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자 칼럼]

[오피니언타임스=석혜탁] 친한 선배가 탈모로 고민 중이다. 그와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알던 사이다. 어렸을 적 꽃미남 소리를 적잖이 들었던 그가 몇 년 전부터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을 걱정하더니, 작년부터 병원을 들락날락하고 있다. 내 눈엔 아직도 잘생겨 보이는데, 정작 본인의 고민은 이만저만 큰 게 아닌가 보다.

탈모의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장구하다. 서양사에 한 획을 그은 로마의 정치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Gaeus Julius Caesar)는 탈모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시저’라는 영어식 발음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정수리가 반짝이는 것이 남들에게 보이지 않게 가리고 다녔고,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그를 대머리라고 조롱한다고 생각해 탈모를 큰 결점으로 여겼다. 그가 원로원이나 대중들 앞에 설 때 늘 월계관을 썼던 이유가 대머리를 가리기 위해서였다는 설도 있다.

탈모로 스트레스를 적잖이 받았던 로마의 정치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픽사베이

플라톤의 제자이자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었던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모에 대한 대처 방법으로 염소 오줌을 직접 머리에 발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비둘기 똥을 이용해 탈모 환자에 대한 치료를 시도했다는 기록이 있다.

작년 여름 둘이 만나 맥주 한 캔 나눠 마신 적이 있었다. 역사책 읽기를 좋아하는 그 선배에게 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자신이 카이사르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반열에 올랐다며 내게 너스레를 떨었다.

며칠 전 이 ‘카이사르 선배’에게서 야밤에 연락이 왔다. 정기적으로 모발 상태를 점검하고 있는데, 6개월 전보다 눈에 띄게 상태가 좋아졌다는 것이다. 그의 말인즉슨, 카이사르도 아리스토텔레스도 탈모로 고민했다는 게 자기에게는 작은 위안이 됐고, 그 이후부터 스트레스를 덜 받고자 의식적으로 노력했다는 것이다. 민망하게 고맙다는 말까지 전했다. 그러면서 이제 곧 장발이 될지 모르겠다는 농까지 쳤다.

책에서 읽은 것을 친한 사람 앞에서 떠들기 좋아하는 철없는 후배의 말 한마디에 마음을 고쳐준 선배가 한편으로는 좀 귀여웠고, 한편으로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특유의 유쾌함으로 주변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그가 스트레스를 더 받지 않게 되길 바란다. 카이사르 선배의 장발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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