때문이다.

신문/TV에서 보도되는 것들 중에 저류는 거의 없다. 역사의 방향을 보여주는 것도 없다. 정치인들의 정쟁(政爭) 등 지엽말단적인 기사/뉴스에 매달리다 보면 우린 <생각>을 안 한다. 그러면 우리는 바보가 된다. ‘가십 도사’ 내지 ‘역사 바보’가 된다. 그러면서 역사에 대한 통찰(通察)이 없어진다. 우리가 학교에서 역사 공부를 하면서 연도, 인명(人名) 등의 암기에 치중하면 역사에 대한 통찰과 식견이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더구나 우리가 언론에서 습득하는 지식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 이런 지식은 ‘수다’의 원료는 되더라도 경쟁력 향상에는 도움이 안 된다. 너는 개성, 의견이 없는 사람이 된다.

신문/TV에서 보도되는 것들 중에 저류는 거의 없다. 상호의존은 역사의 대세를 바꾸고 있다. ©픽사베이

저류에 집중하면 세상만사가 쫀쫀하게 보인다. 대통령 선거도 긴 역사에서 보면 작은 파도에 불과하다. 대통령의 교체나 조선의 비슷비슷한 왕들의 교체가 역사를 바꾼 적이 있었던가? 체 게바라가 말했듯이 “잔혹한 지도자가 교체되면 새로운 잔혹한 지도자를 맞을 뿐”이다. 대통령과 왕의 교체가 무의미하다면 국회정치는 더더욱 무의미하다. 누가 당(黨)대표 되는 게 뭐가 중요하냐? 이런 쪼잔한 파도들... 우리 무시하자.

저류를 못 보는 이유는 우리가 지식, 타성, 고정관념, 낡은 패러다임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다. 왜 옛날에는 성인(聖人)/영웅이 많이 나오다가 최근에는 멸종되고 있는가? 요즘은 지식도 많고 교육도 많이 받는데? 우리가 지식에 너무 치중하기 때문이다. 지식에 매여 발상의 전환을 못하기 때문이다. 과학적 방법론에 묶여서 인간정신이 마음껏 발휘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나 석가가 지식이 많았던가? 과학적 방법론은 서구인들의 강점이자 맹점이다. 과학적 방법론에 매여서는 서구를 앞지를 수 없다. 동양의 방식으로 가자. 그래서 저류를 보자.

저류에는 지구온난화와 같은 자연적인 저류도 있지만,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바꾸는 것”이 더 큰 저류다. 예수의 혁명과 민주주의에 의한 군주제 타도는 대표적인 저류였다. 그러면 1, 2차 세계대전도 저류였나? 이들은 사람들의 투쟁의 습성을 바꾸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한 저류’라 할 수 있다. 대공황도 실패한 저류였다. 사람들이 공황의 쓴맛을 보고도 욕심의 버릇을 고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류가 저류를 내다본 사례는 의외로 흔치 않다. 학자들이 그렇게 많았지만 양차의 세계대전도, 대공황도 내다보지 못 했다. 동서냉전(東西冷戰)이 데땅트(detente)에 의해 종식된다는 것도 예측하지 못했다. 왜일까? 역사의 대세와 저류를 보지 않고 눈앞의 것만 보는 버릇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저류를 볼 수 있는가?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을 ‘개 무시’하고 중요한 저류/대세에 집중하라. 하늘에서 오늘의 세계를 조감하면 어떻게 보이겠는가? 인류 역사를 바꿀 거대한 저류(예: <상호의존>)가 다가오고 있는데.. 인간들은 보수다 진보다, 내 밥이다 니 밥이다 하면서 쌈질을 하고 있는 모습이 아닐까? 이런 조잡한 얘기들, 개 무시하라. 신문/TV를 보지 말라. 신문 기사/뉴스들은 과거 얘기 투성이다. 신문/TV의 이데올로기적 편향, 센세이셔널리즘 등은 역사의 대세를 보는 데 방해물만 된다. 신문을 보지 말고 자신의 <직관과 통찰>을 믿어라. 그러면 역사의 저류와 미래가 보인다.

필자는 신문구독을 끊은 지 20년이 넘었다. 신문/TV를 안 보고 그 시간에 ‘너의 생각’을 하라. 그래서 역사를 보는 시각을 길러라. 필자가 신문/TV를 보지 않는 현실적 이유는 아래다.

1) 신문/TV에는 진짜 중요한 정보는 안 나온다. 거기에 돈을 벌 정보가 나온다는 사람도 있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신문/TV에 나오는 정보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본다. 이에 의존해서 돈 벌려는 ‘긴 줄’ 즉 ‘붉은 바다(red ocean)’가 금방 형성된다. 여기에 줄 서서 투자나 창업을 하는 것은 망하는 첩경이 아닌가?
2) 신문/TV를 안 읽어도 가장 중요한 소식은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요약(Digest)과 논평을 곁들여 공짜로 들을 수 있다.^^

그러면 오늘날의 역사를 바꾸는 최대의 저류/개벽은 무엇인가? 그것은 ‘상호의존(相互依存)’이다. 상호의존은 역사의 대세를 바꾸고 있다. 상호의존이라는 저류에 적응하는 나라/개인은 흥(興)한다. 그러나 상호의존에 역행하는 나라는 미국과 같은 강대국이라도 망한다. 이것이 저류다. 그런데 신문/TV가 이 중요한 저류에 관해 보도하는 것을 보았는가? 

 서용현, Jose

 30년 외교관 생활(반기문 전 UN사무총장 speech writer 등 역임) 후, 10년간 전북대 로스쿨 교수로 재직중.

 저서 <시저의 귀환>, <소통은 마음으로 한다> 등. 

‘서용현, Jose’는 한국이름 서용현과 Sir Jose라는 스페인어 이름의 합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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