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진의 지구촌 뒤안길]

[오피니언타임스=유세진] 평창 동계올림픽(9∼25일)이 드디어 막을 올린다. 88서울올림픽 이후 30년 만이다. 지난 2011년 7월 남아공 더반에서 3수 끝에 힘겹게 올림픽 유치에 성공할 때까지만 해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올림픽에 정치적 배경이 따라붙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이번 올림픽은 특히 매우 흥미로운 환경 속에서 치러지게 됐다. 북한의 핵개발과 미국-북한 간 엄포 전쟁으로 인해 극도로 긴장이 고조됐다가 북한의 느닷없는 참가 선언으로 남북 간 급작스런 해빙 무드 조성이라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빚어졌다.

평창 올림픽에는 세계 90여 국가에서 3000명에 가까운 선수들이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의 동계올림픽으로 기록되게 됐다. 우리나라는 금메달 8개, 은메달 4개, 동메달 8개를 따내 사상 최고인 4위를 목표로 한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에선 세계 각국의 수많은 선수들이 모여 지난 4년 간 갈고 닦은 기량을 겨루는 종합 스포츠 대회로서의 관심은 최우선에서 한발 밀려난 것으로 보인다. 그보다는 북한의 급속한 핵 및 미사일 개발 진전과 그에 따른 동북아 지역과 국제사회에서 고조된 긴장 완화, 남북한 간 접근과 올림픽 이후의 관계 진전 가능성과 같은 정치 문제들이 더 큰 주목의 대상이 됐다. 본말이 전도됐다는 느낌을 떨쳐낼 수 없다.

게다가 주객마저 뒤바뀐 모습이다. 주인은 당연히 오랜 시간 올림픽을 준비해온 대한민국이어야 하고, 주인공은 피땀을 쏟아가며 올림픽 출전에 대비해온 선수들이어야 한다. 그러나 김정은의 한마디로 북한이 우리를 제치고 주인 행세를 하려 한다. 또 핵을 둘러싼 미국과 북한의 기 싸움과 북한 예술단의 현송월,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등이 평창 올림픽의 주인공인 것처럼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함께 훈련을 하고 있다.

올 초 신년사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하겠다고 깜짝 선언을 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소중한 기회”라며 이번 올림픽을 “평화 올림픽”으로 만들겠다고 호응했다. 평창 유치 성공 이후 7년 가까이 논의되지 않던 개막식 공동 입장과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북한 예술단과 응원단, 태권도 시범단의 참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의장과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의 방문 등이 채 한 달 남짓한 사이 일사천리로 결정됐다.

북한의 참가로 올림픽에 대한 불안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 해도 북한이 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크게 기여한 것은 결코 아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회원국인 만큼 북한도 출전 자격만 따면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출전 자격이 없는데도 한국의 올림픽 개최에 힘입어 출전하게 된 것은 오히려 북한에 특혜를 제공한 것이다. 그런데도 국내 언론뿐 아니라 외국 언론들도 북한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평양올림픽’까지는 아니더라도 북한에의 관심이 비정상적으로 큰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 가운데 올림픽 성공을 위해 오랜 시간 묵묵히 기울여온 우리의 노력은 호기심 섞인 북한에의 관심에 가려졌다.

북한의 평창 참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일방적인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결정 등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 올림픽은 개막하게 됐고 이미 결정된 것들은 되돌릴 수 없다. 그렇다면 그동안의 불만을 다 뒤로 하고 평창이 내세운 구호처럼 ‘하나 된 열정’으로 올림픽이 성공을 거두도록 해야 한다. 각종 경기에서 각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제 기량을 다 펼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 올림픽에 참가한 외국 선수들이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과 추억을 갖도록 해야 한다. 문 대통령의 말대로 이번 올림픽이 ‘평화 올림픽’이 된다면 더없는 성공이 될 것이다. 그것은 북한의 핵 포기를 끌어내는 것일 수밖에 없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과 김정은은 예측할 수 없다.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간에 해빙 모드가 형성됐다 해도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 것인지 알 수 없다. 김정은이 돌연 태도를 바꿔 올림픽 참가를 선언한 것은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라는 압박이 효과를 거둔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개막식에 맞춰 평창을 방문하는 김여정은 김정은의 메시지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그 내용이 무엇이고 문 대통령과 어떤 논의를 주고받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모든 것이 다 잘 된다면 좋겠지만 자칫하면 올림픽 이전의 극한 대치 상황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 올림픽이 끝난 뒤 북한이 올림픽 참가에 대한 대가로 어떤 무리한 요구를 해올지도 모른다. 북한은 이미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했다. 그러나 올림픽 전에 북한에 끌려 다닌 것처럼 또다시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북한에 대한 최대한의 압박을 계속 유지해야만 한다. 북한으로의 전세기 운항과 만경봉 92호의 입항, 제재 대상 인사의 방문 등 올핌픽을 위해 여러 차례 대북 제재의 예외를 만들면서 우리는 대북 제재를 위한 국제공조의 틀을 약화시켰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만큼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입지도 악화됐다. 국제사회와 함께 하지 않고 우리 혼자 힘만으로 북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은 힘들다. 대북 제재에서 예외를 인정한 것은 올림픽을 위한 일시적 조치였음을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다시 강력한 대북 압박에 나서야 한다. 북한의 진정한 의도가 미소 외교를 통한 이미지 개선일 뿐 핵과 미사일 개발은 뒷전에서 계속할 것이라는 의심은 여전하다.

 유세진

 뉴시스 국제뉴스 담당 전문위원

 전 세계일보 해외논단 객원편집위원    

 전 서울신문 독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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