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 위에서 쓰는 편지]

[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방학 중인 대학 캠퍼스는 한산했습니다. 학생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아서 길을 묻기도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어느 사무실의 문을 밀고 들어섰을 때는 ‘펄펄 끓는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분주했습니다. 취업과 관련된 부서였습니다. 서울과 지방의 몇 개 대학을 순례하는 참이었습니다. 정부-대학-기업이 연계하여 학생이 학기 중에 기업에서 실습을 하고, 취업으로 이어지는 프로그램을 취재하는 중이었습니다.

취업부서가 방학 중에 더 바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해 보였습니다. 4학년이 마지막 학기를 마친지 꽤 됐고 졸업이 코앞인데, 여전히 진로가 결정되지 않은 학생들이 많으니 그럴 수밖에요. 교무처장과 사업단 단장을 겸하고 있는 한 교수는 얼마나 바쁜지 인터뷰 대신 인사만 나눌 수 있었습니다. 어느 교수는 면도도 못하고 정신없이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습니다.

한 공기업에서 입사지원자들이 면접을 보고 있다.

여러 대학을 방문하는 동안 다양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뜻밖의 상황과 마주치기도 했습니다.

“찾아보면 취업할 수 있는 길은 많아요. 가장 중요한 건 본인의 관심과 노력이지요. 뜻밖이겠지만 졸업할 때까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지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학생이 반 가까이 돼요.”

피로로 입술이 검게 탄 교수가 한 말입니다.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졸업할 때까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다니요. 그렇다면 거의 날마다 듣는 대학생들의 치열한 취업 도전기는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요. 그 대학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그 뒤에 들은 여러 증언으로 확인됐습니다.

“저는 4학년을 앞두고도 뚜렷한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할지 내게 맞는 직업은 무엇일지 저 자신과 깊은 대화를 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게 되면 취직을 하겠지’, ‘신입사원 공채가 뜨면 이곳저곳 지원하면 되겠지’라는 멍청한 생각을 가졌던 학생이었습니다.”

어느 여학생의 고백이었습니다. 이 학생은 다행히 국책연구소에서 6개월간의 실습을 마치고 분명한 진로를 정할 수 있었던 ‘운 좋은’ 케이스였습니다. 하지만 어영부영 학교에 다니다 졸업을 앞뒀거나, 신나게 놀기만 했거나, 아르바이트에 치여 기회를 놓친 학생들의 사례도 여럿 있었습니다. 결국 그들 중 상당수는 ‘청년백수’라는 명찰을 달고 사회에 첫발을 딛겠지요.

물론 치열하게 공부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더 많았습니다. 작지만 단단한 기업에 실습을 나갔던 어느 학생은 그 회사 사원들보다 늘 한 시간 먼저 출근해서 하루 일을 준비했다고 했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채용되지 않으면 갈 곳이 없잖아요. 4학년 2학기를 몽땅 바친 곳인데…”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면서 흔들릴 때마다 자신을 일으켜 세운 것은 ‘절실함’이었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 학생은 실습한 회사에 취업이 되어 단단한 입지를 굳히고 있었습니다.

벤처기업의 연구소에 실습을 나갔던 한 여학생은 모르는 것에 대해 집요하게 묻는 걸로 유명했다고 실습기간을 회고했습니다. 윗사람들이 자신을 ‘기피’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까지는 몰라도 돼요. 너무 깊게 가지는 말고…” 라고 조언하면서도 그런 자세를 대견하게 생각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학생은 석사학위 이상이나 들어갈 수 있다는 연구소에 당당하게 취업했습니다. 그것도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주임 연구원’으로 말이지요.

©픽사베이

이쯤에서 누군가는 대학이 ‘취업 공장’이냐? 학문이 먼저 아니냐? 라는 말로 제 시각에 교정의 칼을 들이대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그런 아쉬움이 없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대학에 가보면 그 논의 자체가 얼마나 공허한지 금방 확인할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는 생사를 좌우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니 문제가 있는 줄 알면서도 현실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동안 가장 절실하게 느낀 것은 역시 ‘본인이 할 나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절대적인 일자리가 부족하다거나 취업 시장이 왜곡돼 있다거나 하는 점은 정책이나 제도로 해결해야 하겠지만, 본인의 의지가 없다면 그 누구도 미래를 손에 쥐어줄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물가에 데려가는 것까지지요”라던 어느 교수의 말이 오랫동안 귓전을 맴도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취재 과정에 뉴스를 읽다가 마침 ‘놀거나 열공, 취업난 두 얼굴’이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주 내용은 ‘실업 상태이거나 별다른 구직·교육을 받지 않는 청년이 73만 명에 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본 사실을 어느 정도 뒷받침하는 기사였습니다. 그들을 ’유휴청년‘이라고 부른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유휴청년’들에게도 다양한 사정이 있겠지요. 난공불락의 취업문을 뚫다가 지쳐 쓰러진 청년들도 있을 테고, 드물지만 아예 취업 의지가 없는 청년도 있을 겁니다.

핵심은 이들 모두가 우리의 아들딸이라는 데 있습니다.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데도 사회의 뒷골목을 서성거리는 청년들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실현 가능성을 따지기 이전의 절대적 명제이지요. 문재인 대통령이 특단의 조치를 강조하는 ‘청년 일자리 대책’에 끝까지 미련을 놓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호준

 시인·여행작가·에세이스트 

 저서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문명의 고향 티크리스 강을 걷다>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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