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훈의 쇼!사이어티]

[오피니언타임스=이성훈] 이번 겨울은 스포츠 볼거리가 풍성하다. 시속 130km를 넘나드는 스켈레톤 썰매의 가속도, 2M 가까운 장신들이 덩크슛으로 골대를 강타하는 남자프로농구의 호쾌함까지, 스포츠인들의 퍼포먼스는 국적, 성적에 상관없이 그 자체로 아름답다. 그런데 몰입을 방해하는 장면들도 있었다. 스포츠를 스포츠 그 자체가 아닌, 무언가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시도들이 심심찮게 목격됐다. 외교적 수단이라는 명분, 혹은 국위선양의 기수라는 이름까지, 스포츠는 다양한 ‘쓸모’를 요구받았다.

©픽사베이

여성 아이스하키팀은 ‘남북외교’라는 명분 때문에 엉망이 됐다. 시합을 고작 20여일 앞두고 북한선수들이 합류했는데, 이 조치는 기존 선수들의 출전기회는 줄어들고, 전력누수가 불가피하다는 비판에도 강행됐다. 국무총리가 나서서 ‘어차피 메달권 밖 종목이니까 남북 대화통로로 활용’한다며 해명했는데, 그것이 도리어 네티즌들의 감정선을 건드렸다. ‘남북평화 명분은 선수단 동반입장으로도 충분하다거나 ‘선수들에겐 일생 한번 뿐인 출전을 정부가 망친다’며 비난여론이 들끓었고, 특히 2030세대에서는 정부 지지율이 30%나 폭락했다.

한편, 같은 ‘낙하산 합류’가 남자농구대표팀에서는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199cm, 110kg의 건장한 외국인 선수가 특별귀화 했는데, 평가전도 없이 곧장 태극마크를 단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정성 논란이 전혀 없었다. 언론과 네티즌들은 ‘국제성적 향상’이라는 명분에 동의했다. 여성 아이스하키 선수들을 앞 다퉈 인터뷰했던 언론들도 귀화선수에게 로스터를 빼앗긴 남자농구선수는 한 명도 인터뷰하지 않았다. 댓글도 기사도 오로지 남자농구의 국제성적 향상을 기대하는 내용뿐이다.

명분만 다를 뿐 모두들 스포츠에 쓰임새를 부여하고 싶어 한다. ‘남북평화’든 ‘국제성적’이든 말이다. 씁쓸했다. 물론 미국-소련, 남한-북한이 체제경쟁을 벌이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스포츠가 나라 간의 자존심 싸움일 때가 있었다. 거의 100년 전에나 볼법한 올드한 관점이지만, 스포츠에 쓸모를 묻는 관점은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게다가 그 뜨거운 관심은 올림픽이 폐막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질 것이다.

그 결과로 스포츠는 우리 삶에서 멀어지고 있다. 운동은 큰 무대로 진출할 엘리트 체육인들이 독점하고, 초보들은 구경과 응원만 하는 영역이 되어간다. 학교 체육시간은 책상에 앉아 자습하는 시간이 된 지 오래다. 스포츠가 우리의 일상에서 너무도 멀어져서, 20대 청년들의 운동능력이 부모세대의 소싯적보다 10%가량 약해졌다는 문체부의 조사까지 나왔다.

스포츠에 쓰임새를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포츠로 외교성과를 과장하거나, 금은동 메달을 사냥하자는 게 아니다. 그저 스포츠를 있는 그대로 즐기고 싶다. 빙판 위에서 미끄러져도 좋고, 골을 넣지 못해도 좋으니 직접 운동하며 땀을 흘려야 한다. 스포츠에 쓰임새를 묻지 않았으면, 있는 그대로를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굳이 쓸모가 없어도 있는 그대로를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필요하다. 

 이성훈

20대의 끝자락 남들은 언론고시에 매달릴 때, 미디어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철없는 청년!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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