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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화가, 변시지를 만나다96평론_ 왜 지금 변시지인가6
황인선 | 승인 2018.02.28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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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변시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그의 ‘풍토’ 미학을 알아보겠습니다.

변시지가 1988년 출간한 <예술과 풍토>에는 “자연을 연구하고 거기에 피를 통하게 하고 그 결과로써 진중하게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신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와 “진리, 그것은 순수한 두뇌적인 예술 혹은 원시 예술이다. 그것이야말로 모든 것에 능가할 수 있는 박식의 예술이다”라는 고갱의 주장이 인용됩니다. 원시예술이 진리인 것입니다. 내가 보기엔 고갱의 ‘원시’가 변시지에게서는 ‘풍토’라는 말로 변용되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화가는 또 이런 글을 썼습니다.

“현대는 자연 풍토의 미가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들고 있는 시대라 할 수 있다. 지난날의 소박한 것이나 순수한 것 등의 미에 대한 감수성도 차차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자연미나 역사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그 많은 조형미는 이제 상실과 망각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파괴의 힘도 점차 가속적인 위력을 더해가고 있어 막을 수 없는 힘이 되어 갈 것이다..... 인간은 그 매력 앞에 인간 자신의 참된 빛을 잃어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이대로 흘러만 간다면 세계의 어느 곳에 가도 풍토가 주는 미는 쉽게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런데 화가가 말하는 풍토는 무슨 뜻일까요?

변시지는 같은 책 다른 곳에서 “현대 미술은 다양한데... 다양성의 저류에는 어딘가 공통된 점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그 근간을 둔 때문인지도 모른다. 동시에 민족, 시대, 기후적 조건이 모체가 되고 정신문화의 체온을 형성한다고도 생각할 수 있고 이것을 예술의 풍토라고도 말할 수 있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풍토는 결국 본성, 근간, 모체, 체온 등의 것인데 풍토의 보편성과 국지성을 동시에 말하고 있는 것이 이색적입니다. 인간의 본성에 근간을 둔 풍토와 민족, 시대, 기후조건 등에 근간을 둔 풍토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의문이 듭니다. 사실 보편성과 국지성 둘은 인류학과 민족지학이 다른 것처럼 서로 다른 개념 아닌가요?

이 다른 둘을 풍토라는 말로 융합하려 했던 것은 변시지의 오랜 고민 사항이었습니다. 그는 후에 이 두 개념을 하나의 풍토로 통합해 갑니다. 그래서 그는 제주도를 그리되 그 안에 존재의 마음을 담음으로써 제주도의 화가를 넘어섭니다. 그럼에도 그의 구분을 인용해서 말하자면 고갱은 앞의 풍토 즉 인류학적 원시에 근접해 갔고 변시지는 뒤의 민족지적 풍토 개념에 기반 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변시지, 클릭하면 확대된 그림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 민족지적 풍토 사상은 아마도 피 식민지인이었던 변시지의 삶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겨우 6살 나이에 일본으로 갔고 거기서 실력은 인정을 받았지만 수십 년을 이방인으로 살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누구인가?’,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를 천착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고갱은 모국인 프랑스의 국력을 바탕으로 세계인(?)으로 사고할 수가 있었지만 변시지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림의 요소로 나타난 기후적, 신화적 풍토가 그를 제주도의 화가라고도 부를 근거를 분명히 주지만 그럼에도 앞에 긴 인용문에 나타난 핵심적인 단어들 즉 현대, 기계문명, 파괴의 힘... 등은 그의 고민이 19세기 산업화 시대 고갱과 같은 고민 선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꿈꾸는 삶은 아름답다’라는 칼럼에서 변시지는 “사람들은 나를 제주도를 대표하는 화가라고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진정으로 내가 꿈꾸고 추구하는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제주도’라는 형식을 벗어난 곳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존재와 고독감, 이상향을 향한 그리움의 정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것이고 인간이면 누구나 갖는 것이다. 내 작품의 감상자들이 그런 정서를 공유하며 위안 받았으면 한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의 그림에서 일단 존재 본연의 고독과 그리움의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것이죠. [논객닷컴=변시지 화가, 황인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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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은 변시지 그림을 소유한 시지아트재단과 황인선 작가와 협의 후 게재하는 것입니다. 본문 안에 포함된 사진을 따로 퍼가거나 임의로 사용할 경우 저작권법에 저촉될 수 있습니다.

 

황인선  ishw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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