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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이기지 않아도 되잖아[황인선의 컬처&마케팅]
황인선 | 승인 2018.03.06 11:35

[논객닷컴=황인선] ‘이기다’의 국어사전 뜻 제1항은 상대에 대해서 우월함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것이 좀 삐딱하게 적용되면 소비자 이익 고차원으로 빼먹기, 눈먼 돈 먼저 챙기기, 경쟁사 기술 훔치기, 협력사 등치기, 약자 조롱하기 등등인데 그러다 보니 일단 이기기 역작용으로 미 투 운동, 갑질 고발, 표절 소동, 적폐 청산 등이 지금 한창이다. 이중 갑질만 보자. 그런데 올림픽 기간 중이고 봄이니까 나쁜 갑질은 말고 좋은 갑질(?)을 보자.

우리 책임 아닙니다.

10년 전, K기업의 브랜드 부장이었을 때 대나무를 콘셉트로 한 브랜드가 큰 히트를 쳤다. 브랜드 자체도 대단했지만 편의점 계산대에 비치하는 생 대나무 POP 광고도 엄청난 반응을 끌었었다. 나는 이 POP를 만들 때 담당 과장에게 한 달만 쓸 것이니 더 이상 추가생산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었다. 1달이 경과될 무렵 대나무가 말라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미 그 POP는 역할을 다 했기에 끝내기로 했다.

그런데 과장이 “확인하니까 업체가 추가생산을 해 놓았네요” 한다.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 업체가 추가생산 주문이 올 줄 알고 그리했다고...”, “얼마치나?”, “반제품 재료비만 1억 정도랍니다”, “거기 우리한테 빠르게 잘 해줬잖아. 구제 방법 없어?”, “그쪽의 잘못된 판단이니 그냥 잊으시죠. 정신 좀 차리게” 한다.

관행대로라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재료비만 1억 정도라면 그 협력사는 생존이 걸린 문제일 것이다. 생 대나무 반제품은 곧 말라버리니 시간이 없었다. 마침 당시 1위 소주회사의 C 브랜드 콘셉트가 ‘대나무로 네 번 걸러...’였던 게 생각났다. 그래서 지인 소개로 담당 상무를 만났다. 상황을 설명하고 귀사에서도 이 샘플이 필요할 것 같은데 실비로 제공할 테니 써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상무가 책임도 없는데 왜 이런 수고를 하느냐 물어서 “작은 노력으로 기업 하나 살릴 수 있잖아요”라고 했다. 며칠 뒤 POP 재료 전량을 구매하겠다고 멋진 화답이 왔다.

“당신 자랑 하는 거냐?” 묻는다면 자화자찬하는 최근 애플 광고를 흉내 내서 “그렇다”고 답해야겠다. 이런 갑행들이 많이 드러나야 갑이 전부 못된 놈이 아님을 알고 또한 젊은 갑들이 좋은 전례를 따를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상을 돕는 갑들은 많다. 지구를 생각해서 중고 옷을 사라는 파타고니아, 리얼 뷰티 캠페인의 도브, 블랙 프라이데이 때 ‘Just Got Jingled' 캠페인으로 베풂을 시행한 JC페니, 소외된 사람을 돕고 사회공헌에 앞장서는 포스코, 갓뚜기, LG하우시스 등이 그런 갑들이다.

내가 직접 본 사례로는 춘천시 문화예술과 L 주무관이 2017년 축제 때 직접 축제용 포대자루를 날라주고 공치사 없이 간 것이 기억난다. 평생소원이 가수라는 식당 여사장님을 위해 춘천마임축제 직원과 협력사 대표들이 식당에 작은 콘서트를 열어줬는데 60대 여사장님도 울고 자식들도 울던 장면도 생생하다. 이들의 행위는 정말 갑다운 ‘갑행(甲行)’이다.

평생소원이 가수라는 식당 여사장님이 춘천마임축제 직원과 협력사 대표들이 열어준 작은 콘서트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황인선

사회라는 병에 물채우기

선생님이 교탁에 섰다. 교탁에 병을 놓고 학생들이 보는 가운데 돌을 채웠다. 그리고 물었다. 병이 다 찼느냐고. 학생들은 그렇다고 했다. 선생님은 그 돌보다 더 작은 돌들을 넣고 흔들었다. 작은 돌이 큰 돌들과 섞여서 정말 꽉 차보였다. 선생님이 이제 다 찼느냐고 묻자 학생들이 아! 하더니 다 찼다고 했다. 선생님은 이번에는 모래를 안에 채웠다. 모래가 빈 공간에 스며들어가 빼곡하게 찼다. 학생들은 “선생님, 이제 정말 다 찼어요.”라고 말했다. 선생님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더니 이번엔 병에 물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 비유는 여러 뜻으로 해석되지만 이를 회사에 비유하자면 우리는 보통 회사는 비전, 전략, 혁신적 기술, 지속가능성이라는 크고 작은 돌로 채워진다고 믿는데 이는 학생의 관점이다. 선생님의 관점에서 보면 모래와 물 같은 인정과 문화까지 채워져야 비로소 병이 채워진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럴 때 병은 우리 사회다. 병을 채우는 주체는 회사가 아니다. 회사에 다니는 우리다.

“우리는 책임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심하게 말하면 나치 히틀러 밑의 아돌프 아이히만( 친위대 장교.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점령하의 유럽 각지 유대인의 체포, 강제이주를 계획·지휘)이 “나는 죄가 없다. 상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라고 말했던 것과 본질이 다를 바가 없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그것을 ‘평범한 악(Banality of Evil)’이라고 정의했는데 banality는 따분함, 시시함, 지극히 평범함의 뜻이다. 아이히만은 본인의 무죄 강변에도 불구하고 전범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았다.

©픽사베이

꽃을 피우는 것은 고통스러우나

경칩이 지났다. 곧 산에, 산에 꽃이 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꽃들 중 하나가 ‘나하나 안 핀다고...’ 한다면 만산에 꽃이 만발할 리 없다. T. S 엘리엇이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듯이 꽃을 피우는 것은 고통스러운 탄생이다. 딱딱한 땅을 뚫어 뿌리를 내리고 물을 빨아들여 내가 먼저 꽃을 피워야 만산에 아름다움이 채워진다.

앞의 병 채우기 비유에서 마지막은 물이었다. 그럼 다 채운 것일까? 물보다 작은 것이 세균이다. 만일 어떤 평범한 악이 병에 세균을 채운다면? 그럼 병은 세균 병이 된다. 관행이라는 성희롱, 우리가 먼저고 을한테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지 하는 갑질, 과정의 악이야 어찌됐든 1등만 최고인 포상 등이 사회의 세균이다. 첨단 경영전략을 세우고 핵심인재, AI기술을 도입해도 평범한 악들은 늘 관행 운운하고 꼭 이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영원히 모를 텐데. 사랑과 존엄을 모르는 좀비들이 다 감염시킬 텐데, 그 병에 아직 순결한 우리 자식을 넣고 싶은가.

 황인선

브랜드웨이 대표 컨설턴트

2017 춘천마임축제 총감독 

문체부 문화창조융합 추진단 자문위원 / 전 KT&G 마케팅본부 미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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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선  ishw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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