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경의 현대인의 고전읽기]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

손자를 누가 더 예뻐할까?

손주가 태어나면 친할머니가 더 예뻐할까, 아니면 외할머니가 더 예뻐할까?
이 고리타분한 질문의 답은 각자의 처한 환경과 집안 분위기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리고 세계적으로 또한 옛날이나 지금이나 외할머니가 손주를 더 예뻐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남자 A와 여자 B가 결혼하여 아기 C를 낳았다. 아기 C는 엄마 B의 뱃속에 있다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러므로 엄마가 B인 것은 분명하다(병원에서 아기가 뒤바뀌지 않는 이상). 그렇다면 아빠는 과연 누구일까? 이 간단한 질문에 명확하게 답변하기란 매우 어렵다. 우리가 종종 접하는 신문기사를 떠올려보자.

2018년 0월 0일, 경기도 00의 한 주택 앞에서 버려진 신생아가 발견되었다. 태어난지 2~3일로 추정되는 아기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한편 경찰은 아기의 엄마를 추격하고 있다.

왜 경찰은 ‘아버지’는 추격하지 않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아기의 엄마는 이 세상에 오직 1명이지만 아버지는 적어도 20억 명 중의 1명이기 때문이다. 즉 엄마가 아버지를 밝히지 않는 이상 생부를 특정해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외할머니는 자신의 배에서 10달을 기르다가 엄마(딸)를 낳았고, 그 딸은 또 외손주를 낳았다. 분명히 자신의 피가 전해진 것이다. 그러나 친할머니 입장에서 보면, 아빠(아들)는 자신이 분명 낳았지만 손주에게 아들의 피가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외할머니가 손주를 더 사랑한다. 이 말은 엉터리일까?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손주는,
친할머니 입장에서 : 내 아들이 낳은 아들이 아니라 며느리가 낳은 아들이다.
외할머니 입장에서 : 사위가 낳은 아들이 아니라 내 딸이 낳은 아들이다.

외할머니가 외손주를 사랑하는 이유는 자신의 피, 즉 유전자(DNA)가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은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이는 모든 생물에게 동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희생의 정신을 지닌 유전자가 있다. 그들은 나보다 타인을 위해 행동한다. 왜 그럴까? 그 이타적 유전자도 진화하는 것일까? 근본적으로 생각해서, 생물은 과연 진화를 거듭해서 현재 상태에 이른 것일까? 아니면 창조된 것일까?

론(論)과 론(論)의 대결에서 이기려면

이 세상의 모든 글(혹은 주장)은 몇 개로 분류된다. 첫 번째는 학(學)과 서(書), 그 다음이 전(典)과 경(經), 그리고 론(論), 설(說) 등으로 이어진다. 어떤 주장이 과학적으로 오류없이 입증되면 그것은 學이 된다. 예컨대 수학, 화학, 경영학 등이다. 입증되지 않으면 論과 說에 그치고 만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대결 구도를 펼친다. 창조론 대 진화론, 성선설 대 성악설이다.

특히 창조론 대 진화론은 오랜 세월에 걸쳐 치열한 대결을 펼치고 있다. 1859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간된 이후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진화론에 무게를 두지만 미국의 일부 중고교에서는 진화론 교과서를 불법으로 여기기도 한다.

학자들은 <종의 기원>이 “생물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책 중의 하나이다”라고 말하지만 159년이 지난 지금까지 論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다윈의 이론을 명확히 입증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창조론 역시 學이나 典이 아닌 論에 머물러 있다. 둘 중 하나가 이기려면 2+3=5처럼 혹은 “수요가 증가하면 가격은 상승한다”는 이론처럼 과학적으로 오류없이 증명해야 한다.

