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따뜻한 생각]

[오피니언타임스=김연수] 슬픈 영화를 보았는데 눈물이 나지 않았다. 많은 관객들이 울음을 터뜨렸고 몇몇은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꼭 나만 울고 있지 않은 듯 했다. 지금보다 어렸더라면 분명 울었을 것 같았다. 문득 내가 마지막으로 소리 내어 울었던 게 언제였는지 궁금해졌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계속 생각해보았지만 좀처럼 기억나지 않았다.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하는 내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나는 긴 시간 동안 감정을 억누르고 참아왔는지도 모른다. 바쁜 부모님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꽤나 어른스러웠던 나. 초등학교 때부터 ‘또래에 비해 어른스럽고 성숙한 학생’이라는 말이 내 뒤에 꼬리표처럼 붙어 다녔다.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됐으니 잘 안 울게 됐는지 환경과 상황에 의해 바뀐 것인지 헷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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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처음 쓸 때 서툰 문장과 기교도 문제였지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마이너스 요소였다. 나의 감정일 때는 좋을지 몰라도 타인이 읽었을 때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점. 감성적인 면은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했다. 그때부터 감정을 덜어내고 정제된 문장과 표현을 써야 된다는 강박에 시달렸는지도 모르겠다.

감정 절제를 통해 확실히 어디 내놓기 부끄럽지 않은 문장력을 갖추었다. 하지만 시에는 문장력이 전부가 아니다. 읽는 사람의 가슴께를 강타할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이것은 A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B로 와 닿을 수도 있다. 한 문장을 읽고 서로 다른 것을 떠올리듯이 말이다. A든 B든 중요하지 않다. 그저 마음을 조금이라도 건드렸다면 그것은 의미 있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내가 의미 있는 시를 쓰기 힘들어졌다는 말과 같다.

성장과정과 선택한 진로 방향에 의해 서서히 감정이 무뎌졌다. 때때로 주변 친구들은 “글을 쓰는 애가 감정이 그렇게 메말라서 어떡해”라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그저 가볍게 웃으며 “나 원래 잘 안 울어”라고 답한다. 사실 안 우는 건지 못 우는 건지 모호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언제든 울 수 있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다. 지금보다 한 단계 더 성장한다면 소리 내서 울 수 있지 않을까. 계속 글을 쓰겠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으니 이제 내가 만든 틀을 깨고 나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김연수

제 그림자의 키가 작았던 날들을 기억하려 글을 씁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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