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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無明)을 밝히는 천년의 울림, 범종(梵鐘)[이종원의 프리즘 속 세상]
이종원 | 승인 2018.03.05 15:36

[논객닷컴=이종원] 지난달 강원도 평창. 세계인의 축제인 동계올림픽의 시작을 알리는 상원사 동종 소리가 지구촌에 울려 퍼졌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인 오대산 상원사의 동종을 표현한 ‘평화의 종’ 소리에 맞춰 개회를 알리는 카운트다운을 한 것이다. 아름다운 한국의 문화유산이 홀로그램으로 선보여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절간의 법구사물(法具四物) 중 하나인 범종(梵鐘)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금속공예 작품이다. 범종 제작 기술은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단연 으뜸이다. 중국이나 일본 종의 가라앉은 소리에 비교하면 특징이 또렷하다. 우리 범종은 조금만 기다리면, 마치 사람이 우는 듯 소리가 죽었다 되살아나기를 1분 넘게 반복한다. 이처럼 진동수가 다른 두 소리가 서로 간섭하며 작아졌다 커졌다 하는 현상인 ‘맥놀이 현상’은 한국 범종의 특징이다

원광식(77·국가주요무형문화재 제112호) 주철장(鑄鐵匠)이 범종의 제작과정에서 주물틀과 거푸집을 해체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종원

예부터 살기 좋은 고을이라 ‘생거진천’(生居鎭川)으로 불리던 충북 진천은 국내에서 가장 앞선 것으로 조사된 석장리 고대 철 생산 유적지와 고대 제철로가 발견된 곳이다. 충북 진천의 범종제작사 성종사의 대표인 원광식(77·국가주요무형문화재 제112호) 주철장(鑄鐵匠)은 통일 신라의 종소리를 찾아 평생을 바친 장인이다. 그는 열일곱 살 때부터 쇠를 다루는 일을 하다가 70년대 초반, 수덕사에 들어가 4년 동안 행자 생활을 하며 종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전통주조기법으로는 범종의 모형에 고령토와 점토를 혼합한 흙으로 거푸집을 만드는데 현재는 신소재인 세라믹을 사용한다. ©이종원
©이종원

그가 재현해낸 밀랍주조기법은 밀랍으로 범종의 모형을 정교하게 만든 뒤 이를 고령토와 점토를 혼합한 흙으로 거푸집을 만들어 싸고, 안의 밀랍을 녹여낸 자리에 1200도의 쇳물(구리와 주석 합금)을 부어서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밀랍을 녹여낸 자리에 1200도의 쇳물(구리와 주석 합금)을 붓고 있다. ©이종원

그의 공장인 성종사(聖鐘社)의 작업장. 쇳물을 운반할 용기가 레일을 타고 용해로에 다가가자, 커다란 쇠갈고리가 용해로를 들어 올려 시뻘건 쇳물을 들이붓는다. 다시 서서히 공장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온 용기 속의 쇳물은 이제 마지막 거처로 옮겨갈 차례다. 거푸집을 해체하고 열흘 가량 마무리 잔손질을 하면 비로소 맑고 긴 여운을 지닌 아늑한 ‘우리의 소리’를 제대로 품은 범종이 태어나는 것이다.

종 표면의 문양을 디자인하고 있다. ©이종원
밀랍으로 만든 범종의 모형을 정교하게 다듬고 있다. ©이종원

범종은 외형의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맑고 깊은 소리를 내느냐가 관건이다. 원 장인은 “은은한 소리가 오래가도록 종 밑에 울림통을 파놓은 것이 우리 선조들의 지혜” 라고 말했다. 종 겉 표면의 아름다운 문양도 최적의 소리를 낼 수 있는 곳에 자리해야 한다. 그는“표면의 무늬가 종의 좌우를 비대칭으로 만들어 맥놀이를 극대화 한다”고 설명했다.

거푸집을 해체하고 열흘 가량 마무리 잔손질을 한 후 완성된 범종을 운반하고 있다. ©이종원

그가 달려온 외길 인생은 범종 소리의 맑고 긴 맥놀이에 사로잡힌 세월이었다. 조계종의 본산인 조계사를 비롯해 해인사, 통도사, 불국사, 선운사, 선암사, 화엄사, 송광사, 범어사, 법주사 등 전국의 대표적인 사찰에 있는 대부분의 범종이 바로 그의 손에서 제작된 것이다.

종으로 태어날 쇳물은 통상 구리와 주석을 8:2의 비율로 녹인다. ©이종원
©이종원
종의 어깨 부분에 둘려진 유곽 속에 각각 9개씩 솟아있는 도들꼭지인 유두(乳頭) 장식. ©이종원
범종의 모형 표면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 고온은 불로 불순물을 없애고 있다. ©이종원

공장 앞마당에는 크고 작은 범종 서너 개가 매달려 있다. 원 씨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마당에 나와 종을 친다. 그는 “인간은 기껏 백 년을 살지만 종은 천 년 이상을 간다”고 말했다.

고려시대에 창건됐다고 알려진 충북 진천의 보탑사 범종도 원광식 장인의 작품이다. ©이종원

종을 치는 장인의 손끝에 천 년을 내다보는 전통의 숨결이 깊이 배어 있었다. 

 이종원

 서울신문 전 사진부장

 현 서울신문 사진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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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jongw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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