과학혁명의 구조 ©김호경

자기의 존재 이유를 알고 있는가?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영국의 행동생물학자이자 대중적인 과학책을 쓰는 저술가이다. 태어나기는 1941년 아프리카 케냐였지만 8살 때 아버지의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가 풍족하게 살았고, 보수적인 교육을 받았다. 가정의 분위기나 학교의 영향으로 신(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강했어야 했는데 버트란트 러셀의 <왜 나는 크리스천이 아닌가?>(Why I am Not a Christian)를 읽고 무신론자로 돌아섰으며 이후 진화론의 선구자가 되었다(그런 의미에서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동물학을 공부했는데 그때 만난 교수가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니콜라스 틴베르헌(Nikolaas Tinbergen)이다. 그에게서 영향을 받아 열심히 공부하다가 집필한 책이 <이기적 유전자>이다. 1976년 처음 출간된 이후 곧바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42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팔리고 있으며, 읽히고 있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떤 행성에서 지적 생물이 성숙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생물이 자기의 존재 이유를 처음으로 알았을 때이다. 만약 우주의 다른 곳에서 지적으로 뛰어난 생물이 지구를 방문했을 때, 그들이 우리의 문명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맨 처음 묻는 것은 우리가 “이미 진화를 발견했는가?”라는 물음일 것이다.

모든 책에서의 질문이 그러하듯, 이 물음에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자기의 존재 이유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는가? 진화를 발견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가? 만약 답할 수 있다면 진화의 의미는 무엇이고, 맨 처음 출발점은 어디인가? 이 책은 그 답을 찾아가는 길고 긴 여행이다.

코스모스 ©김호경
도킨스 ©김호경

한번 읽기도 어렵지만, 한번은 반드시 읽어라

<이기적 유전자>는 어려운 책이다. 두 번 정도 읽으면 약간이나마 이해가 된다. 어려운 단어도 많이 나온다. 밈(meme), 보복파형과 허풍파형, 자기 복제자.... 하지만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처음에는 소설책 읽듯이 가볍게 한번 읽으면 되고, 두 번째는 밑줄을 그어가며 읽으면 된다. 정말 어렵다고 생각되면 한번만 읽어도 된다. 그러나 한번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

인간은 생물의 일종이기에 생물학적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오랜 세월 진화를 거듭하면서 사회적, 문화적, 도덕적으로도 살아간다.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인간의 피에 심어진 유전자는 그 사회적/문화적/도덕적 삶에서 어떠한 선택을 하고 행동을 하게 하는지도 결정해준다. 즉 유전자는 이기적인 생물적 본능을 뛰어넘어 이타적인 문화적 지향을 하게 해준다. 이 책은 이렇게 끝난다.

어떤 자기 복제자가 이 세상에서 성공할 것인지의 여부는 그 세계가 어떤 세계인가에 달려 있다.... 서로가 이익을 주고받는 자기 복제자끼리는 서로의 존재 하에서 우위를 점하게 될 것이다.... 우주의 어떤 장소이든 생명이 생기기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 유일한 실체는 불멸의 자기 복제자일 뿐이다.

인간은 “유전자를 운반하는 로봇에 불과하다”는 말은 결코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든 생물체는 이기적 유전자를 안고 태어났음에도 나와 더불어 다른 생명체까지 포용하는 이타적 유전자가 승리한다는 –더 오래 지속된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진화론을 믿든 창조론을 믿든, 혹은 성선설을 믿든 성악설을 믿든 자기희생의 정신을 지닌 인간이 정녕 아름다운 인간이다.

* 더 알아두기

1. 과학책의 세계 3대 스테디셀러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생물),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과학),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우주)이다. 이 3권만 읽으면 현대인으로서 알아야 할 과학의 기초 지식은 대략이나마 습득했다고 할 수 있다.

2. <코스모스>(Cosmos)는 우주란 무엇인가를 풍부한 사진과 자료, 이야기를 곁들여 재미있게 설명한 가이드북이다. 미국의 우주과학자 칼 세이건은 500편이 넘는 논문을 썼고, 많은 과학책을 집필했다. 유일한 소설 <콘택트>(Contact)는 1997년 영화로 제작되었다. <코스모스>는 1980년 간행되어 지금도 팔리는 천문학의 독보적인 책이다.

3.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를 집필한 토마스 쿤(Thomas Kuhn)은 미국의 과학사학자 겸 철학자이다. 저 유명한 ‘패러다임’(paradigm)이 새로움을 창조한다는 이론을 주장했다. 모두 13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이과 출신이 아니어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1962년 발간되어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읽히는 스테디셀러이다.

4. 리처드 도킨스의 또 다른 책 <만들어진 신>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무신론을 주장한 책이다. 원제 The God Delusion은 ‘신이라는 망상’의 뜻이다.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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