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폭풍의화가, 변시지
폭풍의 화가, 변시지를 만나다94평론_ 왜 지금 변시지인가4
황인선 | 승인 2018.02.23 10:50

3

‘세한도(歲寒圖)’는 김정희가 1844년, 중인출신의 제자 이상적이 청나라에서 구한 귀한 책자를 보내 온 의리에 보답 차 그려 준 그림입니다. 추사는 1840년부터 8년간 제주도로 유배를 갔었습니다. 그의 나이 55세. 그의 죄도 아닌 아버지가 연루되었다고 혐의 받은 윤상도 옥사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외할머니가 왕족 출신이었고 청년의 나이에 이미 청나라 최고 석학인 옹방강, 완원 등과 깊은 교우를 나누던 석학이었고 따르는 제자만 수 천 명이었다던 추사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세한- 차가운 세월이란 뜻의 제목 속에 이미 세상에 대한 추사의 심정이 드러나 있습니다. 그런데 적막 속에 네 그루의 소나무와 잣나무가 사뭇 고고합니다. 그 사이로 엉성한 초옥 한 채가 인적도 없이 있습니다. 그 이외에는 텅 빈 공간입니다.

말년에 추사를 연구한 변시지의 그림은 유화이면서도 전통적인 붓 터치로 초가집, 소나무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외로움과 초연함도 배어있습니다.

이것은 추사의 세한도 심경에 다름 아닙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국립중앙박물관
말년에 추사를 연구한 변시지의 그림 ©변시지

세한도가 연상되는 이유는 더 깊은 데에서 왔을 수도 있습니다. 둘의 제주도 삶 즉, 세한연후 삶입니다. 변시지는 나이 51세에 제주도로 내려갔습니다.

지금의 제주도를 상상하지 말기 바랍니다. 1970년대입니다. 초가집이 대부분이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제주도 (사진)였습니다. 도쿄에서도 잘 나가던 변시지가 돌아간 고향의 모습입니다.

가족을 떠나 안정된 자리와 명예를 버리고 홀연히 제주도 고향으로 돌아온 그가 과거 심상으로 돌아가 외로이 초롱불을 켜고 앉아 초가집을 흔드는 폭풍 소리를 들으면서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세한의 시절, 부질없는 인간사... 자신보다 앞서 자신만의 체를 만들고 간 제주도 추사가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추사의 곤궁한 삶과 육지 세상의 세한에 대한 감정은 변시지의 그림에도 그대로 녹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와 현대가 이어질지언정 같을 수는 없겠죠. 변시지의 그림은 강렬한 황토 빛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거센 바람과 대결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한도와는 다릅니다. ‘대결’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수사적인 것이 아닙니다. 김정희는 당시 조선인의 눈으로는 문명의 중심이었던 청나라를 숭상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고증학과 금석학의 대가로서 실학자로 평가를 받지만 그것은 청나라에서 배워온 것이었습니다. 그의 호 완당도 완원을 숭상하여 따온 것이죠. 외람된 말이지만 그는 대결의 삶을 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반면 변시지는 늘 대결의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6살에 일본으로 가 조센징으로 핍박 받던 그는 초등학생 시절 학교 씨름대회에 나가서 특유의 투지로 일본 아이들을 몇 차례 물리칩니다. 그러자 일본 선생들은 부당하게도 그보다 머리가 하나는 더 큰 상급생과 맞붙게 부추겨 결국 어린 시지는 씨름판에 내동댕이쳐져 다리 근육을 다칩니다. 아버지가 늘 불안해했던 일이 마침내 벌어진 것입니다. 그 후 그는 지팡이를 짚고 다녔습니다.

변시지는 해방 후 1957년 서울대 미대 교수로 귀국했지만 1년 만에 권위의 자리를 던졌습니다. 고궁을 돌며 한국적인 것을 찾으려 극 사실주의로 화풍을 바꿨습니다. 그는 일본과 서구를 최고의 문명으로 숭상하지 않았습니다. 제주도로 간 그는 새로운 화법을 만들기 위해 수년을 술과 고독 속에서 몸부림쳤다고 합니다. 자기 그림을 그리겠다는 막다른 갈구와 대결한 것입니다.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자살바위를 배회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1977년 어느 날 폭음 후 새벽에 황토 빛이 자신의 화폭을 감싸는 것을 발견한 그는 유레카의 외침을 토했다고 합니다. “ 마침내 제주라는 형과 색이 보이기 시작한다.”

변시지는 거센 바람과 투쟁을 통해 자신만의 황토빛을 찾았다. ©변시지

서귀포 기당 미술관에 가면 그의 소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중 용머리 손잡이 지팡이가 있습니다. 그 용머리 손잡이를 비틀면 긴 칼이 나옵니다. 칼은 지킴과 벰을 기능으로 합니다. 그의 그림에서 단순한 풍경이 아닌 칼날 같은 존재론적 결기가 느껴짐은 이런 대결적 삶의 배경 때문일 것입니다. [논객닷컴=변시지 화가, 황인선 작가] 

변시지 시리즈 전체보기

이번 기획은 변시지 그림을 소유한 시지아트재단과 황인선 작가와 협의 후 게재하는 것입니다. 본문 안에 포함된 사진을 따로 퍼가거나 임의로 사용할 경우 저작권법에 저촉될 수 있습니다.

황인선  ishw11@naver.com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매체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논객닷컴 | (03163)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12, 대일빌딩 1405호
대표전화 : 070-7728-8569 | 팩스 : 02-722-65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종국
제호: 논객닷컴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78 | 등록일 2011년 9월 27일 | 발행일: 2011년 10월 1일 | 발행ㆍ편집인 : 권혁찬
Copyright © 2019 논객닷컴.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