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_ 왜 지금 변시지인가3

©변시지, 클릭하면 확대된 그림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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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변시지에 대한 일반적인 다음의 4가지 수식을 수정하면서 이 글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하나, 그는 제주도의 화가가 아닙니다. 그를 포함하며 넘어섭니다.
둘, 폭풍은 단순히 기후로서의 바람이 아닙니다. 외로운 시대를 표현하면 동시에 깰 바람이기도 합니다.
셋, 그는 과거의 화가가 아니라 현재를 향한 화가입니다.
넷, 그의 풍토는 자연이 아니고 인간의 존재성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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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시절에 그린 그의 그림엔 일정한 원형이 있습니다. 그 원형은 기호 역할을 합니다. 이는 변시지가 풍경을 기억하여 그렸으되 실경 그대로는 아닌 그만의 심경(心景. Mind-scape)을 그렸다는 말이 됩니다. 폭풍이 거세게 불고 파도는 마녀가 머리를 풀어 덤비듯 뭍을 유린하며 협박합니다. 소나무 가지는 부러질 듯 흔들리며 여위어 보이는 말의 갈기는 뽑힐 듯 날리는데 그 아래를 한 지팡이 짚은 남자가 외롭게 집을 향해 걷고 있는 모습. 배경은 강렬한 황토 빛으로 처리됐고 하늘엔 마치 어린 아이가 그린 것 같은 단순한 선 처리의 태양이 햇살 몇 가닥을 뿌리처럼 내리고 있죠.

그의 그림에는 늘 까마귀와 부서질 듯한 조각배가 나옵니다. 떠나려고 하는 배 같기도 하지만 어느 때는 이어도에 주인을 내려두고 돌아온 신성한 배로도 나옵니다.

까마귀는 한 마리일 때는 그의 내면의 아바타, 여러 마리일 때는 제주도 풍경일 것으로 추측되는데, 자세히 보면 거의 모두 다리가 하나인 외(一)족오입니다. 특이합니다. 의도했던 것일까요? 어쨌든 삼족오 까마귀의 신화성은 외족오의 현대성으로 변모되었습니다. 다리 하나로는 몸을 지탱할 수가 없겠죠.

화가는 어릴 때 제주 고향에서 숱하게 보았던 까마귀를 그의 풍토(風土) 미학에 기대어 그린 것이라고 하지만 의미는 독자와 평자에게 남겨진 것이니 그 외족오의 한 다리는 현대인을 향하고 있다고 해석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고향, 가족, 공동체에서 던져진 채 외롭게 삶을 지탱해야 하는 싱글 족, 혼족 같은 외족오 현대인들 말입니다. 그래서 외족오는 그의 아바타면서 동시에 그의 과거 인연들도 결국은 외다리 까마귀라는 함의를 품습니다.

사람들은 변시지 그림을 보면 “아! 강하다. 그런데 누군가가 떠올라.”라고 말합니다.

필자 역시 그랬습니다. 그 누군가가 누구일까요?

일인은 1800년대 조선 말 추사 김정희입니다. 이는 그의 ‘세한도’ 때문입니다. 세한도는 제주도에서 그렸습니다. 또 하나 인물은 타히티 섬에서 원시성에 천착한 폴 고갱입니다. 공교롭게도 셋 다 섬과 관련된 예술가들이군요. 그런데 그 섬은 인생의 가장 힘든 때 유배 또는 이상향으로 찾은 섬들입니다. [오피니언타임스=변시지 화가, 황인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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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은 변시지 그림을 소유한 시지아트재단과 황인선 작가와 협의 후 게재하는 것입니다. 본문 안에 포함된 사진을 따로 퍼가거나 임의로 사용할 경우 저작권법에 저촉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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