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완의 애, 쎄이!]

[오피니언타임스=우디] 2018년을 꽤나 열심히 기다렸다. 이유는 모르지만 유난스럽게도 올해가 너무 기대되고 좋아서 작년 12월을 즐겁게 보냈다. 연말에 술도 많이 마셨고, 20대가 반짝반짝 빛나도록 많이도 웃었다. 8이라는 숫자에는 동그라미가 두 개나 있어서 둥글둥글 귀여워, 그런 얘기를 하면서 정말 즐겁게 뛰어다녔다. 그런데 막상 2018년 1월 1일이 되고나니 감당 못할 후폭풍이 불어 닥쳤다. 이유 모를 기대는 이유 모를 절망을 낳았다. 동글동글 귀여운 2018년이라고 뭐 별다른 건 없었다. 여전히 날씨는 추웠고, 나는 컴퓨터 학원에 다녀야 했고, 이력서에 쓸 자격증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야 했다.

머릿속에 딴 생각이 있어서 그런가, 모든 것들이 꼬여갔다. 매일 공부를 하지만 토플 영단어는 쉬이 머릿속에 남지 않았고, 쌓이는 절망과 슬픔이 많아질수록 몸 안에 맴도는 문장의 수가 많아졌다. 노트북 앞에 앉았다가 웹툰을 보고, 하얀 백지 위에 몇 번씩이고 깜빡이는 커서를 보다가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아무 것도 하기 싫었다. 1월과 2월의 나는 아주 무기력 하게 방바닥에 누워서 곰돌이 푸우를 안고 나른한 시간들을 보냈다. 학원에 가면 열심히 컴퓨터 공부를 했고, 자격증도 땄지만, 내 시선은 작은 방 안을 벗어나지 않았다.

방 안에 있는 나의 세상은 SNS가 전부였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친구들도 특별하게 일상 얘기를 전해주지 않았다. 딱 한 명, 한 달 휴가를 받아 베트남으로 떠난 나의 절친 소피아 말고는. 원래는 나와 함께 가기로 한 여행이었다. 입사 전에 동남아로 한 달 자유여행을 하자고, 그래야 한이 생기지 않을 것 같다고 했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라고 말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금난으로 인해서)로 나는 결국 한국에 남았다. 베트남으로 향하는 항공권 대신에 취업준비를 선택했다.

©픽사베이

소피아는 혼자 떠난 여행이라서 조금 심심해보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사진에서 밝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고, 새카맣게 탔지만 환하게 웃고 있었다. 사진을 찍을 거니까 예쁘게 웃어, 라고 해서 짓는 표정이 아닌 정말 좋아서 웃는 얼굴이었다. 그런 표정은 사진 안에 있어도 에너지가 느껴진다. 영상이 아닌데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숨소리도, 따듯한 감정도 전해졌다. 평소라면 그 에너지가 답하듯 나도 힘을 내서 하루를 보내고 친구의 연락에 즐겁게 응했을 텐데 그때엔 달랐다. 소피아는 내게 자신의 일상을 카톡으로 더 생생하게 전해줬지만, 나는 잘 읽히지 않았다. 소피아의 웃음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

“그런 것 같았어. 내 말이 네 귀로 들어가긴 하는데, 다른 귀로 빠져나가는 것 같더라.”

원래도 조금 까만 피부인 소피아는 조금 더 새카맣게 변하고 눈 위의 셰도우를 더욱 과감하게 바른 화장을 하고 을지로에서 나를 맞이했다. 우리는 아주 한국적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 시키고 서로의 이야기를 풀었다. 소피아의 베트남 한 달이야기를, 나의 한 달 취업준비를 그리고 네가 웃고 있는 여행이 공감되지 않았다는 나의 이야기까지. 소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이도 나와 같은 시간이 있었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무가치 해 보이는 시기, 꿈은 다 포기하고, 무엇을 준비해야지 세상의 눈에 들까만 고민하는 시기. 입시를 할 때는 그냥 수능 문제만 풀면 되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맞이하는 시간 앞에서 우리는 손에 저울을 들어야 했다. 한쪽 접시에 나의 욕심을 올려놓으니 취업의 문 앞에서는 너무나 무거운 돌덩이이고, 나의 욕심을 버리고 또 버려서 아주 콩알만큼 올려놓으니 드디어 무게가 맞는 것 같았다.

