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련의 그림자]

[오피니언타임스=최혜련]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추행 폭로 내용은 충격이었다. 권력을 가진 여성조차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사실에 한번, 그렇다면 소수자들의 목소리는 얼마나 삼켜졌을 지에 다시 한번, 그리고 범죄 사건을 조사하고 기소하는 검사가 범죄를 저지른 모순에 또 한번 놀랐다. 곧바로 이어진 최영미 시인의 문학계 성폭력 고발로 나는 내가 믿어온 세계가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니 어쩌면 평소에 너무 자연스러워서 깨닫지 못하다가 공기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과 같은 느낌에 가까울 것이다.

내가 검사도 시인도 아니지만 평범한 학생으로서 미투운동에 참여해본다.

©픽사베이

술자리에서 처음 본 선배가 나에게 나이를 묻더니 ‘아직 섹스도 안 해봤겠네?’라는 말을 했었다. 이자카야 알바를 했을 때는 술을 따라보라는 사람과 마셔보라는 사람도 있었다. 서빙 중이었는데 갑자기 내 팔을 이끌며 나가서 이야기하자는 사람, 억지로 앞치마 주머니에 명함을 넣고 간 사람도 있었다. 제일 당황했던 것은 내 목을 잡아끌며 강제로 입을 맞추려 했던 사람이었다. 일본에서는 취객이 갑자기 어깨동무를 하며 어디가, 집이 어디야, 술 마시러 가자며 계속 따라오려 해서 처음으로 이런 상황에 대해 불쾌함을 넘어 두려움을 느꼈다. 이 사건들은 최근 2년 동안 겪었던 일이다. 여성들은 성폭력에 생각보다 자주 노출된다. 중학교때 남자애들끼리 가슴 크기를 평가하며 낄낄 거리던 사건 같은 것들을 제외하고도 말이다.

예전에는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보며 왜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할까 싶었지만 막상 내가 겪어보니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냐, 그만 하라고 의사표시를 했지만 농담인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구냐는 식의 반응이 돌아왔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게 내가 화를 내도 괜찮은 상황인가를 스스로 검열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증거를 남길 여유도 없었고 성폭행(강간과 강간미수)도 미약한 처벌을 하는 마당에 신고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어설프게 웃어넘기거나 못들은 척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피해자들이 쉽게 나설 수 없는 이유는 성폭력을 범죄로 보지 않는 사회구조의 문제가 크다. 입증의 몫은 피해자에게 있으며 증거 확보가 어렵기 때문에 처벌하기 힘들다. 설령 증거가 있다고 해도 꽃뱀 취급을 하며 2차 피해를 가한다. 그날의 옷차림을 문제삼으며 범죄 책임을 피해자에게 묻기도 한다. 반면 가해자는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남자친구라는 이유로 감형이 되고 폭력이 정당화된다. 사법부는 가게에 진열된 빵을 허락없이 먹는 것이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배고파서 그랬다는 가해자의 입장에 쉽게 감정이입을 한다. 

특히 직장상사와 부하의 관계 같이 피해자가 을의 위치에 있을 경우 인사불이익까지 감안해야한다. 이번 안태근 성추행 사건만 보더라도 피해자가 감당해야 하는 무게를 알 수 있다. 가해 검사는 승진을 거듭하고 피해 검사는 인사불이익을 받았다. “너 하나 병신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지금 떠들었다가는 그들은 너를 더더욱 무능하고 문제 있고 이상한 검사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입 다물고 그냥 근무나해라”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 실제 법적으로는 직장내 성희롱이 발생할 경우 가해자에게 징계 등 조치를 취하고 피해자가 불리한 조치를 받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러한 내용은 몽상에 가까워 보인다.

그래도 이번 일을 계기로 드디어 사회가 피해자의 목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많은 이들이 힘을 얻어 자신의 경험을 토로하고 개인의 문제로 생각했던 사건을 사회구조적 문제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나 또한 내가 예민한 사람이 아니고 그 순간 화를 내지못한 내 자신을 탓할 게 아니라 그런 말과 행동을 한 그들을 탓해야 한다는 정상적인 사고로 돌아왔다. 나아가 더 이상 피해자들이 스스로를 탓하지 말길 바라며, 적어도 고여있던 상처의 웅덩이를 씻어낼 수는 없어도 흘러 보내길 바란다.

또한 많은 이들이 모르는 척 하지말아야 할 사실은 기준이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당시 상대가 불쾌감이나 굴욕감을 느꼈다면 성희롱이란 점이다. 애인이라고 해도 강압적인 폭력을 행사할 수 있고, 모텔에 가는 것이 성관계를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남자들은 ‘뭐 그런거 가지고 그러냐’는 식의 그릇된 고정관념으로 피해자의 입을 막아서는 안된다. 앞으로 많은 이들이 성폭력이 ‘범죄’임을 깨닫고 썩어버린 민중의 지팡이들도 교체되길 바란다.

 최혜련

 다채로운 색을 가진 사회가 되길 바라며 씁니다,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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