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훈의 쇼!사이어티]
[오피니언타임스=이성훈] 이번 겨울은 스포츠 볼거리가 풍성하다. 시속 130km를 넘나드는 스켈레톤 썰매의 가속도, 2M 가까운 장신들이 덩크슛으로 골대를 강타하는 남자프로농구의 호쾌함까지, 스포츠인들의 퍼포먼스는 국적, 성적에 상관없이 그 자체로 아름답다. 그런데 몰입을 방해하는 장면들도 있었다. 스포츠를 스포츠 그 자체가 아닌, 무언가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시도들이 심심찮게 목격됐다. 외교적 수단이라는 명분, 혹은 국위선양의 기수라는 이름까지, 스포츠는 다양한 ‘쓸모’를 요구받았다.
여성 아이스하키팀은 ‘남북외교’라는 명분 때문에 엉망이 됐다. 시합을 고작 20여일 앞두고 북한선수들이 합류했는데, 이 조치는 기존 선수들의 출전기회는 줄어들고, 전력누수가 불가피하다는 비판에도 강행됐다. 국무총리가 나서서 ‘어차피 메달권 밖 종목이니까 남북 대화통로로 활용’한다며 해명했는데, 그것이 도리어 네티즌들의 감정선을 건드렸다. ‘남북평화 명분은 선수단 동반입장으로도 충분하다거나 ‘선수들에겐 일생 한번 뿐인 출전을 정부가 망친다’며 비난여론이 들끓었고, 특히 2030세대에서는 정부 지지율이 30%나 폭락했다.
한편, 같은 ‘낙하산 합류’가 남자농구대표팀에서는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199cm, 110kg의 건장한 외국인 선수가 특별귀화 했는데, 평가전도 없이 곧장 태극마크를 단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정성 논란이 전혀 없었다. 언론과 네티즌들은 ‘국제성적 향상’이라는 명분에 동의했다. 여성 아이스하키 선수들을 앞 다퉈 인터뷰했던 언론들도 귀화선수에게 로스터를 빼앗긴 남자농구선수는 한 명도 인터뷰하지 않았다. 댓글도 기사도 오로지 남자농구의 국제성적 향상을 기대하는 내용뿐이다.
명분만 다를 뿐 모두들 스포츠에 쓰임새를 부여하고 싶어 한다. ‘남북평화’든 ‘국제성적’이든 말이다. 씁쓸했다. 물론 미국-소련, 남한-북한이 체제경쟁을 벌이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스포츠가 나라 간의 자존심 싸움일 때가 있었다. 거의 100년 전에나 볼법한 올드한 관점이지만, 스포츠에 쓸모를 묻는 관점은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게다가 그 뜨거운 관심은 올림픽이 폐막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질 것이다.
그 결과로 스포츠는 우리 삶에서 멀어지고 있다. 운동은 큰 무대로 진출할 엘리트 체육인들이 독점하고, 초보들은 구경과 응원만 하는 영역이 되어간다. 학교 체육시간은 책상에 앉아 자습하는 시간이 된 지 오래다. 스포츠가 우리의 일상에서 너무도 멀어져서, 20대 청년들의 운동능력이 부모세대의 소싯적보다 10%가량 약해졌다는 문체부의 조사까지 나왔다.
스포츠에 쓰임새를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포츠로 외교성과를 과장하거나, 금은동 메달을 사냥하자는 게 아니다. 그저 스포츠를 있는 그대로 즐기고 싶다. 빙판 위에서 미끄러져도 좋고, 골을 넣지 못해도 좋으니 직접 운동하며 땀을 흘려야 한다. 스포츠에 쓰임새를 묻지 않았으면, 있는 그대로를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굳이 쓸모가 없어도 있는 그대로를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필요하다.
이성훈
20대의 끝자락 남들은 언론고시에 매달릴 때, 미디어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철없는 청년!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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