거기에 부모님의 기대, 앞으로의 미래, 인간처럼 살고 싶은 부, 죽지 않기 위한 시발비용을 하나씩 올려놓으니 또 취업과의 거리는 멀어지는 저울을 손에 들고 글자 수를 세고, 이른바 자기소개소설이라는 자기소개서를 썼다. 누가 대신 할 수도 없는 시기이고, 지나지 않을 수도 없는 시기였다. 어떻게든 돌파를 해야 하는 시간. 생각해보면 내가 휴학을 하고 오사카로 후쿠오카로 떠날 때 소피아는 카페 한구석에서 숨죽여 울었고, 허리가 자꾸만 돌아가는 H라인 스커트를 몇 번이나 손으로 쓸고 고쳐 입으며 면접장으로 달렸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처럼.

사실 우리는 베트남에 있는 꼬따오라는 작은 섬으로 함께 떠나서 스킨스쿠버 오픈워터 자격증을 따려고 했었다. 결국 나는 떠나지 못하고, 소피아만 자격증을 따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소피아의 수많은 여행 얘기를 듣다가 한 얘기가 귀에 또렷하게 울렸다.

“다이빙 선생님이 그러더라구. 나처럼 이렇게 행복하게 다이빙을 배운 애는 어느새 보면 강사자격증을 따서 자기 마음에 드는 다이빙 사이트(site)에 자리를 잡고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다고. 이제 우리는 태어난 곳에서 살아야 할 필요가 없데, 내가 살고 싶은 국가, 도시를 선택해서 살아갈 수 있데. 멋있지 않아? 우린 그런 시대의 사람이야. 그러니까 우리 다시 또 떠나보자.”

웃음이 났다. 여전히 소피아의 얘기는 나에게 닿지 않고 귀에 윙윙 울렸다. ‘떠나는 거야 좋지, 그런데 돈이 없잖아, 나는 지금 쫄보에다가 능력도 없는 취준생인걸. 나는 안 돼, 나는 무기력해, 나는 앞으로도 그럴거고, 나는 지금…….’ 계속해서 절망스러운 이야기만 입안에 가득 찼다. 하지만 떠나자고 하는 소피아를 보니 자꾸 웃음이 났고, 아주 오랜만에 즐겁고 살아있음을 느꼈다.

©픽사베이

매일 방 안에 누워서 생각을 했다. 어떤 목표를 찾아야 할까, 어떤 지원동기가 있어야 할까, 어떤 가치가 나와 회사에 모두 득이 될까, 어떻게, 어떻게 해야 내 것이 하나도 없는 이 세계에서 급여를 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매일 생각해서 목표는 생겼지만 뛰고 싶지 않았다. 뛰기도 전에 지쳐서 웅크렸다. 그런 시간들이었는데, 이렇게 아주 허무맹랑한 ‘떠남’으로 인해 웃음이 나고 생의 욕구를 느끼다니, 이상했다. 아주, 아주.

우리는 2년 뒤에 어디론가 떠나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떠날 수 있을지, 없을 지는 잘 모르겠지만.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 또 다른 친구에게 연락해서 30살이 되는 12월엔 호주에서 따뜻한 겨울을 보내자고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지금은 내가 취준생이지만 돈을 벌면 포르투갈로 떠나자고 했다.

나는 최근에 항상 현실적인 생각만을 했다. 그리고 나는 초능력이 없는 아주 현실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미래를 알 수 없었다. 예견할 수 없었고, 불안했다. 그래서 아무 것도 알 수 없고, 제어되지 않는 나의 방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상상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에.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본 소피아의 사진이 이제야 제대로 보였다. 찰랑이는 바닷물과 바다 위로 쏟아지는 햇살이. 너무 웃어서 물안경에 자꾸만 물이 찼다는 소피아의 수경이. 아주 오랜만에 취업이 아닌 다음을 얘기했다. 그리고 그것이 어렸을 적 적었던 장래희망과 닮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Thanks to 임지현)

 우디

 여행, 영화, 글을 좋아하는 쌀벌레 글쟁이.
 글을 공부하고, 일상을 공부합니다.
 뛰지 않아도 되는 삶을 지향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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