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진의 청춘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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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주방에서 커피를 데워 큼직한 머그잔에 따르고 그 잔을 들고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켭니다. (...) 그때는 정말로 행복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뭔가 써내는 것을 고통이라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현대문학

하루키의 직업은 소설가였고 매일 새벽에 행복함을 느낀다고 고백하고 있다. 문장을 만드는 일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며 즐겁지 않다면 왜 글을 쓰겠냐고 반문한다. 이 얼마나 멋진 직업인인가. ‘직업’의 사전적 정의를 뒤적거려보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하여 하는 일이란다. 생계를 위해서 어차피 해야 할 일인데 그 일이 즐겁다면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있을까.

내 직업은 회사원이다. 회사에서 정한 시간에 출근하며 회사에서 요구하는 노동을 제공한다. 사람마다 노동의 종류가 다르고 때에 따라 강도 또한 다르다. 종류와 강도는 다를지라도 경험하는 고통은 비슷하다 할 수 있으리라. 회사에서는 직원의 성과에 따라 차등하게 돈을 지급하고 직원은 그 돈으로 매월 생계를 유지한다.

이렇게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직업 생활 중 행복함을 느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매일 새벽에 다짐하는 내 마음은 ‘언젠가 그만두기 위해 오늘도 참아야지’라는 비장한 각오이며 그 마음가짐으로 어떠한 풍파를 만나더라도 일단은 견디게 된다.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하면 세상에서 아마추어라고 손가락질 당하고 ‘계속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거울 속 남자의 얼굴을 보니 피부는 많이 상해있었고 분장을 한 듯 주름 또한 덕지덕지 그러져 있었다. 머리칼 속에 숨어있는 흰색 브릿지는 스트레스가 만들어낸 값싼 미용의 결과물이랄까. 앞으로 20년은 넘게 비슷한 새벽을 맞이해야 할 텐데 내 몸이 남아날지 나조차도 의심스럽다. 이런 얘기 어디 가서 하면 ‘다들 그렇게 사는데 궁상떨지마’ ‘야, 죽도록 일해도 안 죽어’라는 이야기를 들을 것이 뻔했다. 그래서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가장이 되었다. 책임져야 할 식구가 늘어났고 나의 비장한 각오는 더욱 선명해졌다. 어느 누구도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내 평생의 직업인 회사원에 감사하기로 결심했다. 특별한 재능도 없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 직장생활이 얼마나 감사한가. 하루키는 전 세계에서 한 명뿐이었고, 회사원은 전 세계에 모래알보다 많았다. 하루키를 보지 말고 모래알을 봐야지. 그러다 어느 날, 한 순간이라도 반짝거리는 모래알이 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내 평생 여한이 없으리.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심규진

 한양대학교 교육공학 박사과정

 청년창업가 / 전 포스코경영연구소 컨설턴트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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